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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의 <국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몇 해 전 여름휴가 때 읽어 화제가 된 소설이다.
 김성동의 <국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몇 해 전 여름휴가 때 읽어 화제가 된 소설이다.
ⓒ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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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외적인 문제에서 발생했든, 내부에서 생겨난 것이든 고통은 인간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부터 바깥에서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 2년 가까운 세월. 우리는 조용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싫든 좋든 하고 있다.

스스로의 심연(深淵)을 바라보는 행위는 비단 철학자나 문인이 아니라도 반드시 필요할 터. 그러니 바이러스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주말이면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다니던 나들이, 퇴근 후 동료 혹은, 연인과 어울려 가지던 술자리가 부쩍 줄어든 지난해와 올해. 그걸 대신해 자아를 살피는 침잠의 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로 그 '자아 성찰'의 중요한 도구가 돼주는 게 책읽기다. 특히나 추위에 외출이 줄어드는 이 계절엔 더욱 그렇지 않을까.

<만다라>와 <국수>를 필두로 김성동의 소설들은 진중함과 진지함을 담고 있어 그 문장들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한다. 이런 평가엔 한국의 문학비평가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독자를 다독이는 진중하고 의로운 문장은 어디서

김성동은 병자호란 때 순국한 선원 김상용(金尙容·1561∼1637)과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 때 스스로 곡기를 끊어 자결한 김창규(金昌圭)의 후손이다.

김상용은 조선 중기의 문신. 1590년 병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와 예문관검열 등을 지냈고, 병조와 이조의 판서였으며 '만인지상 일인지하'라는 정승에까지 올랐다. 그의 시와 글씨가 지닌 품격은 당대 최고로 인정받았다.

김상용이 일흔 살이 넘어 맞게 된 병자호란. 원로대신인 그는 왕세자의 아내와 장남을 보필해 강화로 피난한다. 그러나, 강화의 수비를 맡은 벼슬아치는 "여기까지 오랑캐가 올 일이 없다"며 전쟁 중임에도 주지육림에 빠져든다. 그 오판 탓에 백성들이 도륙된다.

그러한 비극을 지켜보던 김상용은 화약이 보관된 망루에 올라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해 세 번 절하고는, 하인을 모두 피신시키고 화약에 불을 붙여 자결한다.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선비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처신이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 1880년. 앞서 말한 김창규가 태어난다. 여섯 살에 <논어>와 <맹자>, <중용>과 <대학>을 읽던 영민한 소년이었다. 열네 살이던 1894년. 갑오개혁이 있던 그해 조선의 마지막 과거시험에 급제해 왕으로부터 '교지(敎旨)'를 받은 김창규.

그 역시 김상용처럼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1910년 굴욕적 한일합방 소식을 접한 직후다. "오얏나무 꽃이 떨어졌으니 이제 이곳은 내가 머물 땅이 아니다"라고 일갈한 뒤 스스로 방문에 못질을 해 곡기를 끊은 것. 겨우 서른의 나이였다.
 
문학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말하는 <국수>의 작가 김성동.
 문학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말하는 <국수>의 작가 김성동.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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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과 김창규. 그들 후손으로서 핏줄 속에 표시나지 않게 흐르는 의로움과 고통과 수난의 삶이 만들어준 진중함은 김성동 문학을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구분하게 해주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바로 이 진중함과 의로움은 21세기 소설이 놓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게 몇몇 평론가들의 견해.

김성동의 첫 소설 <만다라>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절망에서 연유한 지산 스님의 만행과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뇌하며 끝없이 떠도는 법운 스님의 방랑을 그려내 당시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사로잡았다.

"병 속의 새를 어떻게 꺼낼 것인가?"라는 책이 던진 화두는 법운만의 몫이 아닌 독자 전체의 몫이 되기도 했다.

1981년 배우 전무송과 안성기 주연으로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 <만다라>는 눈이 시린 겨울 산을 담아낸 아름다운 화면으로 한 번 더 대중들을 사로잡는다.

