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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온라인상에서 즐겨 쓰는 닉네임 중 하나가 '가베치(gabeci)'이다. 가베치는 몽골어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의미한다. 활 잘 쏘는 사람을 뜻하는 가베치를 닉네임으로 삼을 정도로, 나는 활쏘기에 오랜 로망이 있었다.

때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나는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MBC 드라마 <주몽>에서 주몽 역할을 맡았던 배우 송일국이 안대로 눈을 가린 채 화살을 쏴 백발백중하는 장면을 보고 반하고 말았다.

게다가 태조 이성계, 충무공 이순신 등 내가 존경하는 위인들은 모두 활의 명인들이었다. 난세를 극복한 한국사의 영웅들은 모두 활의 명인들이었다는 사실이, 영웅을 동경하던 소년의 가슴 한 구석에 활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것이었다.
 
MBC 드라마 <주몽>에서 주몽 역을 맡은 배우 송일국이 활을 쏘는 모습
 MBC 드라마 <주몽>에서 주몽 역을 맡은 배우 송일국이 활을 쏘는 모습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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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활터가 그리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활터' 하면 떠오르는 엄격한 이미지 때문에 소심한 성격의 나는 쉽사리 활터에 발 들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번번이 중도포기했던 활쏘기

내가 활을 처음 잡은 것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3년 봄이었다. 국궁 1번지로 유명한 황학정(黃鶴亭)에서 개최한 3개월 과정의 국궁교실에 등록한 것이다.

시위를 당기는 깍지손에 물집이 잡히길 여러 번, 나중에는 굳은살이 생겨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열심히 활을 배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활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2013년 여름, 황학정 국궁교실에서 활을 배우던 때
 2013년 여름, 황학정 국궁교실에서 활을 배우던 때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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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중앙대 국궁동아리에서 개최한 활쏘기 특강에도 참여했지만, 특강이 끝난 뒤 취미생활로 계속 이어가지 못한 채 활을 또 내려놓게 되었다. 도전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번번이 중도 포기하고 만 것이다.

그러다 형의권(形意拳)이라는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활을 다시 잡을 기회는 더 멀어졌다. 형의권 하나만 소화하기에도 벅찬데, 운동을 또 하나 새로 시작하기에는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은 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매년 새해 초마다 갱신하는 버킷리스트에도 '활 배우기'는 항상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오죽 답답했으면 연습용 고무줄을 사다 혼자 당기면서 놀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다시 활을 잡다

그러다 최근 동대문 근처에 새로 문을 연 실내 활터에서 전통 활쏘기 교육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학원생인 나는 때마침 학기가 마무리될 무렵이라 다소 여유가 생긴 상황이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활 배우기를 실천하고 싶었다. 그렇게 2021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다시 활을 잡았다. 활을 내려놓은 지 꼭 5년 만이었다.
 
전통활쏘기클럽(TAC) 실내 전경
 전통활쏘기클럽(TAC) 실내 전경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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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이 있던 날.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나란히 사대에 서서 활을 냈다(활터에서는 활을 쏠 때 '낸다'라고 표현한다). 5년 만에 다시 잡는 활이었기에 화살은 갈 곳을 잃은 채 이리저리 방황했다. 탄착군이 잘 형성된 다른 수강생들 사이에서 중구난방으로 꽂힌 내 화살을 보니 부끄러워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오랜 시간 활을 잡지 않아 다시 맨들맨들해진 깍지손은 몇 번 활을 당기고 나니 금세 물집이 잡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활을 밀고 당기는 양팔은 부들부들 떨리는 통에 과녁의 조준점에 활을 고정할 수가 없었다.

옆에서 함께 활을 내는 이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수록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조급한 마음으로 활을 내다 그만 활 시위에 뺨을 맞고 말았다. 화끈거리는 볼을 어루만지면서 돌아보니 마치 정신 차리라는 채찍질 같았다.
 
오랜만에 활을 쏘니 화살이 중구난방으로 날아가 꽂혔다.
 오랜만에 활을 쏘니 화살이 중구난방으로 날아가 꽂혔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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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 도(刀)·검(劍)·곤(棍)·창(槍) 등 여러 무기들을 잡아봤지만, 활만큼 까다로운 무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잘 쏘려고 욕심을 부리거나 조급한 마음을 먹을수록 오히려 화살은 애먼 데로 날아가고, 나를 다치게 한다. 그래서 차분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활 시위에 뺨 한 대를 얻어맞고 나니 옛 선비들이 왜 활쏘기를 심신수양의 수단으로 중히 여겼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옛 선비들은 과녁에 화살을 날렸으나 맞지 않더라도, 그에 동요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정곡을 맞출 때까지 쉼 없이 반복·숙달하는 과정을 '마음을 닦는 과정'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래서 활쏘기는 '도와 덕을 함양하는 군자의 무예'로 오랜 시간 자리 잡아왔던 것이다.

다시는 손에서 활을 놓지 않으리

어쨌든 2021년을 보내는 시점에서 나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드디어 실천했다. 그리고 2022년 새해 목표는 오랜 방황(?) 끝에 다시 잡은 활을 놓지 않는 것이다. 나의 영웅인 주몽이나 이성계처럼 신궁(神弓)이 되고 싶다는 꿈까지는 감히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평생의 취미생활로 활쏘기를 계속 즐기고 싶다.

활쏘기는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최적화된 운동이기도 하다. 사대에 서면 서로 대화할 일이 전혀 없다. 활을 메겨서 당기고 쏘는 순간에는 오직 침묵과 고요만이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급한 성격을 고치는 데에도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새해에는 활쏘기라는 운동에 한 번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blog.naver.com/gabeci)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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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수료(독립운동사 전공) / 형의권·팔괘장·활쏘기(국궁)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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