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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두 달여에 걸쳐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소셜미디어에서 오랫동안 회자됐던 짤방.
 소셜미디어에서 오랫동안 회자됐던 짤방.
ⓒ 소셜미디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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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잔혹사는 이제 인터넷 세계의 웃음 타율 높은 '밈(소셜미디어 등에서 유행해 다양한 모습으로 확산하는 패러디물)'으로 굳게 자리잡은 듯하다. 필자 또한 지방 거점 국립대의 일반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했기에, 미디어나 커뮤니티에 떠도는 대학원생 잔혹사에 공감하며 한바탕 웃기도 한다.

동시에 지나온 일들이 생각나 한편으로는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학문적 수확에 집중하기 어려운 대학원 환경과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박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대학원생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 어떠한 양상을 통해 전개되는지를 담아내는 시도가 다소 부족했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기존의 소개 역시 단순히 '교수갑질'에 치중해 소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대학원에 몸을 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교수-제자 사이의 갑을 관계를 넘어선 구조적 문제를 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면의 한계상 그것을 모조리 다룰 수 없지만 한국의 대학이 세계화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어떠한 결함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학생 사이에 쏠림현상이 발생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보고자 한다. 나아가 이것을 극복할 방향에 대해 나름의 정책제언까지 이어가고자 한다. 

어쩌다 대학원생은 독박 수업을 하게 됐나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이상하게도 외국인 유학생이 지나치게 많다고 느끼곤 했다. 내 경우(인문사회계열)는 조금 극단적일 수 있는데 한 수업의 수강생이 여덟이면 외국인은 대략 다섯에서 여섯쯤 된 적도 있었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냐면 그 유학생들이 한국어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교육부 <대학알리미>의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2021년 국내 대학원 유학생 비율 평균은 17.3%였다. 하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그 비율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심한 경우는 86.1%에 달했다. 이를 보니 정원 부족을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우는 일은 꽤나 일반적인 현상인 듯하다.

한국어를 학술 언어를 다룰 수준까지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눈감고 무분별하게 받고 보는 대학의 행태는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유학생은 유학생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고, 한국인 학생은 그 나름대로 상당한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일단은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발제와 토론, 페이퍼 작성에 있어서, 한국어 구사에 애로가 있는 외국인 학생들은 수업에 착석해 있더라도 전혀 참가하지 못했다. 수업분담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소수의 한국인 학생들은 유학생들의 수업준비를 같이 챙겨가면서 '독박 수업'과 '발제 지옥'에 빠지게 되는 형태였다.

월 단위나 주 단위 발제가 졸지에 일 단위로 바뀌어 한 사람에게 편중되면, 그만큼 과부하가 걸리기 마련. 분량은 막대한데 시간은 촉박해 그만큼 준비가 소홀해진다. 그 주제를 깊이 탐구한다는 느낌보다는 급하게 떠밀린 일을 해치운다는 것에 가까웠다. 

자연히 타인의 과제를 대신 떠맡다 밤을 새우다 보면 건강이 상하고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교우관계에서도 불화가 생기고 수업의 질이 학부 수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도 대학원 수업을 기피했다. 들이는 품에 비해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논문지도는커녕 일단 한국어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니 제한된 시간에 많은 시간을 비학문적 영역에 할애할 수도 없다. 지적 생산성을 내기도 어렵다. 더군다나 많은 대학이 학부생의 강의 평가에 교수의 성과급을 연동시켜둔 상태라, 메리트 없는 대학원 교육은 자연히 방치의 길로 기울곤 했다.

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가
 
지친 학생.
 지친 학생.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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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교수도 결국에 어쩔 수 없이 한국인 학생을 자주 찾으며 의존하게 돼 있다. 사소한 부탁에도 쏠림현상이 발생한다. 보통 한국인 전일제 학생은 조교를 하며 등록금을 어느 정도 감면받고 근로와 학업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수가 여덟이면, 과장을 보태서 각자 한 가지 부탁만 해도 벌써 8가지 부탁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학과 행사에 의무 참여하거나 교수의 부탁을 두셋쯤 처리하다 보면 하루를 꼬박 다 써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학비를 감면받았을 뿐 생계 문제는 별도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다면 결국에 추가적으로 일과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지만, 교수들이 학생들의 경제 사정에 대해 눈이 어두운 경우가 많다.

