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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남겨진 은이성지에는 중국 상해에서 있던 성당을 새롭게 복원한 김가항 성당과 그의 기념관이 남아있다.
▲ 은이성지와 김가항성지의 전경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남겨진 은이성지에는 중국 상해에서 있던 성당을 새롭게 복원한 김가항 성당과 그의 기념관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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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에 시작해서 올해 말에 이르기까지 1년 반의 세월 동안 경기도 전역을 빠짐없이 돌아다녔고,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용인의 마지막 장소들을 돌아보며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고 한다.

용인은 와우정사 등 인상 깊은 사찰들도 있지만 천주교의 역사가 두루 묻어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근처 안성의 미리내 성지와 연계해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 보자면 양지 건너 깊은 산골에 자리 잡은 은이 성지다. 

은이 성지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36년 모방(maubant) 신부에게 세례성사와 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이다. 사제 서품(신부로 임명)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활동은 은이 공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이곳에서 순교 전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였다.     

'은이'는 말 그대로 숨겨진 동네를 의미하는데, 경기도의 다른 천주교 동네와 마찬가지로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로서 일찍이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현재는 김대건의 자취가 서려있는 당진의 솔뫼성지와 안성의 미리내성지처럼 크고 화려한 규모는 아니지만 주변의 산세와 더불어 아늑함이 느껴진다.

현재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념관과 김가항 성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김가항 성당은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성당과 확연하게 다른 양식이라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명나라 시기에 세워진 중국 상해에 있던 성당이기 때문이다. 이 성당에서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한동안 잊혔던 김가항 성당은 1990년에 이곳을 방문한 오기선 신부에 의해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성지순례를 위해 한국인들이 종종 찾기도 했었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은 한국 천주교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 김대건 신부의 흉상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은 한국 천주교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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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0년 7월 상해 정부의 도시 개발 정책에 따라 성당 철거계획을 통보받게 되었고, 수원교구는 주교회의 승인을 거쳐 김가항 성당의 대들보, 자재 등을 활용하여 이 자리에 복원, 건립한 것이다. 비록 우리와 낯선 외관을 취하고 있지만 새하얗고 청초한 모습이 우리네 산하와 제법 어울린다.

은이 성지에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또 하나의 천주교 성지가 우리를 맞아준다. 고초골 공소라 하는 곳인데 공소는 주임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본당보다 작은 신자들의 모임 장소라 할 수 있다. 고초골은 앞서 언급한 곳들처럼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인 교우촌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병인박해(1866년) 당시 이곳에 숨어 살던 천주교인들은 붙잡혀 순교했고 마을은 불타 없어졌다.
 
용인, 광주, 안성 일대에는 천주교박해를 피해 숨어살던 교우촌이 여럿 존재했다. 그 중 하나가 고초골이었다. 신앙의 자유가 열리자 고초골에는 한옥양식의 공소가 들어왔다.
▲ 고초골공소 용인, 광주, 안성 일대에는 천주교박해를 피해 숨어살던 교우촌이 여럿 존재했다. 그 중 하나가 고초골이었다. 신앙의 자유가 열리자 고초골에는 한옥양식의 공소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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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종교의 자유가 생긴 1886년에 다시 천주교인들이 이 마을에 모여들었고, 기도 및 집회 장소로 쓰일 공소를 건립하게 된다. 그리하여 현재도 남아 있는 한옥 형태의 공소가 건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용인은 예로부터 많은 사대부가 살았던 만큼 가문과 연관된 고택도 두루 남아있는 편이다. 그중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은 조선 후기의 중부지방 가옥 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재라 생각한다.

용인은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마을, 골목마다 전해지고 있지만 다양한 테마의 박물관들이 많아 일명 박물관 도시로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테마파크, 민속촌을 가지 않아도 좋을 만큼 알찬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한 장소가 많다. 그중 몇 군데를 뽑자면 우선 마북동 주택가에 웅크리고 있는 장욱진 가옥을 언급하고 싶다.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장욱진화가가 말년에 작업을 이어가던 곳이 용인에 위치한 장욱진 가옥이다. 양옥과 한옥으로 구성된 장욱진 가옥은 그가 꿈꾸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 장욱진가옥의 전경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장욱진화가가 말년에 작업을 이어가던 곳이 용인에 위치한 장욱진 가옥이다. 양옥과 한옥으로 구성된 장욱진 가옥은 그가 꿈꾸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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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인 그는 집, 가족, 아이 등 일상적인 소재를 가지고 간결하고 독특한 색감으로 표현한 화법으로 유명하다. 그는 명륜동, 덕소, 수안보 등 거처를 계속 옮겨 다녔지만 가장 애정을 보인 장소는 말년에 머문 용인이라 할 수 있다.

양옥과 한옥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의 장욱진 가옥은 그가 꿈꿨던 이상향이 잘 녹아들어 간 듯했다. 특히 벽돌로 지어진 2층 규모의 양옥은 그의 초기 작품 '자동차 있는 풍경'과 꼭 닮았다. 장욱진 화가는 양옥에서 일 년 반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자그마한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용인 8경의 하나인 기흥호수공원은 거대한 규모로 이번 경기별곡 시리즈의 마지막 답사지가 되었다.
▲ 기흥호수공원 용인 8경의 하나인 기흥호수공원은 거대한 규모로 이번 경기별곡 시리즈의 마지막 답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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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옥에서 그의 산책 휴식터로 애용되었을 정자를 지나 한옥을 걷다 보면 어느 것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가 없다. 하지만 장욱진 가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입구에 있는 집옥헌이라 불리는 한옥 카페다. 좀처럼 느끼지 못한 포근함과 아늑함이 건물 내부를 감싸 안는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고 이제 용인 답사의 마지막 장소로 가려한다. 

지면의 한계상 전부 소개하지 못했지만 용인에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경기도 박물관과 백남준 아트센터가 함께 위치해 있고 이 역시 반나절 답사로 충분한 곳이다. 그 밖에도 한국 등잔박물관, 야외 정원이 아름다운 호암미술관, 삼성교통박물관, 용인시 박물관 전부 빠질 것 없이 훌륭한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이제 기흥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수공원인 기흥호수에서 경기도 답사를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용인은 급성장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이 흐릿해졌을지 모르지만 본래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자원이 경기도 도시 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편이다. 주변 도시인 안성, 수원과 연계하여 다양한 관광자원을 개발한다면 용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것이다.     

작년 여름 김포 용화사에서 시작된 경기도 답사가 비로소 막을 내렸다. 인천과 강화를 포함해서 총 33개의 도시가 소개되었으며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시리즈가 무사히 진행되었고 책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경기 별곡 1과 방송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앞으로 경기 별곡 시리즈는 좀 더 자료와 내용을 풍성하게 편집해서 책으로 계속 출판된다. 답사 과정의 후일담으로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 짓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1권 (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 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경기도는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와 함께 합니다. 강연 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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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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