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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비아지매는 마을에서 농사가 가장 많다. 가는골에 고사리밭과 콩밭이 육칠백 평이나 되고, 그 아래 한 뙈기가 천 평이나 되는 넓적한 논배미가 있다. 서편 언덕 너머에 일곱 마지기 논이 있고, 마을 입구 도로가에도 예닐곱 마지기 밭이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읍내 나가 사는 장샌댁 논도 임대해서 농사를 짓는다. 아들 정육점 차려준다고 몇 년 전에 팔아버린 마을 뒤 논 다섯 마지기까지 임대해 콩농사를 지으니 영농규모가 자그마치 마흔 마지기에 이른다.

시끄러비아지매는 이 많은 농사를 바깥양반과 단 둘이서 짓는다. 농사가 많으니 농기구도 다 갖추었다. 경운기, 관리기, 이앙기는 기본이고 트랙터까지 있다.

이 많은 농사를 하면서 소를 여섯 마리나 키우고, 두 내외가 함께 노인일자리까지 나간다. 하루 세 시간씩 한 달 열흘 마을 청소하는 일에 나가는데 두 내외 월급이 육십만 원이다. 매달 노인일자리에서 월급이 나오는 날은 입이 귀에 걸려 어찌할 바를 모른다.

7000~8000만 원 버는 시끄러비아지매

"돈 모으는 데는 저 집 따라갈 수 없다."

시끄러비아지매 집을 두고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시끄러비아지매의 억척스러움은 정평이 나있었다. 젊은 시절 읍내에서 개최되는 군민씨름대회에서 여자부 십 년 연속 우승한 경력을 가졌으니 그 장대한 기골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그 체격으로 농사일을 하니 보통 사람 서넛 몫은 거뜬히 해치우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경운기를 몰고 마을을 누비던 그녀도 어느새 앓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프고 무릎도 안 좋아 앉았다 일어나면서 연신 끙끙댔다. 바깥양반은 무릎 아픈 데는 쇠무릎이 좋다며 하루 종일 언 밭두렁을 타며 쇠무릎을 캐러 다녔다.

"그러니까 농사를 좀 줄여야지. 그래 몸이 아파서 말년을 어떻게 보내려고."
"그게 되나. 우리가 농사 안 하면 어찌 살아."


주변에서 성화를 댔지만 그런 말에 더 속상해하는 농사꾼이었다.

시끄러비아지매의 농사는 그야말로 단순했다. 열다섯 마지기는 벼농사를 했다. 다섯 마지기는 고사리밭이었다. 고추는 해마다 삼천 포기씩 심었다. 나머지 농토엔 이런저런 잡곡을 심었다.
 
전북 김제시 오정동의 한 고추밭에서 농민이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2021.9.13
 전북 김제시 오정동의 한 고추밭에서 농민이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2021.9.13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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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추곡수매로 돈을 벌고, 고사리 꺾어 돈을 벌고, 고추로 돈을 벌고, 잡곡 팔아 돈을 벌었다. 소를 키워 해마다 여섯 마리 송아지를 얻었다. 도시 사는 시누이 시동생들 김장김치 담가 돈을 벌었다. 트랙터로 이웃들 밭갈이 해 돈을 벌었다. 올해 들어 노인일자리에 나가 돈을 벌었다. 곶감도 깎고, 옻순도 따고, 호두도 팔았다. 시끄러비아지매 총수입은 이와 같았다.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칠팔천만 원은 될 거였다.

"내가 너그 집 살림살이 다 안다."

엊그제 호박죽을 쑤어 함께 먹는데 시끄러비아지매가 실눈을 뜨며 나와 아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뭘 알아. 우리 사는 게 이런데 무슨 살림살이랄 게 있다고."
"보소. 보소. 말하는 것 좀 보소. 내 눈은 못 속인다. 올해 우리 동네서 너그 집이 최고로 돈 많이 벌었을 걸?"

