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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도란 나무 사다리 잔(棧) 자를 써서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처럼 매단 길을 말한다
▲ 잔도로 조성된 한탄강 주상절리길 절벽구간 잔도란 나무 사다리 잔(棧) 자를 써서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처럼 매단 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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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에는 휴전선 북쪽 땅에서 발원하여 휴전선 남쪽 땅으로 흐르는 강이 있는데, 강과 그 일대는 접경지대로 한동안 민간인의 접근이 통제되었다. 어떤 이는 이 강을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의 한이 서려 탄식이 나온다고 하여 한탄강으로, 또 다른 어떤 이는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이 강을 건너면서 한탄했다 하여 한탄강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이 강을 '대탄'이라 표기했듯이 한탄강이란 이름은 "큰여울"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식 표기임이 분명하다. 이제 그곳이 새로운 시대정신과 기후변화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50만 년의 지질 역사를 지닌 한탄강은 2015년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202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었다. 이에 발맞춰 시대가 요구하는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121km의 종주길을 완성하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조성'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이미 조성된 78km의 종주길에 지형적으로 단절되었던 철원의 절벽 구간 3.6km가 잔도 형식으로 지난달 19일에 완성되었다.

잔도란 나무 사다리 잔(棧) 자를 써서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처럼 매단 길을 말한다. 그리고 기후 온난화로 얼음길 유지가 어려운 한탄강에 겨울용 부교를 띄워 조성하던 물윗길(8km)도 최근 태봉대교에서 순담계곡까지 이어짐으로써 12km에 가까운 한탄강 주상절리길이 완성되었다. 

올 들어 가장 추웠다는 지난 주말(12월 18일), 철원지역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대표하는 잔도길과 물윗길을 걷고 왔다. 궁예가 도망치며 들렀던 곳이라 드르니로 불리게 되었다는 드리니마을에서 출발하여 태봉대교까지 이어지는 길이니 그야말로 궁예길이라 해도 되겠다. 역사 속 패자로서 정사에서는 잊히고 야사에서는 악행만이 부각되었던 궁예가 관광사업에서는 그의 가치를 인정받는 듯했다. 
 
파란 하늘 아래 주상절리는 더욱 뚜렷해 보였고 강물은 주상절리까지 그대로 비쳐 더욱 검푸렀으며 간간이 얼음이 둥둥 떠 있다
▲ 겨울철 한탄강 주상절리 파란 하늘 아래 주상절리는 더욱 뚜렷해 보였고 강물은 주상절리까지 그대로 비쳐 더욱 검푸렀으며 간간이 얼음이 둥둥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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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추위에 긴장하여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상태로 드르니마을의 데크길을 내려갔다. 파란 하늘 아래 주상절리는 더욱 뚜렷해 보였고 강물은 주상절리까지 그대로 비쳐 더욱 검푸렀으며 간간이 얼음이 둥둥 떠 있었다. 서늘한 비경이었다. 절벽 쪽에는 오랜만에 보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허공의 하늘길, 잔도
 
밤새 내린 서리로 나무로 만들어진 잔도의 바닥은 몹시 미끄럽다.
▲ 드르니에서 순담계곡까지 이어지는 잔도 밤새 내린 서리로 나무로 만들어진 잔도의 바닥은 몹시 미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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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추위는 몸의 열기로 녹았는데, 문제는 나무로 만들어진 잔도와 전망대 바닥이었다. 밤새 내린 서리로 미끄러워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그대로 미끄러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리에 온 힘을 주며 조심조심 걸었는데도, '아뿔싸~' 협곡 안쪽으로 들어간 타원형 스카이 전망대에서 넋을 잃고 주상절리를 보고 나오다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절벽의 아찔함보다 바닥의 미끄럼이 더 두려운 곳이었다. 드르니에서 시작한 잔도는 순담계곡까지 이어졌다. 

허공의 하늘길을 걸으며 위에서 주상절리와 한탄강을 감상했으니 다음은 물 위를 걸으며 한탄강의 물살과 주상절리를 눈앞에서 볼 차례였다.
 
송대소와 사람이 함께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나 스스로가 송대소 일부가 된다. 멀리 은하수교가 보인다.
▲ 송대소 물윗길 송대소와 사람이 함께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나 스스로가 송대소 일부가 된다. 멀리 은하수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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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물윗길'은 잔도가 끝나는 순담계곡에서 고석정과 은하수교가 있는 송대소를 지나 태봉대교까지 가는 8㎞ 길이의 트레킹 코스다. 강물 위를 걷는 물윗길 2.4㎞와 자갈과 현무암 바위가 널려 있는 강변길 5.6㎞를 걷는 것이다. 

