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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0대 중반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리고, 18년차 직장인이다. 2021년 중반, 극심한 스트레스로 3달 넘게 불면증에 시달리다 결국 F코드(정신의학과)의 질병과 고혈압을 얻게 되었다. 밝고 명랑한 성격에 사교적이고 매일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던 사람이라도,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생계에 위협을 느끼자 걱정과 불안에 잠식되어 잠도 밥도 운동도 사람도 모두 자연히 끊는 상태에 이르렀다.

어느 날 출근길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한참을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다 그냥 나오고, 다음날 또다시 카페에서도 같은 일을 겪으며 그제야 문제가 심각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 동안 하루 거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회사의 사람들도, 저녁시간 잠깐 얼굴 보는 가족들도 나의 상태가 어떤지 알지 못했다.

홀로 괴로움이 점점 늘면서 삶의 끈마저 끊고 싶다는 생각이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갈 때, 결국 책임감으로 감추려 애쓰던 무너진 마음건강 상태를 가족들이 먼저 알아챘고 입원과 치료를 적극 추진하고 도왔다. 그렇게 살았다. 

'정신건강'에 대한 교육이 없다

'마음을 다치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신체를 다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살면서 처음 느끼는 종류의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옆에 가족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스스로의 의지나 생각, 기력의 차원을 넘어가면 전문적인 치료와 약물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더불어 남녀노소 불문하고 혼자인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책임지고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추스르고, 누구에게 적절한 도움을 받고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나 외부에서나 강인함을 강요받으며 버텨내야 하는 삶을 짊어진 사람들, 특히 대한민국 가장들 중에 분명히 치료가 필요한 병마저 홀로 지고 버티고 있을 분들이 있을 것이 염려된다. 

사회과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시절 수상인명구조원(Life Guard) 자격증과 응급처치(First Aid)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학생들과 소방관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도 했었다. 이렇듯 신체적인 질병에 대응하는 교육은 관련 분야 직업인들 뿐 아니라 학생들, 일반인 등에게도 잘 알려져 있고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정신건강/마음/감정 문제에 대한 청소년 및 일반 대상의 교육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재난 후 트라우마 관련 심리적인 응급처치 교육과 의사들 심리학자들 또는 작가들이 쓴 도서들은 있어도, 실제로 상당히 많이 현존하고 주변에서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정신질병들(불면, 공황, 우울, 조울,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섭식장애, 알코올 약물 중독, 자해) 등 에 대한 이해와 최초의 대응 및 개입과 관련한 실제적, 구체적 가이드를 주는 체계적인 매뉴얼이나 일반인들을 위한 도서는 역시 국내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경우와 해외 서적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요즘 언론에서 그 어떤 뉴스보다 많은 빈도와 내용으로 우리의 정신건강, 자살 등의 문제점을 다루며 대책이 필요하고,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와 국가의 개입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가장 먼저 스스로를 지키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한 일반인-개인으로서, 가족-친구-동료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쉽게 가까이 다가가고 제공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정보와 교육은 전무해 보인다. 

정신건강 응급처치 프로그램이 도입되길
 
현재 Mental Health First Aid(정신건강응급처치)가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는 나라들의 지도
▲ Mental Health First Aid International 세계 지도  현재 Mental Health First Aid(정신건강응급처치)가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는 나라들의 지도
ⓒ MHFA International 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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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 한 번을 처방받아도 F코드로 분류되어 실비보험 가입조차 어려운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질병에 대한 사회 낙인의 두려움과 그로 인해 개인 스스로가 높이 쌓고 있을 장벽 때문에, 적시에 적절한 도움과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신질병에 대한 무지함과 두려움을 처음 경험한 당사자로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크다.

Mental Health First Aid(정신건강 응급처치) 프로그램은 호주에서 시작되었고, 현재 24개국에서 그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WHO추산 매해 거의 80만 명이 자살하며 이는 매 40초당 한 사람 꼴로, 정신건강을 지키는 일을 글로벌 우선과제로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 총 4백만 명 이상이 교육을 이수했고, 아시아에서는 방글라데시, 홍콩,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에서 운영되고 있다. 청소년, 일반인 등 대상 그룹에 따라 적합한 교육을 제시하고, 미국에서는 전 영부인이었던 미셀 오바마가 직접 그 교육을 받고 필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개인적으로 이러한 교육을 받고, 또 강사가 되어 기여하면 좋겠지만 Mental Health First Aid International Org.(정신건강 응급처치 관련 국제기관)에서는 개인에게 라이선스를 주지 않고 있으며 통상적으로 국가기관, 비영리 공인 기관, 사회적 기업 등이 적격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국내 상황과 문화에 맞게 도입하고 승인, 관리, 유지 절차에 상당한 필요 기간(최소 18개월~2.5년)과 조건 그리고 비용 문제(최소 12개월 이상의 운영 가능 자금 보유 필요)가 있고, 사람과 사회를 위하는 선의를 기반으로 장기 운영할 수 있는 기관의 자격 요건들이 까다롭게 명시되어 있기에 조직적인 힘이 필요해 보인다.

국가든, 비영리단체/기관이든, 교육기관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이 국제적인 운동과 다른 나라의 경우들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에도 이 Mental Health First Aid(정신건강 응급처치) 프로그램의 도입과 보급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가정, 학교, 기업, 사회에서 적절한 정보공유와 교육을 통해 어떤 문제든 더 크고 위험해지기 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마음건강 복지가 개선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자살률 세계 1위 국가라는 악명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나라와 전문적인 조직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청와대 국민청원에 작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FeSWW7


태그:#정신건강, #정신건강응급처치, #OECD자살률1위, #자살, #MENTAL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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