"뭔 돈을 얼마나 벌었다고 그래. 나 참."
"논 샀지. 관리기 장만했지. 지붕공사 했지. 그 돈 다 어디서 났어."

"논은 대출받았고, 관리기와 지붕공사 그게 얼마나 된다고. 자기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이야 새발에 피지."


고사리 끊어 삼사백은 했지, 양파 감자 농사로 사오백은 했지, 고추농사 지어 삼백은 했지, 고구마 농사로 오백은 했지, 들깨랑 이런저런 농사로 또 좀 했지, 동생네 사돈네 여기저기 김장김치 보내고 꽤나 받았지, 거기에 민박손님 받은 거는 얼마나 되냐며 손가락을 꼽는 시끄러비아지매였다.

시끄러비아지매는 그야말로 동네 회계사였다. 글자도 잘 모르는데 셈은 누구보다 빨랐다. 뒷집 예삐엄마네 살림살이 셈도 훤했다. 벌 키워서 천만 원 넘게 했지, 고추 따서 몇 백만 원은 했지, 김장김치 담가주고 일이백은 넘게 받았을 거라며 눈빛을 반짝였다. 예삐엄마가 배꼽을 잡으며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정확한 셈이었다. 호박죽 양푼을 앞에 두고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올해 꽤 많이 벌긴 벌었다. 농사지어 얻은 벌이를 연봉으로 따지면 이천만 원은 넘을 거였다. 민박에 기댄 아내도 제법 될 거였다. 물론 농사 밑천 따지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겠지만 결코 적은 벌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올해부턴 아내도 적은 금액이나마 국민연금을 받고 있으니 기초생활비는 탄탄해졌다.

15년 전 내가 이곳 산골로 들어오기 직전에 받은 환경단체 상근활동비는 월 120만  원이었다. 아내의 벌이도 내 수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축은 고사하고 근근이 먹고 살 정도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벌이는 호강인 셈이다. 봄에 논 사면서 대출받은 2천만 원의 빚만 갚으면 크게 걱정거리가 없는 살림살이다.

도시에 살았더라면

가끔 이 산골에 들어온 것을 참 잘한 결정이었다고 여기며 산다. 그러면서 도시에 살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음식 공부를 해온 아내는 필경 조그만 식당을 운영했을 것이고, 나는 아내의 식당에서 일을 거들거나 이런저런 연줄로 건물 경비 노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시민운동 환경운동의 원로가 되어 이런저런 일에 기웃거리기도 하겠지.

대다수 젊은이들이 그렇듯 아들은 아들대로 세상 어딘가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았을 거고,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청춘을 보냈겠지. 나이 마흔 살에 결혼은 언감생심, 나와 아내는 속만 태우고 있었겠지.

제대로 된 집도 한 채 가지지 못하고 아직도 전셋집을 전전하며 살겠지. 도시에서 살아갈 밑천도 기술도 없었고, 험한 세상 살아갈 가방끈도 짧고 집안도 보잘것없으니 차상위계층으로 노년을 맞이하겠지.

이 산골에 들어와서야 살만한 집도 한 채 가졌다. 좋은 며느리도 들었고, 귀여운 손녀도 매일매일 곁에 두고 있으니 이런 복된 삶이 있겠는가. 힘들어도 재미난 농사일을 하고, 민박 손님으로 든 낯선 사람들과 즐겁게 만나는 흔치 않은 삶을 산다.

살아보면 살만 한데도 농촌은 나날이 빈집이 늘어간다. 올해 우리 마을로 귀농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홀로 살던 할머니가 죽고, 홀로 살던 노인네가 요양원으로 떠나 오히려 두세 집이 비었다.

