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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편집자말]
연말이면 다이어리를 준비하는 것이 일종의 행사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준비한 다이어리를 1년간 알차게 활용한다. 일정을 기록하는 휴대폰 앱도 다이어리와는 별도로 잘 사용한다. 휴대폰 기능인 메모장도 매일 쓴다. 각각의 것들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다이어리는 은밀한 내면의 소리를, 앱에 기록하는 일정은 짧게 한두 단어로 기억해야 할 것들을 담고, 메모장은 장보기나 바로 사용하고 지울 것들을 쓰는 정도의 용도다.

최근 다양하고 기능이 뛰어난 앱이 출시되며 다이어리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이렇게 되면 종이 다이어리는 지난 세대의 유물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과 수십 종의 다이어리를 앞에 두고 뭘 고를까 고민하던 기억도 추억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염려도 있었다. 

다이어리 앱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기능까지 완비하고 있고 음성까지 정교하게 기록할 수 있다고 하여 펜과 종이의 시장까지 위협하는 듯했다. 하지만 앱과 종이 다이어리의 효용은 내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앱이 전혀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특별한 감성이 종이 다이어리에는 있다.

앱으로 채워지지 않는 다이어리의 감성
 
아직 2022년이 되지 않았지만 미리 2022년 한 해의 중요한 일정을 눈으로 짚어볼 수 있다.
 아직 2022년이 되지 않았지만 미리 2022년 한 해의 중요한 일정을 눈으로 짚어볼 수 있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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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10월 중순쯤 되었을 때 딸이 2022년 다이어리를 '물어' 왔다. 다이어리를 적으며 월별 스케줄을 기록하는 칸이 마지막 두 장만 남은 것을 확인하면서도 막상 내년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무사히 오늘 하루를 살아내느라 내일에 대한 생각을 잊고 살았구나 싶었는데 새해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딸이 일깨워준 것이다.

다이어리뿐이었을까. 올해는 모든 일들이 의식하고 나면 지나 있었다. 습관처럼 다이어리를 펼치고 일상을 기록하면서도 내게 앞으로의 계획은 없었던 것 같다. 늦었지만 이제는 2022년의 시간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나 싶어 잠깐 날짜를 의식했더랬다.

딸의 권유에 밀려 올해도 스타벅스 다이어리로 정했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 근처 매장에서 견본도 차분히 살펴보았다. 12월 첫 주말, 늘 했던 대로 다이어리를 받으러 매장에 갔더니 예약을 해야 수령할 수 있다고 했다. 바로 매장을 검색했지만 내가 사는 지역 부천엔 어느 매장도 재고가 없었다.

범위를 넓혀 지역을 서울로 확장했고 여러 지역을 거쳐 드디어 신촌 쪽 매장에 남은 다이어리의 숫자가 떴다. 다이어리를 찾으러 일부러 서울까지 가야 하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직장이 있는 김포 지역을 검색했더니 직장 근처 세 곳에 원하는 다이어리가 남아 있었다.

매진된 다이어리를 확인하며 다이어리를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 우선 놀랍고 고마웠다. 스타벅스의 다이어리가 절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가졌을 때 내가 느꼈던 만족감이나 뭔지 모를 뿌듯함을 즐기는 마니아층의 수요는 여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선택한 다이어리는 크리에이티브 노트다. 넓은 면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특별히 선택했다.

가끔은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 '의식'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메이슨 커리가 그의 책 <리추얼>에서 '리추얼'을, 하루를 마치 종교적 의례처럼 여기는 엄격한 태도이자, 일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유용한 도구,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반복적 행위'라고 말했다면 내게 다이어리는 '현재의 시간을 붙잡는 혼자만의 의식' 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날이 그날인 일상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다이어리를 고르고 나면 다음 준비는 펜이다. 집 안 곳곳에 널린 것이 펜이지만, 조금만 긴장해도 글씨가 온통 흔들리는 사람이라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필체를 유지하게 하는 펜을 찾아 문구점으로 향한다.

운동선수들이 자신만의 기구를 신중하게 고르는 것처럼, 내 손에 꼭 맞는 펜을 고른다. 다음은 펜의 굵기다. 선택한 다이어리 내지의 질감에 적당히 미끈하게 흐르는 것을 확인까지 하면 종이에 써 내려갈 때의 사각거림을 오감으로 즐길 만반의 준비가 끝난다.

김무곤의 <종이책 읽기를 권함>에서 "종이책은 인간의 감각을 다양하게 자극하는 매체라는 장점이 있다"라고 했다. 저자가 종이책을 읽으며 느끼는 "스르륵 넘어가는 종이 책장의 소리, 향긋한 종이 냄새, 책장을 넘길 때 손맛의 짜릿함 등"을 나는 종이 다이어리 통해서도 느낀다.

