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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어느 날 TV를 통해 알게 된 시드볼트(씨앗금고)는 한동안 생각하기만 해도 막연한 설렘을 주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시드볼트가 두 곳 있는데 그중 한 곳이 우리나라 봉화에 있다고 한다. 시드볼트는 '현재 인류를 먹여 살리는 작물이나, 함께 살아가는 식물이 멸종하는 것에 대비하고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노르웨이 스봘봐르 롱이어비엔 시드볼트에는 작물종자를, 우리나라 시드볼트에는 야생식물의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 당시 우리의 글로벌 시드볼트에 보관 중인 씨앗은 9만 5000여 점이다.

우리나라 글로벌 시드볼트는 지하 46m에 존재한다. 지하로 갈수록 서늘해져 씨앗보존이 쉬운 데다가 미사일 같은 것들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드볼트는 미사일이 파괴할 수 있는 깊이가 지하 30m이라는 점을 참고해 설계했다고 한다. 지진으로부터도 안전하도록 지어졌으며 만일에 대비, 자체 발전 시설도 갖췄다.

스봘봐르 롱이어비엔 시드볼트는 2012년 처음으로 금고를 열어 씨앗을 반출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곡식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시리아의 유전자은행이 반군에 점령당해 씨앗에 접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연구단체(시리아 유전자은행 국제건조지역농업연구센터)가 곡식 씨앗을 요청했다고 한다.

인류를 위한 최후의 씨앗금고가 있는 곳 
 
영국의 큐 왕립식물원에 의하면 기후변화로 전 세계 식물 종의 약 40퍼센트가 멸종위기에 있다고 하는데 식물 다양성을 확보하면 유전자 분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렇게 농부나 연구기관의 주도로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도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탄생한 것이 유전자은행이다. 유전자은행은 전 세계적으로 약 1750개가 있는데 우리나라도 1987년 설립된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산하 농업유전자센터가 유전자은행이다. 그런데 유전자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종자가 천재지변 등으로 유실된다면 지구상의 그 종자는 영구히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소멸 위험으로부터 씨앗을 안전하게 영구보전하는 소위 백업시스템이 시드볼트이다. 다시 정리하면 농부나 연구기관 등은 종자를 유전자은행에 보관하고 유전자은행은 그 종자를 두 개의 표본으로 만들어 한 표본은 자체 보관하고 다른 표본은 시드볼트에 보내어 영구보관한다.  - <나의 시드볼트 춘양> 139~140쪽에서.
 
우리나라에 시드볼트가 있다는 것만으로 막연히 설렜다. 우리가 인류를 위해 중요하며 대단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감정이었다.

시드볼트가 있다는 봉화도 막연히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옛사람들이 십승지지(거주 환경이 좋아 살기 좋은 한편 난리로부터도 안전한 열 곳)로 꼽았을까?  그런 열 군데 중 왜 하필 봉화일까? 봉화가 십승지지를 대표할만한 뭔가가 있다는 것일까? 막연히 궁금한 한편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우리의 글로벌 시드볼트는 봉화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좀 더 정확하게는 봉화군 춘양면에 있다고 한다. <나의 시드볼트 춘양>(푸른길 펴냄)은 춘양에서 나고 자란 한 일반인이 에세이 형태로 기록한 '춘양'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시드볼트 춘양> 책표지.
 <나의 시드볼트 춘양> 책표지.
ⓒ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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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의하면 글로벌 시드볼트가 자리 잡은 곳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태백산사고가 있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록문화의 정수로 우리의 지난 역사를 아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인,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보전해낸.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일어난 일을 왕별로 기록한 것이다. 왕의 사후 완성되었는데, 실록 시작인 조선 전기부터 여러 질로 만들어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 전주, 성주에 각각 사고를 지어 1질씩 보관하게 했다고 한다. 멸실이나 훼손을 최대한 막아보자는 방비책이었다.

그럼에도 임진왜란 당시 전주 사고에 보관했던 것만 빼고 모두 훼손되고 만다. 이에 선조는 전주사고본을 토대로 4질을 더 만들어 또 다른 지역인 봉화 태백산, 강화 마니산(병자호란과 화재로 1660년 강화 정족산으로 이전), 영변 묘향산(후금의 침략에 대비하여 무주 정족산으로 이전), 강릉 오대산에 사고를 지어 보관하게 한다.

이 중 춘양에 있었다는 태백산사고는 1606년(선조 39년)에 완성되어 1913년까지 실록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도난과 멸실로 훼손된 다른 사고본에 비해 온전히 보전되었다고 한다. 춘양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역사 시드볼트였던 것이다. 

이런 춘양은 과거 '금강송' 혹은 '춘양목'으로 불리는 '황장목' 자생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주로 궁궐의 전각들을 짓거나 왕의 관을 짜는 데 쓰일 정도로 우수한 소나무 목재로 알려진 황장목이 '193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1000m에 걸쳐 빽빽하게 자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울창했던 소나무숲(25쪽)'이 있었다고 한다. 

태백산사고나 황장목 숲은 국가에서 사람을 파견해 관리했다.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 내로라하는 인물이 시찰을 나가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춘양은 봉화에서도 오지 중 오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난리 나 당파싸움을 피해 많은 사람이 숨어 들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지임에도 지난날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기도 했다. 일제의 황장목 수탈과 광산개발이 벌어진 곳이고, 최고의 송이산지였기 때문이었다. 

관련 역사도 많고 유적이 많이 남아 있음은 물론이다. 책은 춘양의 지난날을 개인의 추억과 맞물려 들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춘양이 글로벌 시드볼트의 고장으로 거듭난 과정, 글로벌 시드볼트의 현재와 미래, 춘양의 지리와 역사, 유적지와 특산물, 춘양에서 특히 가봐야 할 곳, 춘양의 문화 행사나 축제, 미슐랭이 인정했다는 도로나 태백산 천제단 가는 길 등을 4부로 나눠 들려준다.
 
백두대간수목원이 다른 수목원이나 식물원과 차이 나는 부분을 꼽자면 나는 단연 1순위로 숲길을 꼽는다. (중략) 그다음으로 백두대간수목원이 일반 수목원과 다른 점은 호랑이 숲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한국 호랑이가 네 마리 있다고 하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두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최근 이날치가 노래한 <범 내려온다>로 호랑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았는데 진짜 범이 내려와 숲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호랑이 숲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단골 코스다. 이곳에는 용인에서 태어난 한국호랑이 남매가 유학 올 예정이라고 한다. - <나의 시드볼트 춘양> 131쪽에서.
 
3장 '한국의 롱이어비엔'은 시드볼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반가울 것 같다. 40여 쪽에 걸쳐 우리의 시드볼트와 노르웨이의 시드볼트, 우리의 시드볼트가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곳곳을 들려주는데, 시드볼트에 관한 더 이상의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세히, 그리고 많은 정보들을 들려주고 있다.

인구 감소로 몇십 년 후 일부 지역이 사라지리라 전망하는 뉴스가 잊을만하면 보도되어 착잡해지곤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항장목으로 우리의 역사와 건축물을 오늘날로 이어준 춘양도 시드볼트를 유치하기 전 그런 위기 속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 춘양을 두루두루 기록한 <나의 시드볼트 춘양>이라 더욱 의미 있게 와 닿는다.

나의 시드볼트 춘양 - 고향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담아

천헌철 (지은이), 푸른길(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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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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