혹자는 누가 가라고 해서 간 대학원도 아닐 뿐더러, 본인 학력 높이려 선택한 것인데 왜 이리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반문할 수 있다. 덤으로 취업을 유예하고 구직시장에서 경쟁력도 얻을 수 있는데 체리 피킹을 하려는 것 아니냐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돈으로 고액의 등록금을 내가며 공부하러 온 대학원에서 공부와 관계없는 다른 사람의 일을 떠맡아 하다가, 정작 자기 공부를 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만다면, 이것은 분명히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는 징후일 것이다. 

대학원 구조조정과 국제화지수 개념 재검토 

위와 같은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학원 지원율이 감소해 사람이 부족해지자, 대학 측에서 형식적인 규모를 유지하고자 임시방편으로 외국인 위주로 신입 충원을 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본다. 또한 외국인 학생 비율이 높을수록 대학의 국제화 지수가 올라가는 단순한 평가방식이 유발한 일이기도 했다.

따라서 필자는 '대학원 정원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원 감축에 맞춰 전일제 학생일 경우, 정원의 절반 정도는 정식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계약직 일자리를 함께 제공하는 쪽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입학 당시 합격증서와 표준 근로계약서를 같이 보내는 방식 역시 적절하다.

현재는 BK21 사업에 선정된 몇몇 학교에서만 일부 시행하고 있지만, 대학원 정원 감축이 이뤄진 후에는 연구용역과 결부지어 고용과 결부된 진학형태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동시에 기계적으로 단순히 외국인 학생수를 늘려감으로써 국제화 지수를 높이는 방식이 변경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어 능력이 학술적 언어를 다룰 수준이 되지 못하는데도 억지로 입학시켜 머릿수를 맞추는 것은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이 수업의 질을 해치고 오히려 수업 부담이 편중된 소수 학생을 번 아웃에 빠뜨리기 쉽다. 

내실있는 연구공동체 재건을 위해 지방 국공립 대학원부터 합치자 

마지막으로 국공립 대학원부터 우선적으로 합쳐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대학원도 결국엔 연구자 공동체다. 적정규모가 유지돼야 공동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즉,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탐구욕이 있는 사람끼리 모여서 생활하면서 서로의 공부를 봐주고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는 과정을 통해, 지도교수와의 수직적 도제식 교육이 갖는 부실점을 수평적으로 보완할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논문 쓸 능력이 되는 학생이 극소수인 상황이고, 그들조차 결국은 과노동에 시달려 학문적으로 의사소통을 나눌 동료 없이 고립돼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생적으로 연구자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는 대학원은 스스로 존립 기반이 위태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따라서 당장 국공립대학교 대학원의 공동학위제까지 단번에 나아가는 것은 무리겠지만, 학점인정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 국공립 대학원부터 학과별로 묶고 지역거점별로 분화시켜 학생과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방안이다.

조직의 적정규모를 유지하고 적재적소에 자원을 낭비 없이 투자하는 일은 우리 정치의 중요한 책무다. 한 개인을 지나치게 소진시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는 집단은 사실상 자생이 불가능한 상태임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대학원생 잔혹사'와 같은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교육당국은 넓은 안목에서 대학교육 전반에 대한 혁신적인 개선을 가해주길 바란다. 투박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본 글이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덧붙이는 글 | 본 기고문에서 묘사하는 대학원은 '지방소재'의 '인문 사회계열 대학원'에 한정합니다. 모든 대학이 꼭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사람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의 양상은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태그:#청년정책, #대학원, #대학, #대학원생,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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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근로자, 부업 작가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과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를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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