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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선언 당시 상황을 담은 기록화.
 3.1 선언 당시 상황을 담은 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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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자가 확정되자 2월 27일 밤 최린의 집에는 기독교측 대표 이승훈ㆍ이필주ㆍ함태영, 불교측 대표 한용운, 그리고 개인 자격으로 최남선이 참석하여 회합했다. 이 자리의 주요 의제는 독립선언서의 날인 순서에 있었다.

기독교 측은 서명자의 순서를 연령순으로 하거나 가나다순으로 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최린이 그렇게 되면 위계질서가 확고한 천도교 측에서 볼 때는 선생과 제자의 순위가 바뀌게 되므로 곤란한 지경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장시간의 논의 결과, 그동안 준비과정으로 보아서도 손병희 선생을 수위에 쓰고, 제2위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길선주(장로교파) 목사를, 제3위에는 이필주(감리교파) 목사 그리고 불교측을 대표하여 제4위에는 백용성(승려)을 쓰기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손병희ㆍ길선주ㆍ이필주ㆍ백용성의 순위가 결정되고 나머지 29인은 성명의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여 서명 날인하게 되었다. 박동완이 33인 민족대표에 선임된 것은 재판과정에서 상세히 알게 된다.  

민족대표에 서명하지 않은 주요 인사는 앞에서 지적한 바 있는 함태영 외에 송진우와 현상윤 등이 있다. 이들은 3ㆍ1항쟁 거사 후의 계속적인 운동지도를 맡기 위해 서명에서 빠졌다. 그리고 최남선은 스스로 "학자로서 일생을 마치기"로 결심했으므로 그대로 수용되었다.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기미년 '3.1독립선언서'. 왼쪽 끝에 서명자 33명의 명단이 보인다.
▲ 기미독립선언서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기미년 "3.1독립선언서". 왼쪽 끝에 서명자 33명의 명단이 보인다.
ⓒ 33인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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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다음과 같다. 박동완이 35세로 세 번째 연소자였다. (괄호 안은 당시 연령)

△ 천도교 : 손병희(59)ㆍ권동진(59)ㆍ최린(42)ㆍ오세창(56)ㆍ임예환(55)ㆍ권병덕(53)ㆍ이종일(62)ㆍ나용환(56)ㆍ나인협(49)ㆍ홍기조(60)ㆍ김완규(44)ㆍ이종훈(65)ㆍ홍병기(51)ㆍ박준승(54)ㆍ양한묵(58)

△ 기독교 : 이승훈(56)ㆍ박희도(42)ㆍ최성모(47)ㆍ신홍식(48)ㆍ양전백(51)ㆍ이명룡(47)ㆍ길선주(51)ㆍ이갑성(31)ㆍ김창준(31)ㆍ이필주(51)ㆍ오화영(40)ㆍ박동완(35)ㆍ정춘수(45)ㆍ신석구(45)ㆍ유여대(42)ㆍ김병조(44)

△ 불교 : 한용운(41)ㆍ백용성(56)

33인의 민족대표와 함께 3ㆍ1혁명을 주도한 인물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천도교 : 박인호(66)ㆍ노헌용(53)ㆍ이경섭(45)ㆍ한병익(20)ㆍ김홍규(45)
△ 기독교 : 함태영(48)ㆍ김지환(29)ㆍ안세환(33)ㆍ김세환(32)
△ 교육계 : 송진우(31)ㆍ현상윤(28)
△ 문인 : 최남선(31)
△ 무직 : 임규(51)ㆍ김도태(29)ㆍ노정식(30)
△ 학생 : 강기덕(31)ㆍ김원벽(27) (주석 8)


주석
8> 김삼웅, <33인의 약속> 26쪽, 산하, 1997.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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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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