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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쌤, 사)한국 홍성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연극배우, 소설가, 건설현장 신호수, 농부' 이상헌 씨를 부르는 말이다. 이상헌 씨는 지난 8월 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교장쌤, 사)한국 홍성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연극배우, 소설가, 건설현장 신호수, 농부" 이상헌 씨를 부르는 말이다. 이상헌 씨는 지난 8월 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 이상헌 SN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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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 한국 홍성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연극배우, 소설가, 건설현장 신호수, 농부.'

이상헌씨를 부르는 말이다. 이씨는 지난 8월 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일에 나섰다. 이씨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지금은 예산 광시면에 살고 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농사를 지어온 그는 사실 프로 농사꾼이다.

특히 이씨는 퇴직 후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홍성지회장에 당선돼,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씨가 지회장에 당선된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그는 30여 년이 넘는 교직 생활 동안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연극배우기도 하다.

지난 1995년에는 극단 '홍성무대'를 창립했다. 지금도 1년에 1~2개 작품을 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5년에는 한국문인협회 홍성군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지도도 글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역 언론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해오고 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1월부터 도로 공사 현장에서 신호수를 하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퇴직 후 인생 1막 2장을 사는 이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코로나 19 확진자 증가에 따른 사회적거리두기 강화로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상헌 씨는 지난 8월 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1월부터 도로 공사 현장에서 신호수를 하고 있다.
 이상헌 씨는 지난 8월 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1월부터 도로 공사 현장에서 신호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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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어떤 일인가?

"새로운 도전은 아니고 지인이 건설 현장에서 사람이 빠져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신호수를 하게 됐다. 한 이틀 나간다는 게 한 달이 넘었다."

- 퇴직 후 편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퇴직 후 아직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총회장으로 바쁜 일정 중에도 행사 없는 날을 제외하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오전 7시 집에서 출발해 도로환경개선사업현장에 도착하면 오전 8시다. 그때부터 오후 5시까지 굴착기를 쫓아다니며 신호수를 본다.

지금까지 배운 것을 하나도 적용할 수 없는 노동 현장의 새내기다. 하지만 돈을 벌어 좋은 일에 기부도 하고, 코로나 19가 물러가고 일상으로 회복되면 동네 어르신 모시고 음식 대접도 할 생각이다. 특히, 귀중한 노동 현장 경험을 토대로 소설 한 편 쓸 생각이다."

- 처음 하는 신호수 어렵지 않은지? 에피소드는?

"시간이 정말 안 간다. 안 하던 일을 하다 보니 다리 허리 어깨 모두 아프다. 탱크 쫓아가는 보병처럼 굴삭기를 쫓아다니며 신호를 해야 하니 하루에 만 보 이상 걷는다. 요즘은 날이 추워져 손발이 시리다.

에피소드는 (공사로 한쪽 방향만 소통되다 보니) 차량이 지체되면서 운전자는 차 문을 열고 신호를 하는 나에게 똑바로 하라며 욕하고 지나간다. 욕 많이 먹어 오래 살 것 같다.

오랜 직장생활을 했음에도 현장에서는 모두 다 생소한 것들이다. 내가 배우고 익힌 지식은 무용지물로, 직장에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현장에서는 머리가 한결 가볍다."

- 보람은?

"함께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며 보람을 느낀다. 작업반장이 어떤 공구를 가져오라고 하면 모르니까 혼나기 일쑤다. '돈 벌러 왔지? 현장에서 일하려면 한국말을 얼른 배워야지'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알려준다. 아무래도 천직은 못속인다.

현장 외국인들을 볼 때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리비아로 돈 벌러 떠났던 숙부가 생각난다. 당시 '얼마나 질시와 질책을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외국인에게 한가지씩 알려준다. 이외에도 '고생한다'며 인사를 하거나 손을 흔들려 가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고맙고 반갑다."
 
이 씨는 "퇴직 후 아직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예총회장으로 바쁜 일정 중에도 행사 없는 날을 제외하고 현장으로 달려간다"라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씨는 "퇴직 후 아직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예총회장으로 바쁜 일정 중에도 행사 없는 날을 제외하고 현장으로 달려간다"라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이상헌 SN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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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극단 홍성무대에서 <사람이 평화여 이응노 이야기>, 대천극단에서 <만선>이라는 작품에 배우로 출연하고 있다. 또한 홍성예총 회장으로 행사 참여 등 쉬는 날이 더 바쁘다."

- 앞으로 인생 1막 2장은?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이후에도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글도 열심히 써서 앞서, 말한 것처럼 노동 현장 이야기를 2022년에는 꼭 책으로 출판할 생각이다."

- 인생 선배로서 청년들에게 한마디.

"인생 선배로서 요즘 청년들은 도전정신이 약한 것 같다. 결과를 미리 예단하고 뛰어들기부터 주저한다. '퇴직했으니 당신은 아무 일이나 하지'라며 반문할 수도 있다. 나는 늦게 대학에 입학하고 진짜 많은 일을 했다. 20차에 걸친 교육부 해외 파견부터 무서워하지 않고 도전을 했다.

한 가지를 오랫동안 하려는 인내심을 길렀으면 한다. 예를 들어 노동 현장에 온 청년은 하루 일하고 힘들다고 그만둔다. 모든 일을 어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는 정신과 참고 견디는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씨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대학 다닐 때 노동 현장에서는 호칭이 '이씨' 였다"면서 "이제는 나이가 들어 '형님', '할아버지'로 변했다"며 세월의 무상함을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얀 안전모와 야광조끼를 입고 빨간 신호기를 든 허연 수염을 흩날리는, 예순네 살의 할아버지는 욕을 먹으며 열심히 깃발을 휘젓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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