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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는 의미로 토지·건물 소유주들이 꽂아 놓은 붉은 깃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는 의미로 토지·건물 소유주들이 꽂아 놓은 붉은 깃발
ⓒ 동자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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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는 건물마다 붉은 깃발이 걸려 있다. 깃발은 동네 곳곳에 꽂히며 골목골목을 채웠고 어느 곳을 보아도 눈에 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보게 되는 붉은 깃발들, 매일 이것을 보고 살아야 하는 주민들은 불쾌감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심란해진다.

서울 한복판을 붉은 깃발이 점령하게 된 것은, 정부가 지난 2월 5일 발표한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쪽방촌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주거환경 개선을 포함한 동자동 지역의 공공개발 계획이 담겨 있었다.
  
공공주택 특별법에 의거한 이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동자동 일대 4만 7천㎡를 2021년~2030년까지 개발하여 주택 2410호(공공임대 1250호, 공공분양 200호, 민간 96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내용에 포함된 선(先)이주 선(善)순환 방식의 이주 대책은 주민들이 공사 기간에도 사업지구 내에 마련되는 임시 이주단지에서 생활하며 완공이 되면 입주하는 것으로, 그동안 쪽방이 개발될 때마다 강제퇴거를 당하고 쫓겨나야 했던 개발이 아닌 안정적인 재정착을 포함하고 있으니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공공개발이 발표되자 토지·건물소유주들은 사유재산을 빼앗는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며 자신들이 주도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을 하겠다는 대형 현수막을 걸었고 이것도 모자라 반대하는 의미로 건물마다 붉은 깃발을 꽂아 동네를 흉흉하게 만들었다.

쪽방촌의 대부분은 40년 이상 노후된 건물로 천여 명의 쪽방촌 주민들은 평균 1.5평의 작은방에서 화장실, 샤워실 등 개인위생과 관련된 시설을 십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설들은 제대로 관리 되지 않아 비위생적이고 불편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는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무시되었다.

국민의 주거권은 공공성이 강화될 때 보장

쪽방의 주거환경은 십 년 전이나 그 전과 비교해도 시간이 멈춘 듯 달라진 것이 없다. 쪽방촌에 처음 와 보는 사람들은 오래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낙후된 주거 형태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에 놀라고, 비인간적인 주거환경에 살게 하는 건물주들의 잔인함을 확인하며 분노하게 된다.

건물주들은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쪽방 세입자들의 불편한 주거환경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건물주들의 무관심과 무책임, 여기에 동자동 재개발과 관련한 건물주들의 이해문제까지 더해져 수십 년 동안 방치되며 쪽방은 반지하, 고시원보다 못한 최악의 주거로 존재하게 되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에는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집'이 투기의 수단이 되어 버린 지 오래고 70년대부터 재개발 계획이 있었던 동자동 쪽방촌도 그 중심에 있었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언젠가를 기다리던 토지·건물 소유주들에게는 이번 발표는 불벼락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계획 발표 이후 토지·건물 소유주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해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 실거주를 하고 있는 소유주는 20% 불과하지만, 자신들을 '주민'이라 칭하며 전체 주민의 입장인 듯 나서고 있다. 이번 사업이 '공공주택 특별법'에 의거한 사업임에도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사유재산을 강탈한다며 자신들이 주도하는 민간개발을 주장하며 더 좋게 개발할 수 있다고도 한다.

공공주택 지구의 경우 공공임대를 35% 이상 건설해야 하고, 민간개발의 임대주택 의무 비율은 서울시 조례상 15%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강제하는 규정이 없어 그만큼 안 지어도 그만이다. 똑같은 조건으로 건설한다면 공공에서 개발할 때 더 많은 공공임대 주택을 제공할 수 있으니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공공에서 개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은 공공임대 비중이 50%로 계획되어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다.

토지·건물 소유주들은 공공에서 하는 그것보다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할 수 있다지만 그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이윤을 더 많이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가 지금의 비정상적인 주택시장을 만들었고 최근 대장동 사태는 경고하듯 민간개발의 문제점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주거권은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는 민간주도가 아닌 공공성이 강화될 때 보장되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흔들림 없이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해 나가야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주민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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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쪽방촌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남대문 5가 쪽방촌(이하 양동) 개발은 민간에서 추진되고 있다. 양동은 개발 계획이 완화되며 2017년부터 본격적인 민간주도의 개발이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개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고 건물주들은 업체를 동원해 험한 분위기를 만들며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루가 달라지는 분위기에 주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 한 체 수년간 살아온 곳을 떠났다. 건물은 노후를 이유로 폐쇄되었고 각종 이유를 들어 사전 퇴거시켜 400여 명이던 주민들은 현재 절반으로 줄었다.

양동 개발계획에는 애초 주민들을 위한 임대주택 계획은 없었다. 이런 문제를 의식한 듯 2019년 서울시는 동자동과 후암동 일대에 주민들의 거처를 마련해 이주시키려는 미비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마저도 쪽방촌 주민들의 이주계획을 알게 된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아무런 보호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던 주민들은 주거권 단체와 함께 대응해 나가면서 2021년 6월 개발계획 안에 주민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포함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에 따른 물량으로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이 모두 입주하기에 부족하고, 제공되는 14㎡의 협소한 공간 또한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도 부족하다. 대책이 세워졌지만, 여전히 소외되는 주민들이 발생하고, 주민들의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적정 면적 제공은 시급하다.
   
쪽방 주민들의 삶은 투기 이윤을 기대하는 민간이 아닌 공공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결될 수 있다.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에 대한 지구 지정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그사이 민간개발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 혹시 이번 사업이 무산되는 것이 아닌지 주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발표 났을 때 주민들은 쪽방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감격스러워했다. 절망 속에서 살아온 가난한 이들이 이제야 갖게 된 희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정부는 투기로 재산을 지키려는 자들에 흔들림 없이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주거권은 국민의 안정된 삶을 위한 기본 권리이다. 국민의 주거권이 부동산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한 투기에 이용되는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제 역할을 하며 주거권 보장을 위해 앞서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21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 함께 하고 있는 ‘동자동사랑방 활동가 박승민’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태그:#홈리스추모제, #추모, #쪽방, #주거, #개발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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