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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가 20일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에게 빨간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가 20일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에게 빨간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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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동료들과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대화가 오고가는 도중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정치인이 되고 싶을수록 '정당정치'에서 멀어지는 것이 낫다는 말이었다. 분명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에 속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한 정당에 속해 오래 정치 이력과 실력을 쌓아 정치인이 되는 경우, 특히 선출직 정치인이 되는 경우는 정말 특별하다.

게다가 많은 조직이 그렇듯 정당도 활동을 하다 보면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입당을 해서 관심을 가지고 활동당원이 되고 그 안에서 역할들을 역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신임보다 정념이 쌓이는 시간들이 길어진다. 게다가 정치혐오, 정당혐오가 심한 사회에선 정당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버티기 힘든 때가 있다.

이렇게 안팎으로 소위 '이미지 관리'를 넘어 실력을 쌓아 선출직 정치인이 되기에 우리 사회는 참 각박한 편이다. 하다못해 지연, 학연은 차치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 특이한 행보를 보이는 사람 등이 아니면 정치판에서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그뿐인가. '인재영입'이나 '파격행보'라는 수식어를 붙여 탈당과 이적을 반복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이목을 집중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인을 '새롭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 실제로 존재하는 상황 탓을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언론일까. 유권자일까. 이러한 정치구조를 만들어낸 것은 결국 정당이고 정치인 자기 자신 아닐까.

'그'의 페미니즘 정치가 끝난 것

이 생각에 사로잡혀 몇 주를 보내던 중, 어제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였던 신지예씨가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다는 것이었다. 새벽에 뜬 기사 두 개를 몇 번이고 클릭했다. 오보이기 바라는 마음도 컸다. 그건 내가 신지예라는 정치인에게 거는 작은 기대였다. 그러나 이내 그의 입장문을 보게 되었고, 그가 대표로 있었던 단체에서 신 대표의 '결정'은 단체와 무관한 일임을 알리는 내용의 글이 발표되었다.

더 충격이었던 것은 단순히 그의 행보가 아니라 그가 밝힌 입장문이었다. 그는 윤석열 후보가 "약속"했다며 윤석열이 약속하고 만드는 새시대에 그가 함께 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시대를 준비한다는 것은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를 공공선의 방향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라며 새시대준비위원회와 자신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믿는다 덧붙였다.

두 문단의 행간을 반복하여 읽으며 속이 텅 비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윤석열의 시대를 만들기 위해 떠났지만, 어쩌면 그가 2018년부터 말하던 페미니스트가 하는 정치, 페미니즘 정치에 효능감을 가졌던, 지지자들은 잠긴 마음이 되었을 것이다. 이 마음은 신지예 개인에 대한 대단한 열망이나 그를 영웅화 하는 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를 지지하며 물결을 만들어가던 페미니즘 정치의 파도 하나 하나가 큰 바위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 당시 신지예 녹색당 후보 포스터
 2018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 당시 신지예 녹색당 후보 포스터
ⓒ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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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등장은 늘 그랬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매장 될까봐, 죽을까봐 하지 못했던 말을 해주는, 내 속을 말해주는 정치의 등장이었기에 결국 삶과 직결되어 있었다. 지금 느껴지는 이 비애감은 온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그를 평소에 어떻게 생각했건 간에 적어도 신지예의 입으로 대변되는 '페미니즘 정치'는 끝났기 때문이다. 그가 항시 말하고 직접 '약속'했던 정치는 '당신'과 함께 하는 정치였다. 2020년 팀서울이 만들어질 때 사실 부러울 정도로 그가 말하던 정치의 약속을 실현하는 적절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 '당신'에 호명되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하지만 이제 그가 부르지 않는다고 하여 멈출 수도 없다. 미도지반(迷途知反)의 덕을 보이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페미니즘 정치는 정말로 끝났지만, 이 사태 이후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한 사람으로 무너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페미니스트 정치는 늘 비좁았다. 결국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약속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다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으며, 서로를 지탱해나가며 길을 넓혀야 할 것이다.

한편 이 상황에서 민주당에 입당하는 청년활동가나 윤석열과 손잡는 신지예가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사회를 한 뼘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동일하다. '거기서 거기'의 정치 '그놈이 그놈'의 정치를 반복해 생산하는 주체는 사이좋은 두 정당이다. 그러나 정치에 기대를 거는 페미니스트들은 그가 이재명이 아닌 '윤석열' 곁에 섰기에 당혹스러웠던 것이 전혀 아니다. 이걸 단순히 진영논리로 해석하는 납작함이 우스울 뿐이다. 또한 페미니즘 정치가 그렇게 평가받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잔물방울들이 모여 물보라를 일으키는 정치를 위하여

다시금 몇 주간 내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던 대화들의 따옴표를 다시 쫓아가 본다. 결국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은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정치를 하려고 마음 먹었던 '순간'이다. 순간을 장면으로 잇고, 장면을 공간으로 짓고, 그곳에 초대할 수 있는 정치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몹시도 필요한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파도는 벽에 부딪칠수록 물보라를 일으킨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물방울들로 다시금 세상을 두드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모두의 회복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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