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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를 표지화로 싣고 있는 외국의 서적들을 시간 순서대로 일람해 본다.
 
세계적 명저들이 강리도를 표지에 싣고 있다
▲ 강리도를 표지를 장식한 외국 서적 세계적 명저들이 강리도를 표지에 싣고 있다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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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지도의 역사>, 미국
1999년 <지리상의 발견지도첩>, 스페인
2007년 <몽골이 낳은 세계도>, 일본
2008년 <인류의 역사>, 유네스코
2020년 <최고最古의 세계지도를 읽다>, 일본

이상은 필자가 파악한 범위 내의 것이다.

세계적인 명저 <지도의 역사>(History of Cartography) 아시아편의 표지를 <강리도>가 장식한 사실은 알려져 있다. 헌데, 유네스코에서 새로 편찬한 불어판 <인류의 역사>(Histoire de l'humanité) 제4권의 표지도 또한 <강리도>가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총 7권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인류의 역사> 총서는 15년간에 걸친 세계적 협업의 결과로서, 지리 역사의 탐구를 통해 발견된 사실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한 인류의 과학, 문화발달사다.

이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하여 유네스코는 31개의 국제위원회를 설립했고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약 450명의 세계적 석학들의 협력을 얻어야 했다. <강리도>가 표지를 장식한 600년부터 1492년까지를 다루는 제4권 (1604쪽)의 편찬에는 40개 이상의 나라에서 총 84명의 학자들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편집진 명단에서 우리 한국인은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강리도를 표지에 올린 것은 순전히 세계 학계의 평가로 인한 결과이겠다. 

지도학의 금자탑으로 평가받는 <지도의 역사>(History of Cartography) 뿐만 아니라 유엔기구가 펴낸 <인류의 역사>(Histoire de l'humanité)의 표지를 장식한 희귀한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은 <강리도> 말고는 달리 찾아볼 수 없을 듯하다.

한편, <강리도>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 류코쿠 대학의 무라 오까 히토시村岡 倫 교수는 2020년 <최고最古의 세계지도를 읽다>라는 제목의 단행본 연구서를 냈다. 교토대의 미야 노리코가 펴낸 연구서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나온 연구서이다. 일본에서는 벌써 두 권의 단행본 연구서가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강리도는 과연 언제 어떻게 세계학계와 지식인들에 그 가치가 알려지게 되었을까?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의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1991.10-12—1992.12 간 3개월에 걸쳐 이루어진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 기념전시회였다. <1492년 즈음>(Circa1492)이라는 이름의 이 세기적 전시회에는 15세 및 16세기에 동서양에서 산출된 문물의 정수가 전시되었다.

회화, 조각, 출판물, 도면, 지도, 과학기기, 장식품 등에서 600여 개 품목이 정선되어 한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당연히 세계의 학자, 예술가, 평론가, 언론인, 학생, 일반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1402년 조선에서 만들어진 후 임진왜란 때 사라진 강리도가 400년간 은거하고 있던 교토의 한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밖으로 나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제 무대에 출현한 것이었다.

워싱턴 전시회에서 강리도를 본 사람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전시회를 보도한 신문과 잡지들은 강리도에 대한 찬탄을 숨기지 않았다. 그 일단을 우리는 뉴욕 주간지의 전문가 논평에서 읽어 볼 수 있다, 여기 요지를 옮긴다.

"콜럼버스 이전에 세계의 형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Circa 1492' 전시회는 당신의 사고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다('Circa 1492' will change your thinking forever). …전시회에서 15세기 문명의 지적 영혼을 볼 수도 있다.

1402년에 한국인들은 새로운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지도는 정확한 아라비아만, 이상하지만 알아볼 수 있는 아프리카, 지중해 그리고 남부 유럽를 담고 있다. 강리도는 오직 세 개( 네 개의 착오- 옮긴이)의 사본이 있을 뿐인데  그 중의 하나가 여기 와 있다."

- Kay Larson 글, <New York Magazine(주간)> (1991.11.11), p.116쪽

 
콜럼버스 500주년 기념전시회 도록에 실리 강리도 논고
▲ 도록 강리도 논고 콜럼버스 500주년 기념전시회 도록에 실리 강리도 논고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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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쪽에 이르는 전시화 도록이 출판되었다. 여기에서 강리도가 상세히 소개되었다. 논고는 당시 콜럼비아대학 한국학 교수 개리 레드야드Gary Ledyard가 썼다. 논고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르코 폴로 자신이 아마도 오해했을 한국에 대한 그의 언급을 만일 콜럼버스가 읽었다면 모르지만 그가 첫 항해를 시작할 때에 한국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아시아의 가장 완전한 세계지도를 찾아보려고 했다면 그는 당시 조선 왕국이라고 불렸던 한국을 찾아갔어야 했다. 왜냐하면 조선 왕국의 왕궁에 중국과 일본뿐 아니라 인도, 이슬람권의 나라들과 아프리카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악할(astonishing) 유럽 자체까지를 그린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도에서 스페인을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나아가 콜럼버스는 (자신의 고향인) 제노바를 이상하게 구불구불한 지중해 해안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유럽의 형상이 미흡한 것 사실이고 한반도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 만들어진 지도 중 강리도가 그린 동아시아만큼 자신의 유럽을 잘 그린 것이 있었단 말인가?"


레드야드 박사는 한국 문화의 창조력을 강조하고 그 압권이 강리도라고 짚는 것으로써 논고를 맺는다.   
 
"1454년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에 한국은 이미 수백 권의 책을 활자로 인쇄했다. 세종은 1443년 한글을 창제했다. 한글은 놀랍도록 독창적인 문자다. 이러한 모든 프로젝트를 탄생시킨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15세기는 국내외적으로 한국이 가장 위대한 성취를 이룩한 한 때로 자리 매김되었다. 그때 한국은 창의적 문화가 절정에 올라 있었다.

한국인들은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였으나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과 현저히 다른 방식으로 재창조하였다. 그 압권(perfect example)이 <강리도>다. 지도 제작에서 중국은 원조 혹은 중개자로서 대부분의 원천 자료를 제공했다. 그러나 자료를 변형하고 가공하여 진정한 세계지도를 탄생시킨 것은 한국이었다."


<강리도>는 20세기 초 세계학계의 신선한 발견이었다. 그로부터 강리도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각도로 조명되고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지도만큼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쉽고 분명하게 세계에 드러내는 문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진가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세계에 드러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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