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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늦둥이 딸을 본 김구라는 "성실한 자세로 창의적 방송을 하며 딸을 잘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김구라가 지난 11월 2일 일산 MBC 드라마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근 늦둥이 딸을 본 김구라는 "성실한 자세로 창의적 방송을 하며 딸을 잘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김구라가 지난 11월 2일 일산 MBC 드라마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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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웃지 않았지만 웃는 마음이 느껴졌다. 튀는 입담과 능청스러운 표정의 김구라가 아닌, 뒤늦게 딸을 본 늦둥이 아빠의 기쁨이 전염돼 왔다.

"제 나이도 있고 소중하게 생긴 자식이라 아이를 열심히 키우려고 하는 생각뿐입니다." 김구라는 "아이가 생기니까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성실한 자세로 창의적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일 오후 일산 MBC 드라마센터에서 만난 김구라(51, 본명 김현동)는 <복면가왕>을 촬영하는 날이라 바쁘다고 했다. 나이와 신분, 직업을 숨긴 스타들이 목소리만으로 자웅을 겨루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물론 <복면가왕>뿐만이 아니다. <라디오스타>, <동상이몽> 등 TV 프로그램에서부터 유튜브 채널인 '뻐꾸기 골프 TV'에 이르기까지 김구라는 지금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김구라는 방송 진행 도중 출연자 가운데 인천 사람이 나오면 반가움을 숨기지 않는다. '아 인천?! 그럼 열외.' 그러다 보니 출연자들 가운데 "선배님 저 인천이 고향입니다"라며 먼저 러브콜을 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만큼 고향 인천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얘기다.

"제가 지금 하는 방송, 이런 것들이 다 저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 아니겠어요? 인천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대학교도 인천에서 나왔으니 오리지널 인천 사람인 거죠."

DJ 꿈꾸던 음악소년

김구라가 태어난 곳은 부평구 갈산동이다. 그의 부친이 한국지엠의 전신인 신진자동차에 다녔는데 사원 아파트가 갈산동에 있었던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열 살 때까지 갈산동에 살며 부평북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집 주변엔 공장들만 즐비했고 아이들이 놀 만한 곳이 없었어요. 그나마 계양산이 가까이 있어 여름엔 개구리를 잡았고, 가을엔 잠자리 잡으러 오르곤 했지요."

놀이터를 계양산에서 주안, 석바위로 바꾼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70년대 후반이다. "저희 집이 간석동 송림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주안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집에서 학교까지 지금의 시청 후문 쪽으로 해서 한 시간 정도를 걸어 다녔어요."

석바위 시장에서 떡볶이와 도넛을 사 먹고 전자오락실을 들락거리며 김구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당시 인베이더라는 오락기가 있었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가 싫을 정도였지요."

그런 김구라가 특별히 좋아하는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팝송 감상'이다.

"이모가 주안에 살았는데 음악 방송 들으려고 라디오를 끼고 살았거든요. 밖에서 놀다가 이모를 찾아가면 어김없이 팝송을 듣고 있는 겁니다. 때로는 가슴이 둥둥 울리고 때로는 감미롭기 그지없었지요. 김기덕, 김광한, 황인용, 원종배 같은 디제이 아저씨들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멋있던지, 나도 커서 디제이가 돼야겠다 생각하곤 했지요."

스웨덴의 4인조 그룹 아바, 케니 로저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블론디, 베트 미들러 등 그는 당시를 풍미한 팝가수들의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자연스럽게 오디오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석바위에 전축을 파는 인켈 대리점이 있었어요. 거길 자주 갔는데 전축 구경도 구경이었지만 <팝피엠투>라는 팝송 전문 잡지를 무료로 가져다 볼 수 있었거든요. 그 안에 팝스타 소식도 있고 빌보드 차트, 인기 팝송 악보도 실려 있었지요. 저처럼 음악 좋아하던 학생들에게 최고의 잡지였어요."