내 기준으로 치면 행복한 삶인데 다들 그리 여기지 않는다. 농촌에서 농사짓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여긴다. 농사지어봐야 판로도 막막하고, 제값도 못 받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해마다 처참한 농촌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다. 양파밭을 갈아엎고, 배추밭을 갈아엎고, 벼이삭을 갈아엎어버리는 농부를 봐왔기 때문이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생매장하는 닭을 봤고,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생매장하는 돼지를 봐왔기 때문이다. 물에 잠긴 수박과 폭풍에 떨어져 나뒹구는 사과를 봐왔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잃고 허망하게 주저앉은 농부를 봐왔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언젠가부터 농촌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낙인찍어버렸다. 농산물은 이미 멸시받고 천대받는 것으로 사실화 되어버렸다. 농촌에서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 수 없다는 등식을 만들어 버렸다. '하루를 벌어먹고 살아도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라는 말이 격언처럼 박힌 세상에서 누가 쉬 농촌 살림을 선택하겠는가.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이라는 깃발을 들고 한 무리 선지자들이 세상을 돌고 있다.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3농(농어민·농어업·농어촌) 문제를 해결하고자 민초의 지혜와 열망을 한 데 모으는 대장정'이라고 한다.

행진단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촌', '먹을거리 위기에 대응하는 농촌', '지역위기에 대응하는 농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농촌 주민의 행복권 보장', '공익적 직접지불 확대', '먹을거리 기본법 제정', '농촌 주민수당 지급', '농촌 주민자치 실현'을 주장했다.

좋은 말이다. 농촌문제 해결에 단초가 될 '농지개혁'이 빠진 것과 '농촌 주민'이라는 용어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좋은 주장이다. 이리 떠밀리고 저리 내쳐져 너덜너덜해진 농촌을 위해 이렇게라도 주장해주니 그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다.

'공익적 직접지불을 확대'하고 '농촌 주민수당'을 챙겨주면 좋기는 하겠다. 읍내 장날도 모르고 살면서 노인일자리라고 나가고, 기초노령연금마저 푼푼이 모아 도시 사는 아들딸 살림에 보태는 노인네들이 지천이다. 그들은 당신 스스로 따뜻한 고깃국 한 그릇 끓여 먹지 못한다.

그러나 '행복권'이 무슨 복권과 같은 것은 아니다. 평생을 농사일에 파묻혀 살아온 농산어촌 노인네들 아침저녁 밥상을 돌봐주는 일에서 행복권은 시작되어야 한다. 주민수당이나 공익적 직접지불로 통장에 돈을 꽂아주는 일은 행복과는 좀 먼 거리다. '국민총행복' 이라는 용어가 '장님 코끼리 등 더듬는 듯' 느껴지는 까닭이다.
  
김장은 겨울나기에 가장 중요한 일. 이 집 저 집 돌아가며 하는 김장품앗이는 축제이기도 하다.
▲ 김장하는 날 김장은 겨울나기에 가장 중요한 일. 이 집 저 집 돌아가며 하는 김장품앗이는 축제이기도 하다.
ⓒ 김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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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이 쉬는 계절 겨울이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떡국을 끓이기로 했다. 내일은 시끄러비아지매가 무콩나물밥을 한다 했고, 모레는 예삐엄마가 삼겹살을 굽는다고 했다.

아침밥 먹고 뒷산 벌목장에 널브러진 마른 나뭇가지 몇 개 지게로 짊어지고 오면 나의 하루 일도 끝난다. 방에 불 따뜻하게 넣어두고 뒹굴뒹굴 지내다 노을 끝자락 밟으며 코돌이 두렁이 이랑이 데리고 마을길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시간이 이리 태평하게 흘러도 되나 싶다가도 가끔 바깥세상을 엿보면 서로 많이 가지려는 아귀다툼에 마른 손에서 땀이 난다. 저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멀리서 바라보는 내 가슴이 다 콩닥거린다.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일이 답이다. 적게 벌면 번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적게 쓰면 쓴다고 힘들이지 않아도 되니 이게 곧 '행복권'을 누리는 삶이 아닐까.

태그:#산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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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다 경남 함양군 지리산 기슭으로 귀농하여 농부가 되었다.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틈틈이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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