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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의 위치를 옮겨 그대로 역사를 이어가는 안강역(왼쪽)과 서경주역(오른쪽)의 모습.
 역의 위치를 옮겨 그대로 역사를 이어가는 안강역(왼쪽)과 서경주역(오른쪽)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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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양자동역을 통과하는 열차를 따라 경주 쪽으로 되돌아오면 안강역이 나온다. 서울에서 포항을 오가는 새마을호가 정차했을 정도로 큰 역이다. 경주 동부에 사는 사람들의 교통을 책임지는 역답게 역 건물은 널찍하다. 재미있는 것은 대합실. 여느 학교의 교장실이 생각나는 대합실에는 손때 묻은 책이 가득해 쉬어가는 맛이 있다.

안강역은 28일이 지나면 지금의 역에서 2.2km 떨어진 곳에 신역사를 지어 다시 영업한다고 한다. 미로처럼 생긴 지금의 출입구, 역목이 커다랗게 오른 지금의 역 건물 대신 새로운 역 건물에서 앞으로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셈이다. 읍내에서 멀어진다는 아쉬움을 딛고 새로운 역사를 어떻게 써낼지 기대도 된다.

이렇게 역 건물을 옮기는 기차역은 또 있다. 경주 시내에서 형산강을 넘어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서경주역이 그렇다. 경주 방향으로 가는 선로를, 그리고 포항 방향으로 가는 선로를 가려내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던 서경주역은 황성동과 현곡면 사람들이 서울로, 그리고 대구로, 부산으로 가는 발 역할을 수행하곤 했다.

서경주역도 지금의 위치에서 2.6km 남짓 떨어진 곳으로 이전한다. 중앙선 철도가 지나지 않고 동해선 철도만이 지나는 역이 되는 탓에 열차 운행 횟수도 많이 줄어들고, 역의 중요도 역시 낮아지지만 역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건천역에 멈춰선 열차가 출발을 재촉하고 있다. 며칠 뒤면 '건천역'이라는 이름도 역사의 뒤로 사라진다.
 건천역에 멈춰선 열차가 출발을 재촉하고 있다. 며칠 뒤면 "건천역"이라는 이름도 역사의 뒤로 사라진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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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하지 못하고 폐역하는 역도 두 곳이 있다. 건천과 호계가 그렇다. 서경주역에서 형산강변을 돌아가면 만나는 건천역은 하루 8번의 열차가 선다. 경주 서부 주민들의 발이 되는 건천역에는 대구로, 울산으로 가는 열차 시간 때마다 노인들이 짐을 가득 싣고 열차에 오르고, 동네 마실 가는 주민들이 시끌벅적 열차에 타곤 한다.

중앙선 선로가 옮겨지면 선로가 뒷산 자락을 터널로 통과하기에 건천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대신 2008년 이후 13년간 열차가 멎었던 아화역이 건천역의 바통을 넘겨받아 새 역 건물에서 여객 취급을 하게 된다. 중앙선 선로가 옮겨지게 되면서 건천 사람들은 열차가 멎는 아쉬움을, 경주 서면 사람들은 다시 열차가 서는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다. 

건천에서 한 시간을 꼬박 가면 나오는 호계역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울산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호계역은 하루 천 명이 넘게 이용하는 큰 규모답지 않게 아담하고 조그마하다. 삼각지붕 아래 조그만 간이역에서는 늘 사람이 북적이고, 플랫폼에 열차가 서면 열차가 흔들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며칠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호계역의 지난 여름 모습.
 며칠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호계역의 지난 여름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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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역을 품은 호계동은 '공업도시' 울산이라는 이름과는 대비되는 여러 매력을 가진 동네이다. 높지 않은 건물들 사이에 둘러싸인 공설시장에서는 오일장이 서고, 호계역 앞길은 2차선 조그마한 도로로 이루어져 북새통을 이룬다. 한 시간에 한 대 남짓 열차가 오갈 때는 역 앞이 잔뜩 북적거리기도 한다.

호계역은 울산 하면 떠오르는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 역의 역사가 100년 만에 마무리되는 게 더더욱 아쉽다. 대신 호계역은 28일부터 1.8km 떨어진 새로운 택지지구 앞에서 '북울산역'이라는 새 이름으로 역사를 이어간단다.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수많은 역들

물론 중앙선과 동해선의 모든 역들이 승차권에 '이름'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0년 이상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았던 역들이 더 이상의 역사를 잇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손님 한 명을 더 배웅하지도, 역을 찾은 객손을 맞이하지도 못한 채 쓸쓸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다.

영천에서 경주로 넘어오는 길의 송포역과 율동역, 경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의 청령역이나 나원역 같은 곳은 10년 가까이 손님들이 타고 내리지 않는 '미정차 간이역'으로 남았다. 울산에서 통근객을 실어날랐던 효문역, 경주와 울산 사이의 입실역도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터 사람 하나 오가지 않는 간이역이 되었다.

그렇게 사라지는 역 중 임포역을 들렀다. 1918년 문을 열었지만, 2008년부터 여객 취급이 중단되면서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된 역 중 하나인 임포역은 2014년부터 역무원까지 철수하면서 지키는 이도 하나 없게 되었다. 대신 '간이역 시인' 박해수 시인이 지은 시 <임포역>의 가사가 붙은 시비만이 역 앞을 지키고 서 있다.
 
출입문은 물론 창문까지 판자로 막혀 있는 임포역의 모습.
 출입문은 물론 창문까지 판자로 막혀 있는 임포역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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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이 있었던 곳은 판자에 못질을 해 막아둔 채 놓여 있고, 승강장에도 오를 수 없는 임포역은 다른 중앙선의 영업 중지된 기차역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역을 찾는 손님은 화물열차 뿐이다. 가끔 마주 오는 여객열차를 비켜주기 위해 10분, 20분씩 정차하는 화물열차는 덜컹이며 임포역의 말동무를 해 준다.

중앙선 열차가 지났기에 이름이나마 남겼던 임포역과 같은 역들은 28일부터 열차가 사라지면 철거될 운명에 놓여 있다. 사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승강장에는 사람이 북적였고, 역 앞은 찾는 이들로 많았을 이런 역들은 이제 석별의 순간만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열차에 올랐다. 느리지만은 않은 속도로 떠나는 열차 곁에 이런 역들의 역명판들이 이따금씩 스쳐 지나간다. 옛날 글씨체로 쓰여진 송포며, 임포, 율동, 그리고 동방, 죽동, 입실, 모화, 효문, 나원과 청령, 사방, 양자동에 이르기까지. 이런 역들과의 이별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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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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