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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중 절반 가까이가 자식들 물건이었다고 한다.
 유품 중 절반 가까이가 자식들 물건이었다고 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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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 1폐(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정리하는 것) 인증 모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유품을 정리한 딸의 글이었다. '노인네 혼자 사는 집에 물건이 뭐 그렇게 많냐, 제발 좀 버리시라'고 타박했는데, 돌아가시고 보니 절반 가까이가 자식들 물건이었다고 한다.

장롱 속에는 당신의 옷보다 아들들 교련복, 군복부터 딸의 결혼 전 입었던 정장까지 자식들 옷가지가 더 많았다. 자신보다 딸, 아들의 물건을 더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내내 먹먹했다 한다.

혹시 친정어머니 살림에도 내 물건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함께 사는 친정어머니에게 '1일 1폐'를 권하며 살펴보기로 했다. 처음에 어머니는 버릴 것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일단 화장대를 열었다. 다 쓴 립스틱이 여러 개다. 립스틱을 붓으로 파서 써서 동굴이 되었는데도 아직 쓸만하단다. 지금도 슬리퍼나 양말을 꿰매 쓰는 알뜰한 어머니가 궁상맞아 보이기도 하고 한편 안쓰럽기도 하다.

내 물건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버린 스카프인데 여기 있었군. 내가 신혼 때 선물 받은 식탁 매트도. 아이가 쓰다 버린 공책도 아깝다며 가지고 있었다. 사은품, 선물 등 받은 채로 세월만 쌓인 물건도 많았다.

새 다리미는 작동하지 않았고, 새 시계에 건전지를 바꿔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하나씩 버린 것을 블로그에 올리며 함께 정리해갔다. 한 달을 같이 버린 어머니는 "하루에 1개 버리기가 별것 아닌데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라고 말해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가 쓰지 못한 타자기
     
어느 날, 옷장 제일 높은 곳에 있던 아버지의 타자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생전에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이니 절대 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 말대로 타자기는 아주 깨끗했다. "엄마, 요즘은 중고거래로 팔 수도 있어요. 내가 알아볼게." 검색해보니 오래된 타자기가 실제 사용하기 위해 혹은 엔틱 장식품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중고거래 카페에 아버지의 타자기를 올린 며칠 뒤, 쪽지를 받았다. 어머니가 대학 시절에 쓰던 타자기와 같은 모델이라 생신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거래 가능한지 물었다. 약속한 날 타자기를 가지러 온 젊은이는 타자기가 반들반들하고 예쁘다고 좋아했다. 어머니가 회고록을 쓰고 싶어 해서 타자기를 구하고 있었단다.

나는 '세상에 의미 없는 이야기는 없고 내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나이니, 끝까지 용기 내시라' 전해달라고 했고, 젊은이는 나의 응원 말도 생신 카드에 적어서 드리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타자기가 사랑받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곧 한쪽에 구멍이 뚫린 듯 작은 바람이 지나갔다. '아버지는 왜 타자기를 사셨을까? 타자기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셨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돌아가셔서 이제는 물어볼 수 없으니 더 안타까울 뿐이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아버지는 다정했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분은 아니었다. 주위 친척들에게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더 많을 정도다. 아니 어쩌면 내가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암으로 투병하시던 어느 날, 아버지가 당신의 지난 이야기를 덤덤히 한 적이 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못 하고, 나는 그저 건성으로 들었던 일을 지금도 후회한다.

아버지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던 함경도 북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쓰고 싶었을까. 당신의 아버지를 찾아 만주까지 홀로 찾아간 일을 적고 싶었을까. 아니면 40여 년 동안의 교사 생활을 되돌아보고 싶었을까. 어쩌면 시나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온종일 마음이 아렸다.
 
어느 날, 옷장 제일 높은 곳에 있던 아버지의 타자기를 꺼냈다.
 어느 날, 옷장 제일 높은 곳에 있던 아버지의 타자기를 꺼냈다.
ⓒ 전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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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를 그린 영화 <마지막 레슨>이 생각났다. 92세 생일날 마들렌은 두 달 뒤에 생을 마감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을 때 죽음을 택하기로 한 마들렌이 자신의 물건을 잘 포장해, 주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짧은 메모를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는 장면이 특히 가슴에 남았다.

청둥오리 두 마리를 상자에 담으며 '언제나 함께'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인다. 딸에게 줄 나무 가면을 보고 "네가 우리 애들을 지켜줘야 해, 잘 부탁해" 말하기도 한다. 나의 아버지도 타자기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다.

나는 어머니의 물건에 대해 궁금한 적이 있었나? 그동안 오래된 어머니의 물건을 빼앗듯이 정리했던 나를 반성했다. 쓸데없으니 버리자, 아직도 쓸만한데 왜 버리냐는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고 버리는 데만 집중했었다.

이제 어머니와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먼저 나눠야겠다고 다짐한다. 어머니 스스로 물건 아니 물건에 깃든 추억을 잘 정리하도록 도와드려야겠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바로바로 물어보아야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일단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새 ​립스틱을 사드려야겠다. 내가 싹 내다 버려 코로나가 끝나 마스크를 벗으면 바를 립스틱이 하나도 없다고 불만인 어머니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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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나만의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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