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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도 패총은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술조사가 시행된 유적이다. 여서도 유적발굴은 신석기시대 유적의 불모지였던 호남지역 신석기문화상을 밝혀준 중요한 작업이었다. 1996년 신석기시대 패총이 여서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때는 지표조사였기에 신석기시대 토기 파편만 확인하였을 뿐 패총이 갖는 의미나 성격은 알 수 없었다.

2004년 정밀지표조사를 바탕으로 2005년 발굴조사를 했는데,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그중에서 436점의 골각기를 발견, 고정식작살 160점, 회전식작살 3점, 역T자형낚시 1점, 결합식낚시바늘 46점, 축 11점이 확인됐다. 바늘의 형태는 미늘이 없는 것, 안쪽에 있는 것, 바깥쪽에 있는 것 등이 확인됐고, 재질은 동물의 뼈와 뿔, 치아 그리고 전복껍질로 만들어졌다.

여서도 패총에서 발견된 인간의 배설물 화석에서 연구기관은 선사시대의 식생활과 질병과 관련한 선사시대 환경복원 등을 위해 기생충 분석도 했는데, 이것은 괄목할만한 고고학적 성과로 손꼽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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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도구사 혁신은 뼈로 만든 낚싯바늘

호모 하미오타(homo hamióta), 낚시하는 인간을 뜻한다. 낚시는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했다.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발견된 낚시에 관한 기록은 구석기와 신석기의 중간인 중석기 시대에 가장 많다. 기원전 1만년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에 고기 잡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예를 들면 짐승의 뼈로 낚싯바늘을 만들거나 사슴뿔로 작살을 만들어 온갖 덫으로 고기를 잡았던 흔적이 발견됐다. 인류 최초의 고기잡이는 낚시가 아니었다. 물이 바닥까지 드러나면 맨손으로 잡는 기회주의적 사냥방식이었다.

고기잡이가 쉽지 않아 육지에서 맹수를 사냥할 때 사용하던 나무로 깎아 만든 창과 작살 같은 도구를 사용했는데 민첩한 물고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인류는 물에서 사용할 정교한 도구가 필요했고 그것을 만들었다.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발견한 노르웨이 폭포에서 인류 최초 낚싯바늘로 추정되는 도구가 발견됐다. 그 원시형 낚싯바늘을 '고지'라고 하는데, 무미늘 낚싯바늘로 물고기를 현혹하기에 부족해서 인류는 돌보다 가볍고 가공하기 쉬운 것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동물의 뼈. 인류도구사의 혁신은 바로 뼈로 만든 낚싯바늘이었다. 이 투박한 돌조각과 동물 뼈가 어떻게 위대한 발명이며 기술의 정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물속에 사는 생명체를 충분히 관찰하고 이해했기에 가능한 산물이었다. 

그리고 이 작고 투박한 도구에는 여러 가지 과학이 숨어있다. 먼저 뼈가 가지고 있는 냄새는 물고기를 유인할 미끼 역할을 한다. 남포를 터뜨린 화약 냄새를 맡고 갈치 떼가 몰려온 것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쉬울까? 대물일수록 냄새에 민감하다는 것을 낚시하는 사람은 알고 있다. 돌보다 가공이 쉬웠고 뼈로 만든 낚싯바늘이 물에 뜨는 것을 보완하려고 돌을 갈아서 봉돌을 만든 결합식낚시바늘로 발전했다.

채집과 사냥을 끝내고 이룬 농업혁명은 인류에게 정착 생활을 가져다주었다. 대량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한 산업혁명은 현재 IT혁명으로 이어진 문명의 정수로 여기지만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인류의 어로행위인 낚시가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문명은 없었을 것이라고 대부분 이구동성이다.

