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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최남단 여서도는 돌의 왕국이다. 섬 중에서 돌이 많은 곳이 제주도인데, 제주의 화산석과는 차별성이 있다. 여서도 탄생 배경과 관련한 설화가 있다. 고려시대에 제주도 근해에서 대지진이 7일간 계속되더니 해상에 거대한 산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고려의 '여(麗)'와 상서로이 생겨난 섬이라는 뜻의 '서(瑞)'를 합쳐 부르게 된 지명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태랑도(太郎島)라고도 불렀다.

비슷한 이야기가 제주도에도 있다. 제주도 한림 앞바다의 비양도는 조선 초기에 화살대와 죽순이 많이 나서 죽도라고 불렀다. 또 한라산에서 봉이 하나 날아와 생성됐다고 해서 비상(飛翔)의 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서산(瑞山)은 고려 목종(穆宗) 5년 6월에 산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나왔다. 산에 네 구멍이 뚫리고 용암이 솟아나 닷새 만에 그쳤는데, 그 물이 모두 엉기어 기왓돌이 됐다. 10년에 상서로운 산이 바다 가운데에 솟았다"라고 기록돼 있는데, 현재의 비양도로 추정죈다.

여서도에 전하는 설화는 탐라의 비양도처럼 정확한 기록이 없고, 대신 패총에서 고대 유물이 발견돼 역사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섬으로 여긴다. 

고대인, 여서도에서 하늘의 기운 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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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유물과 함께 여서도에서는 15개의 성혈 바위가 발견됐다. 농경사회를 주관하는 다산과 신앙의 의미로만 받아들였던 성혈 바위. 고고학 조사만 이뤄졌고 연구가 여태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 의미가 심상치 않다. 

본보(완도신문) 9월 9일과 16일 자 고금도 고인돌 편에서는 고금도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한 바 있다. 별자리의 대표적인 예는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도 뚜렷한 흔적이 남아있다. 벽화에는 상상의 하늘나라를 묘사했는데, 거기에는 신선과 선녀가 노닐고 있고 은하수나 견우직녀와 같은 설화 속 별자리가 함께 그려져 있다.

별자리는 천장 위로 좁아진 여러 면에 주로 그려졌다. 동쪽에는 해를 상징하는 삼족오(세 발 달린 까마귀), 서쪽에 그려진 달 속에는 옥토끼와 두꺼비가 뚜렷하다.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28개의 별자리는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며 고구려인은 '하늘의 자손'임을 뜻한다고.

근래에는 가야 문명 발굴 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가운데, 함양 말이산 13호 고분의 무덤 덮개돌에서 특이한 석판이 발견됐다. 덮개돌 표면에 새겨진 무수한 홈 그것은 바로 별자리였다. 

남반구에 주로 나타나는 별자리로서 북두칠성을 닮은 남두육성과 방수, 심수, 미수, 기수 등이 표현됐는데, 북두칠성이 죽은 자를 위한 별자리라면 북두육성은 산자를 위한 별자리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서양의 별자리 이름과 달라서 낯설게 들리는 우리 전통의 별자리 이름이다. 

고대사회에서부터 천문을 관측하고 하늘의 이치를 알아야 하는 일이 중요한 국가사업이었다. 

그것은 제사장의 권한이었다. 다산의 상징으로만 여겨왔던 성혈이 고대 하늘에 비치는 별자리를 그대로 돌판에 표현한 것으로 학계의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됐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대 유적 별자리는 중국에서 발견된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별의 크기가 각각 다른 것이 특징이며, 이것은 별이 빛나는 밝기에 따라 표현한 것이라고. 

천문관측에 관한 관심은 고대사회를 지배했다. 그들은 농사체계를 이뤄 역법을 관장하고 천문학을 발달시켰다. 고대인의 무덤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는 통치자의 권위를 말해준다. 선사시대 통치체계를 갖춘 세력이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바로 그것이다. 

대양의 꿈 펼쳤던 해양 세력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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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인류에게 섬은 천혜의 자원이었다. 난폭한 맹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고, 마음껏 바다생물을 채취하고 포획해 평화롭게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었다. 그곳에서 고대인들은 부족사회를 형성했으며, 왕성하게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일반적으로 섬은 버려진 땅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왜구의 노략질로 인해 고려 때부터 공도정책을 펼쳤고, 텅 빈 섬에 숨어 들어간 사람들의 무리로 인해 오래전 섬은 문명이 없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완도의 여러 섬에서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발굴돼 태초부터 섬 지역에도 고대문명이 형성돼 왔음을 밝히는 계기가 됐다. 섬 지역의 고고학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함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완도의 섬 곳곳에 대양을 지배하며 꿈을 펼치려 했던 해양 세력,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지승 다큐사진가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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