주안과 석바위를 오가며 팝송을 즐겨 듣던 김구라는 구월중학교로 진학한다. 5층짜리 주공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던 구월중학교는 당시 한창 건설 중이었다. "제가 구월중 3회 졸업생인데 체육 시간이면 공사장으로 가서 일을 했지요." 지금은 고층 빌딩이 많이 들어섰지만 당시만 해도 구월동은 허허벌판이었다. 시청이나 중앙도서관 창문을 열면 어디선가 소 울음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학교 인근 희망백화점을 찾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새 학기가 되면 노트와 가방을 사러 희망백화점을 찾곤 했어요. 가끔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가기도 했지요." 제물포고등학교로 진학한 김구라의 활동 반경은 동인천까지 확장된다. "제가 놀고먹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극장도 많이 다녔어요. 주안에 있는 중앙극장, 경동 애관극장을 많이 갔던 것 같네요."

그러면서도 반에서 10등 아래로 떨어진 적은 없었는데 비결은 바로 팝송이었다.

"가끔 시청 옆 중앙도서관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하곤 했어요. 팝송을 좋아하다 보니 영어 공부를 하게 되고 영어 성적이 나쁘지 않으니까 성적이 그리 많이 떨어지진 않더라고요."

10년 무명생활 지나 최고의 입담꾼으로

1, 2등까지는 아니어도 비교적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김구라는 고2 때 학급 반장을 맡는다. 이때 제물포고에선 하나의 미신 아닌 미신이 떠돌고 있었으니 대학 입시와 연관된 것이었다.

"저희 학교와 담 하나로 인일여고가 붙어 있거든요. 그런데 담을 넘어 인일여고생들이 쓰는 방석을 가져오면 대학에 합격한다는 소문이 쫘악 퍼져 있었죠."

이성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고등학생인데다 대입 수험생이던 김구라는 친구들과 작전 끝에 월담을 감행한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인일여고로 가서 방석을 훔쳐 오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다시 담을 넘어오다 선생님한테 '딱'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야 이 XX야, 반장이라는 놈이 할 짓이 없어 여학교 담을 넘어 다녀? 그런 정신으로 공부하면 하버드대학교도 가겠다!" '불꽃싸다구'를 맞은 김구라는 이틀간의 정학 처분을 받는다.

반 친구들이 집단 사고를 친 기억도 있다. "제고(제물포고)가 무감독 시험을 치르는 학교이다 보니 커닝 방지를 위해 학년을 뒤섞어 시험을 봤는데 어느 날 저희 반 아이들이 집단 커닝을 한 사실이 밝혀진 거죠. 그때 염경환과 지상렬도 같은 반이었어요."

집단 커닝 사실은 매번 시험이 끝나면 쓰는 반성문 때문에 발각됐다. 순진한 1학년 학생들이 '2학년 형들이 커닝을 하는 것 같다'는 반성문을 제출한 것이다. 제고는 커닝을 하다 발각되면 퇴학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숫자가 27명이나 되다 보니 근신, 유기정학, 무기정학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같은 반이던 염경환, 지상렬은 어땠을까.

"경환이는 비교적 얌전했고 상렬이는 개그맨 되겠다고 끼를 부렸어요. 제가 개그맨 된 뒤에 상렬이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개그맨 될 수 있냐고."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는 김구라의 얼굴엔 인천의 명문인 제물포고에 대한 자긍심이 넘쳐났다.

유쾌한 '얄개시대'를 보낸 김구라는 인하대 영문과 89학번으로 진학하며 방송인의 꿈을 실현한다. 술·담배는 안 하는 대신 당구장은 즐겨 찾았다. 제고 시절엔 신포동 특실당구장, 오색당구장이라는 곳을 많이 다녔고 인하대 시절엔 후문의 당구장에 자주 들락거렸다.

특별히 웃기지는 못했지만,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던 김구라는 대학생이던 1993년 SBS 공채 2기 개그맨 시험에 덜컥 합격한다. 기쁨도 잠시, 이후 10년간 무명 생활을 이어갈 줄이야.

"1999년엔 생활보호 대상자로 선정될 정도로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더 이상은 방송 못하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고요."

김구라는 그러나 이를 앙다물고 무명 시절을 견뎌냈고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입담'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중이다. 일산에 살지만 어머니가 계신 산곡동을 가끔 찾는다는 김구라는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사람들이 저를 볼 때 참 재밌는 사람이구나, 맥도 잘 짚고 방송도 시원시원하게 잘하는구나 그런 얘길 들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고향 분들도 많이 응원해 주실 거죠? 제 고향 인천을 사랑합니다. 인천 파이팅!"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 2021년 1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김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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