어로행위가 동물사냥보다 중요할 때가 있었다. 선사시대 인류의 뼈에서 화학성분과 단백질을 분석한 결과 중석기 시대 사람들은 단백질 섭취량 80%를 강이나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에서 얻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과 거대한 제국들은 지금처럼 가축을 기르고 번식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시대 인류는 모두 물고기에서 단백질을 얻었던 것.

결합식낚시바늘 발명 인류사의 큰 획

노르웨이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낚시바늘은 남서부 노르웨이의 Vistehlene동굴에서 발견된 43개의 낚싯바늘이며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7000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서부 노르웨이 Skipshelleren에서 발견된 세 가지 형태의 바늘은 구부러진 후크 형태이다. 일본에서는 조몬(Jomon) 시대 것으로 추정된 순록의 뿔로 만든 단식낚시 바늘이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의 낚싯바늘과 비슷한 형태인데, 이 바늘은 약점이 많았다.

낚싯바늘의 폭이 동물 뼈와 뿔의 두께로 제한되어 대상 어종의 제약을 받았기에 인류는 돌과 뼈바늘을 연결해 만든 결합식낚시바늘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야말로 인류도구사의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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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추위가 끝나고 인류는 먹고살기 위해 본격적인 사냥을 나서게 된다. 그러나 사냥은 필수적 요소인 동시에 맹수의 공격으로 인해 위험부담이 컸다. 인류는 사냥보다 안전한 고기잡이에 매진했다.

그들은 원시의 바늘로 어떤 물고기를 잡았을까?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은 물음에 패총 속에서 해답을 찾아냈다.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인 패총에서 출토되는 물고기 뼈를 보면 참돔이 제일 많고 큰 바다의 연안 패총에서는 다랑어 종류의 뼈가 나오고 고군면 오산리에서는 악상어 뼈가 나왔다.

완도군의 최남단 여서도에서는 복어 뼈와 다양한 물고기 뼈가 출토되어 신석기 인류가 복요리를 먹었다는 뜻밖의 발견이 학계에 보고되기도. 같은 해 경남 창녕 부곡면 비봉리의 패총에서는 선사시대의 배와 노가 함께 출토되어 학계를 더욱 놀라게 했다. 패총은 조개류에서 진행되는 알칼리성 화학반응에 의해 뼈가 보호되어 오랫동안 유지된다. 그래서 패총 유적은 그 시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결합식낚시는 바늘의 크기만 조절하면 작은 물고기부터 상어나 다랑어같이 큰 물고기도 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결합식낚시바늘은 인류 역사 도구 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유물이었다. 그리고 결합식낚시바늘의 발명을 끝으로 신석기시대가 마무리 되고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지역의 문화유산 깊은 관심을 가져야

지난 2005년 여서도에서 발굴한 선사시대 유적과 결합식낚시도구는 도서지역 인류의 이동경로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는데 아쉽게도 더 이상의 고고학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1996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발견한 고대인이 사용한 낚싯바늘은 단식과 결합식을 포함해 모두 216여 점이 등록되어 있었다.

1980년대 초에 강원도 양양 오산리에서 발굴한 것이 처음이었고, 1990년대부터 2000년도까지 발굴한 것이 고성 죽왕면 문암리, 양양, 강릉, 울산, 부산, 여수까지 이르러 똑같은 형태의 낚싯바늘이 발견되어 기원전 8000년 전부터 2000~3000년 전까지 이런 형태의 낚싯바늘을 사용했다고 학계는 보고했다.

지난 2005년 비로소 여서도 패총이 발굴되어 결합식낚시바늘이 출토됐다. 그러나 최초의 타이틀이 매우 중요한 고고학 발굴에서 볼 때 섬 지역의 제한적 규제 속에서 다소 늦게 이뤄진 선사시대 유적 발굴이 완도군 입장에서는 큰 손실을 가져다준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지역사회가 지역의 문화유산에 깊은 관심을가져야 하는 이유이며, 그 관심의 척도가 너무 낮았던 것이 무척 아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다큐사진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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