색색의 띠지와 스티커, 다양한 색상의 포스트잇을 준비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다이어리 첫 페이지를 넘기고 연락처를 남기는 것부터 가족들의 생일과 각종 기념일, 잊지 않으려고 적은 경구 등을 이전의 다이어리에서 옮겨 적는다. 그러고는 스티커와 띠지로 생일과 기념일에 정성스럽게 장식한다. 아직 2022년이 되지 않았지만 2022년 한 해의 중요한 일정을 눈으로 미리 짚어보는 것이다.

다이어리는 쓰는 데는 정성도 필요하다. 손으로 한 자 한 자를 새기듯 반듯하게 적는다. 글씨가 일정하면 다이어리는 더 돋보인다. 거기에 다양한 색의 스티커로 강조하고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덧붙이기도 한다. 다시 열어 볼 때면 한눈에 의미 구성이 들어올 수 있도록 일종의 범주화 작업으로 마무리한다. 물론 이러한 정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간단하고 단순해진다는 함정이 있지만. 

한때 다이어리를 장만하겠다고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 들러 다양한 다이어리의 내지 구성과 크기, 무게, 종이질까지 꼼꼼히 점검하며 고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유명하다는 로이텀 다이어리를 고민해서 골랐지만 그해는 다이어리를 반도 채우지 못했고 책장에 2년 정도 더 꽂혔다가는 버려졌던 것 같다.

아마도 표지와 내지의 두께가 부담스러워 휴대하기 어려웠고 진하고 단순한 색상에 손이 자주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이전에는 늘 작은 수첩에 가족의 생일이나 주소록, 일정 메모 정도만 짧게 했었기에 책 두께 정도의 다이어리는 적응하기 어렵기도 했다.

남겨진 여백이 아까웠고 다이어리를 완벽히 사용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이후로도 죽 다이어리를 준비했다. 절차처럼 서점에 함께 가서 진열된 다이어리를 살피고 내지 구성의 장단점을 얘기했지만 항상 결론은 스타벅스 다이어리였다. 그만큼 쓰는 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는 말이다. 딸은 지금까지 엄마를 위해 4년간 그 일을 착실히 잘해오고 있다. 덕분에 매년 새로운 다이어리를 만나게 되었고 이제는 제법 스타벅스 다이어리의 마니아가 되어가는 중이다.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의식을 치르듯 펜을 들고 생각한 것들이 도망가지 않도록 다이어리에 꽁꽁 붙잡아 맨다.
 의식을 치르듯 펜을 들고 생각한 것들이 도망가지 않도록 다이어리에 꽁꽁 붙잡아 맨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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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한 것을 쓰던 '습관'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이제 다이어리는 '의미'가 되는 중이다. 습관에 의미를 부여하니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나름 멋진 일상으로 바뀌는 듯하다. 다이어리를 펴면 사뭇 진지해진다. 계획한 일들을 적고 지난 일을 점검하며 새로 시작할 것과 흘려보낸 것들의 의미를 되새긴다. 어쩌면 현재의 '나'를 냉정하게 마주하고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기억이 파편처럼 흩어지는 느낌이다. 다이어리는 기억의 끈을 조금 팽팽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의식을 치르듯 펜을 들고 생각한 것들이 도망가지 않도록 다이어리에 꽁꽁 붙잡아 맨다. 그냥 흘러갈 수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잡아보겠다는 노력이다.

일상의 방향을 잡기에도 다이어리는 효과적이다. 휴대폰 메모장에 짧게 떠오르는 단상들과 일상을 짧게 적어 놓지만, 그것들은 흩어진 기억의 조각과 다름 없다. 다이어리는 그것들을 한 곳에 모아주는 힘이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최적의 루틴을 찾을 수 있고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게 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날을 계획하기에 이보다 더 유용할 수 없다.
 
성공한 사람들은 능동적 분류를 통해 일의 중요도와 priority(우선순위)를 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엄청난 효율을 발휘한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우리 뇌는 비슷한 사물을 자동적으로 하나로 묶는다. 그런 본능을 이용하면 뇌의 확장을 이뤄내고 일상의 일들과 물건들을 효율적으로 정리해서 최적화된 루틴을 추구할 수 있다. - 대니얼 J. 레비틴, <정리하는 뇌> 중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하면 그 무엇이 우리가 된다. 유능함이란 그러니까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매일 다이어리를 쓰며 일상의 시간들이 모으고 하루를 견고하게 만든다. 유능(?)까지는 아니어도 '나다움'은 지키기 위해.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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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 후반, 남은 시간을 고민하며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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