한탄강은 강폭이 좁고 물살이 빠르고 고저 차가 심할 뿐 아니라 폭포까지 갖고 있다. 게다가 겨울이 되면 추운 날씨로 강물은 꽁꽁 얼어붙는다. 궁예의 실책 중 하나가 수로의 역할이 불가능한 한탄강을 끼고 있는 철원을 도읍으로 정함으로써 필수 물자 유통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지닌 한탄강이 여름철에는 래프팅의 중심지로 겨울철에는 얼음 트래킹 코스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기후변화로 얼음길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어지자 한탄강에는 동절기용 부교가 띄워졌다. 물윗길이 조성된 것이다. 일 년 전 새로 개통된 은하수교에서 송대소의 주상절리를 감상하다가 강 위를 걸을 수 있는 S자형 부교를 보며 못내 아쉬워했는데, 드디어 강물 위를 걷게 되었다.
 
추위가 늦게 온 탓에 강물은 얼지 않아 빠른 물살은 여전하다
▲ 물윗길에서 마주한 한탄강 강물 추위가 늦게 온 탓에 강물은 얼지 않아 빠른 물살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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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늦게 온 탓에 강물은 얼지 않아 빠른 물살은 여전했고 강물 위에 살짝 언 얼음덩이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부교 중간중간 망으로 비누 거품같이 보이는 덩이를 걷어내고 있는 관리인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한 분에게 다가가 거품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빠른 물살이 만들어 낸 물거품이 언 것이라 했다. 

순담계곡의 첫 물윗길을 거쳐 강변길로 들어서니 왼쪽에 고석정이 나타났다. 추운 날씨와 하늘에 낀 먹구름으로 고고한 자태의 고석정은 스산해 보였다. 
 
승일교는 한국전쟁 전 북한이 건설하다 전쟁으로 중단된 것을 1958년 남한이 완공한 남북한 합작품이다
▲ 한탄대교와 그 뒤의 승일교 승일교는 한국전쟁 전 북한이 건설하다 전쟁으로 중단된 것을 1958년 남한이 완공한 남북한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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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길과 부교를 지나니 멀리 붉은빛 아치형 다리가 보였다.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그 뒤로 노동당사를 연상케 하는 오래된 다리가 함께 있는 것이다. 승일교다. 승일교는 한국전쟁 전 북한이 건설하다 전쟁으로 중단된 것을 1958년 남한이 완공한 남북한 합작품이다.

'승일교'라는 이름은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다 전사한 '박승일' 대령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하는데(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을 조합했다는 설도 있음), 어찌 되었든 승일교만은 현재 통일을 이룬 셈이다.

또 다른 부교를 건너고 바윗길을 넘어가자 눈에 익숙한 은하수교가 보였다. 송대소의 물윗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태봉대교까지 450m를 물윗길로만 가면 되었다. 
 
송대소 절벽의 지층은 켜가 7~8개나 되고 높이가 30~40m에 이를 정도로 장엄한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다. 물이 살짝 언 모습이 보인다.
▲ 송대소의 주상절리  송대소 절벽의 지층은 켜가 7~8개나 되고 높이가 30~40m에 이를 정도로 장엄한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다. 물이 살짝 언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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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소에는 수직의 기둥 모양 이외에도 옆으로 기울어진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가 있다
▲ 부채꼴 모양의 송대소 주상절리 송대소에는 수직의 기둥 모양 이외에도 옆으로 기울어진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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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소는 철원 9경 중 하나이다. 송대소 절벽의 지층은 켜가 7~8개나 되고 높이가 30~40m에 이를 정도로 장엄한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직의 기둥 모양 이외에도 옆으로 기울어진 부채꼴 모양도 보였다. 바위로 이루어진 수정이라고나 할까. 은하수교에서는 관람객 입장에서 송대소를 보았다면 물윗길에서는 송대소와 사람이 함께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나 스스로가 송대소 일부가 되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
 
폭이 80m인 하천 면을 따라 3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직 얼지 않고 우렁찬 소리로 내려오고 있다
▲ 직탕폭포 폭이 80m인 하천 면을 따라 3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직 얼지 않고 우렁찬 소리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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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윗길 종착지인 태봉대교에서 일정을 마친다면 직탕폭포가 눈에 밟힐 것이다. 태봉대교를 거쳐 직탕폭포를 향해 땅 윗길로 올라갔다. 폭이 80m인 하천 면을 따라 3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직 얼지 않고 우렁찬 소리로 내려오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날리던 눈발은 서울로 오는 동안 함박눈으로 변했다고 한다. 한탄강 겨울의 눈은 1100년 전 궁예가 살았던 시절에도 70년 전 박승일 대령이 북진하던 시절에도, 지금 북한 땅의 한탄강 유역에도 내리고 쌓였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잔도와 물윗길 입장료는 각각 1만 원이며, 표를 사면 입장료마다 5천 원을 철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65세 이상의 입장료는 5천 원이며 2천 원을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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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미국 생활 후 한국의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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