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기록노동자 희정은 나의 인터뷰어이다. 그의 책을 읽고, 그의 활동을 보고, 그의 말을 들을수록 궁금했다. 희정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가 왜 내 말을 듣고 싶어 했는지. 희정에게 기록이라는 건 무슨 의미인지.

일하다 죽어가는 사람, 성소수자, 여성노동자, 싸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말을 희정은 왜 듣고 싶었고, 듣고 무얼 느꼈는지도 궁금했다. 희정의 새로운 책 <두 번째 글쓰기>(2021년 10월 출간)을 읽었을 때, 나는 어느 정도 그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두 번째 글쓰기>는 희정이 자신의 노동(타인의 노동을 기록하는 나의 노동)에 관해 쓴 에세이집이다.
  
<두 번째 글쓰기> 표지
 <두 번째 글쓰기> 표지
ⓒ 이우연

관련사진보기

 
내 고통이 기록 되길 바라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책 작업을 하던 희정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내 고통이 기록되길 바랐다. 게이, 개신교인, 교사, 남자인 내가 겪는 고통이 너무 아팠고, 너무 억울했다. 너희들(개신교)이 내게, 우리(퀴어)에게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고통을 주고 있는지 누군가 기록해주길 바랐다.

그런 기록이 없다면, 내가 신학을 배워 논문의 형태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즈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아래 행성인)에 가입하고, 뉴스앤조이와 인터뷰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기 시작했다. 상처받더라도 말하고 싶었다. 나로서 살고 싶었다. 아니면 죽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행성인 웹진팀에서 활동하는 나단에게 연락이 왔다. '정규직 성소수자'의 노동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는 희정을 만나기 전까지 전교조 조합원이었지만, '노동'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노동'은 내가 모르는 세계였다.

희정을 만나기로 하고 <노동자, 쓰러지다>(2014년 6월 출간)를 포함해 그가 쓴 책 대부분을 샀고, 상당 부분을 읽었다. 책 속 내용은 낯설고 또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보였다. 내가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누군가 내가 겪는 부당함을 글로 전해주기 원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책 <노동자, 쓰러지다>에 희정의 사인을 받으려고 책을 챙겨가기까지 했다. 나와 별개의 노동을, 이렇게 다양하게 발견한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노동 환경이 '소수의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전 8시 30분 출근, 오후 4시 30분 퇴근, 휴일 보장, 야근 없음, 최소 방학 45일 이상, 사회적으로 선호하는 직업. 학교 안에서 내 눈에 보이는 건 정규직 교사들의 노동이었고, 다른 노동들은 보지 못했다. 신기한 글을 쓴 작가에게 사인 받으려는 마음이었다. 그게 부끄럽다. 다행인지, 인터뷰 하는 그날 가방에서 <노동자, 쓰러지다>를 꺼내지 않았다. 
 
기록노동자 희정이 쓴 <두 번째 글쓰기>와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기록노동자 희정이 쓴 <두 번째 글쓰기>와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 이우연

관련사진보기

 
사람들의 노동에 대해 관심이 생기다

인터뷰 이후, 희정이 관심을 가지는 '노동'에 대해 알고 싶었다. 노동자들이 일하다 얼마나 많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몰랐다. 희정의 글은 대부분 단문이고, 어려운 단어를 잘 쓰지 않기에 내가 맡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도 같이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 달 동안 '노동'이란 주제로 책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을 6학년 학생들과 같이 읽고 토론했다. 주제 마무리로 내가 담임교사로 있는 반에서 희정의 강연을 계획했다. 희정이 우리반 수업에 왔을 때, 학생 중 한 명은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희정은 왜 기록하는 일을 할까.
 