이후에도 김성동은 많은 작품을 썼다. 조선조 말 몰락의 위기에 놓인 전통 예인들의 희망과 좌절을 당대의 정치, 사회, 풍속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탁월한 문장으로 재현한 <국수>(國手), '웃음과 풍자와 웅혼한 비약이 스며들기 시작했다'라고 평가받은 소설 <길>, 가족공동체를 떠나서는 삶 자체가 존립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읽히는 <집>, 그리고 아름답고 단아한 산문집 <먼 곳의 그림내에게> 등등.

긴 호흡으로 코로나19 시대를 통과하려면

우울과 회한이 문득문득 곁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내는 '코로나19 사태' 속 2021년의 끝. 김성동의 작품 <만다라>와 함께 권하고 싶은 건 <국수>다. 책을 펴낸 솔출판사는 이 소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김성동의 장편소설 <국수>는 1991년 11월 1일 문화일보 창간호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27년 만에 완간됐다. 이 작품은 임오군변(1882)과 갑신정변(1884) 무렵부터 동학농민운동(1894) 전야까지 각 분야의 예인과 인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30여 년 전 조선의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로, 정치사보다는 민중의 구체적 삶과 언어를 충실하게 복원해낸 풍속사이자 조선의 문화사에 가깝다. 소설의 제목인 <국수>는 바둑과 소리, 악기, 무예, 글씨, 그림 등 나라 안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나 일인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소설은 그 시대에 벌어진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맞닥뜨리고 때로는 그것을 일구기도 하는 인물 개개인을 중심으로 거대한 민중사적 흐름을 당대의 풍속사와 문화사 및 정신사적 관점에서 아름다운 조선말의 향연과 함께 펼쳐낸다."

긴 세월 끊임없이 단련해온 김성동 특유의 유장한 문장과 우리 말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국수>는 다섯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짧지 않은 분량이고, 쉽게 읽기 어려운 긴 소설이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독자들이 <국수>가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중 한 명이다.

언젠가 김성동에게 "대체 문학은 무엇인가"라는 답하기 힘든 질문은 던진 적이 있다. 그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문학은 그리움이야.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움. 문학의 유효성이 어디 있냐고? 갈빗대 아래를 후비는 힘에 있지. 개인을 넘어서 세상을 위무하는 힘 말이야."

바이러스가 인간을 지배하는 듯 보이는 이상한 시절. 김성동의 문학은 이 시절 인간과 세상을 위무하는 힘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비단 혼자만의 것은 아니리라.
 
김성동의 서재. 그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아직도 ‘길’을 찾고 있다.
 김성동의 서재. 그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아직도 ‘길’을 찾고 있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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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언제나 '길'은 존재하는 것

오래전이다. 김성동이 <만다라>를 개작해 세상에 선보였던 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

"구도소설(求道小說)이라…. '길을 찾는 이야기'라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구도하고자 발버둥친 사람이 가장 잘 쓸 수 있을 터. 열여섯 살 입산한 이래 십여 년 넘게 길을 찾고자 했고, 환속 이후에는 다시 20년이 넘는 시간을 또 다른 길을 찾고 있는 사람 김성동. 김성동은 사바탁세(娑婆濁世)의 잔소리꾼이라 스스로를 낮춘다. 그러나, 세속에서 부처의 이치를 깨달은 이 잔소리꾼 구도자 덕분에 <만다라>는 세기를 뛰어넘어 다시 우리 곁에 올 수 있었다. 또한 그 <만다라>가 있기에 '우리도 이만한 구도소설을 가졌다'라 말할 수 있는 한국문학과 독자들은 행복한 게 아닐까?"

소설가 김성동은 속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문인이다. 그러나, 그럼으로 인해서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와 움직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독자들을 위로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국수>는 고약한 바이러스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혼란과 공황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해줄 듯하다.

때로는 눈보라와 짙은 안개에 가려 길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길은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할 것이다. 그건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이 냉혹한 '코로나19 시대'에도.

소설을 포함한 책을 읽는 게 일상이 아닌 특별한 행위가 돼버린 시절을 우리는 살고 있다. 책보다는 휴대폰과 컴퓨터, TV와 영화를 훨씬 가까이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 과연 그것들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사색의 시간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한 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봤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휴대전화에 표시되는 주식 시세와 현란한 컴퓨터게임 화면이 아닌 김성동의 <국수>에 빠져보는 게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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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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