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이를 알 수 있다. 그가 뭘 좋아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그의 라이프 스타일이 어떤 지도 알 것 같다. 그래서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인상이 그리고 인생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EBS에서 방송되는 건축탐구 - 집 시즌3이라는 프로그램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이번 주에는 성탄절이 끼어 있어선 지 '성당' 역할을 하는 집을 보여줬다.  

경북 의성에 작은 마을이 보이고 두 건축가가 집을 찾아간다. 마당이 넓은 집이다. 문패에는 두봉 천주교회라고 써 있다. 그런데 교회에는 십자가도 없고 성모상도 없다. 대문만 활짝 열려 있다.

그 집에는 은퇴한 신부님이 살고 있다. 밝고 환한 인상을 가진 프랑스 태생 92세 신부님은 1954년에 우리나라에 오셨다고 한다. 6.25전쟁을 겪고 춥고 배고프고 가난한 생활을 하던 한국부터 경제를 일으키고 민주화 과정을 거쳐 선진국 대열에 오른 오늘날의 한국까지 67년 간을 함께 동고동락한 분이셨다. 

신부님의 집은 간소하고 담박했다. 다른 집들처럼 거실에는 소파와 TV가 있고 침실, 손님방과 부엌이 있는 평범한 구조였다. 방 하나는 사무실로 쓰고 있는데 책장에는 우리말 사전이 여러 개 있다. 1976년 판 우리말 큰사전은 가죽표지가 세월의 무게만큼 낡아있고 손때가 묻어 있다. 신부님의 우리말 실력이 우리나라 사람과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는 증거였다.

거실의 소파도 오래되어 많이 낡아 있다. 가죽의 낡음이 구차하지 않고 경건해 보이는 것은 신부님의 검소하고 소박한 일상의 모습이 연상되어서였다. 거실 벽에는 신부님의 인생 모토가 걸려 있다.

기쁘고 떳떳하게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마당에는 텃밭이 있어서 감자와 고추, 토마토와 상추 등을 길러서 나눠 먹는다고 한다. 농약을 쓰지 않고 화학비료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이라 나누면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아흔 두 살인 신부님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부님의 바지는 낡아서 기워져 있다. 제작진이 바지가 낡았다고 하니까 일하는데 예쁘게 보일 필요가 있냐고 하면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신부님은 은퇴 후 집을 교회로 삼고 사람들과 모여 예배도 드리고 담소도 나눈다. 왜 성당에 십자가도 없고 성모상도 없느냐는 질문에 신부님은 사람들과 차이점을 두기보다는 공통점을 나누고 싶다고 한다. 성모상을 세우지 않고 기독교와 통합을 모색하고 십자가를 세우지 않고 불교나 유교와의 화합을 나누고 싶다고 한다.

나와 너를 구분해서 나의 우월함을 돋보이고 나의 승리로 너를 정복하고 싶어 하는 요즙 세태에 신부님의 화합하는 마음과 나눔의 실천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경쟁이라는 틀 안에서 무한질주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신부님의 삶과 철학은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권력을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며 누리려 하지 않고 나눔과 섬김의 정신으로 실천하는 마음, 차이를 두고 경쟁하기보단 열린 마음으로 공통점을 지향하고 소박하게 사는 자세, 텃밭을 일구며 노동의 즐거움을 몸소 실천하며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삶, 그래서 신부님의 웃음은 밝고 정직하다. 환하면서 소박하다. 

두봉 신부님의 집은 낮은 곳에 내려와 있는 진정한 기쁨과 평화의 집이었다. 두봉 신부님의 기쁘고 떳떳하게 사는 삶은 연말을 맞이하여 일년의 삶을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행복한 삶인가. 한 해를 정리하며 꼭 한번 되물어야 할 질문이 아닐까. 
두봉신부님 성탄절 나눔의 삶 소박한 삶 노동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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