다만 누가 그에게서 물을 빼앗았는지, 타는 갈증을 그는 지금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견디고 버티고 겪어냄이 그에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우는지, 남겨지고 지워지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아채고 감각하는지를 쓰려한다. 그 인식과 감각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더 나아 가 그가 물을 찾기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 물길을 찾으려는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달라진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내는지. 아니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러니 나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 <두 번째 글쓰기> 197쪽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2019년 11월)가 나오고 나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책을 받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희정에게 잘 받았다고 카톡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비-퀴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은 퀴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다'라고, 자신을 퀴어라 정체화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은 퀴어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 이야기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157쪽
 
나는 세상을 몰랐다. 세상 이야기를 모르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내 고통이 퀴어의 고통이라 여기고 그것을 기록해주길 바랐지만, 퀴어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는 건 불가능했다.

경제력 있는 부모를 둔, 패싱이 수월한, 남성, 정규직 교사. 난 그런 사람이다. 가난한, 패싱이 수월하지 않는, 여성, 비정규직. 내 정체성에서 하나라도 벗어나는 사람들을 나는 몰랐다. 희정의 글을 이해하고 싶었다. 아니 내가 인터뷰를 같이 한 희정이 바라본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다.

<도란스> 기획 총서들을 읽고, 퀴어 이론, 페미니즘 관련 강연을 찾아다녔다. 강연 중엔 희정과 권김현영이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를 이야기 나누는 강연도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나는 재빨리 사라졌다. 희정은 혹시 내 마음이 상했는지 걱정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희정에게 무언갈 말할 수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밖에 쓸 수 없는 사람들인가. 한 발 더 나아간다 해도, 같은 영역에서 같은 피해를 겪은 당사자를 만나 기록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소수자는 오직 기록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까. 그는 오직 '자기 세계'만을 대변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세계란 대체 '어디까지'인가. … 소리 낼 통로가 막힌 이들의 말을 경청하는 행위를 통해 공고하게 닫힌 세상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로 채워진 일이다." - <두 번째 글쓰기>  97쪽

지금 내게 누군가 희정이 본 세상을 알겠냐고 묻는다면, '아주 조금은 알겠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빠르게 '더 알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이겠다. 많은 게 변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불쌍'하게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청소노동자의 공간을 찾고, 동료 교사와 함께 작게나마 실내의, 칸막이가 있는 공간으로 바꾸었다. 같은 학교 특수교사에게 커밍아웃하고,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를 선물했다. 친구가 됐다. 정리해고된 세종호텔 노동자의 일에 작게나마 어떤 형태로든 연대하고자 한다. 

무너지면서 세워지는 세계
 

올해 4년 넘게 커밍아웃한 교회를 나왔다. 목사를 꿈꾼다. 성소수자, 비성소수자 모두가 평등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교회를 꿈꾸며 신학대학원에 다닌다. 지금은 소수자를 동등한 하나의 성도로 바라보고, 이를 외부에 말할 수 있는 교회에서 목회를 배운다. 퀴어신학을 공부하는 학회에서 임원진으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희정의 글로 인해 언어가 생겼다. 이것이 나의 "무너지면서 세워지는 세계"(30쪽)다.

몇 년 전 인터뷰 자리에서 나는 상처 입을 걸 각오하고 말을 했다. 희정은 상처 입을 걸 알면서도 말을 들었다. 희정은 스스로를 무심하다고 하지만, 무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순 없다. 희정은 살고자 하는 애씀을, 싸우고자 하는 애씀을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다. 애정이 있는 만큼 기대하고 상처받지만 또다시 인터뷰이와 '대화'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글쓰기>에 그 모든 과정이 오롯이 녹아 있다. 나는 희정의 '노동 기록'으로 희정의 말을 들었다.
 
누군가의 말을 글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막막함과 힘겨움을 잊은 채 어떤 열의로 계속 쓰는 까닭은,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농담 삼아 '말빚'이라 하지만, 실은 자신의 삶의 어떤 부분을 꺼내 내게 보여준 이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 <두 번째 글쓰기> 234쪽

두 번째 글쓰기 - 당신의 노동을 쓰는 나의 노동에 관하여

희정 (지은이), 오월의봄(2021)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등교사, 신학생, 게이. 여러 정체성이 함께 있는 "그냥, 사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