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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이 만들어낸 연탄꽃, 올겨울 따뜻하게 보내세요^^
▲ 어린이부터 지역어른까지 한마음으로 봉사 지역민이 만들어낸 연탄꽃, 올겨울 따뜻하게 보내세요^^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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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달력과 업무일지용 노트가 책상에 놓였다. 새로운 물건은 늘 주인장의 환대를 기다리는 법, 동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새 계획도 세우고 못다 한 일들도 챙겨보시라고 했다. 나의 달력을 들춰보니 아직도 해야 할 일들에 포스트잇이 제법이다. 다행히도 해마다 학생가족들과 함께 하는 연탄봉사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겨울철이면 지역의 소외계층에게 겨울난방으로 연탄을 기부하고 배달하는 자원봉사활동을 한다. 올해 수능시험을 본 고3학생들 10여 명이 참여했는데 몇몇은 중1학년부터 6년째 활동을 한다고 나름 봉사활동 경력자로의 품새를 보였다. 불수능이었던 시험 결과가 나온 다음날에 봉사활동을 가자고 부탁했을때 성적이 생각대로 나오지 않은 학생들은 안 한다고 할 만도 한데 기꺼이 와주었다.

올해 연탄 기부 모금액에는 남다른 사연들이 많았다. 평소에는 내 학원의 학생 가족들이 바자회를 기획해서 판매하는 물건들의 수익금과 텃밭에서 나온 작물들의 판매대금, 그리고 지인들의 기부금이 많았다. 올해는 무지개 빛으로 다가오는 햇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바자금 기금 마련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첫 번째 공로를 보여준 사람들은 독서동아리 '책방향기'의 자원봉사팀 민들레씨앗 회원들이다. 코로나 시대에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글과 그림을 그려서 나눠주자고 했을 때 모두가 화답했다. '필사시화엽서나눔운동'으로 엽서와 함께 전달된 무료도시락이 거의 5000개를 넘었다. 엽서 중 돋보인 작품 180여 개를 전시하여 얻은 기부금 역시 연탄 구입의 밑거름이 되었다.

두 번째 공로자는 군산여고 학생들(허미영교감선생님외 학생 150여 명)이다. 40여 년 전에 졸업했던 선배로서 찾아본 모교에서 코로나 시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소개했다. 지역의 봉사활동 및 진로상담가로서 나와 소통하려는 그들의 열린 마음이 고마웠다. 그 이후로 학생들은 2천 장이 넘는 시화엽서를 만들어주었다. 또 학교에서는 연탄 1000장을 기부하고 고3 학생들이 연탄배달봉사현장에 나왔다.

세 번째 감사인사는 학원 및 동아리 가족과 나의 텃밭에게 하고 싶다. 학원 이외에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외부활동을 하는 나를 보면서 사교육시장에 맡긴 자식의 학업을 걱정할 만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영어학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인성과 정서 함양이라고 맞장구 쳐주신다. 학원 내의 바자회 참여 또한 일등공신으로 도와주신다. 학생들은 비치된 물건을 보면서 바자회나 기부금의 뜻을 알게 되고 연탄배달 봉사 현장에도 참여했다.

또한 올해도 우리 부부의 땀으로 일군 텃밭 작물들이 보인 효도는 가히 으뜸이었다. 농사에 재주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내가 새해가 되면 5년차 텃밭농부라는 이력을 갖게 된다. 진정한 농부의 자질은 남편이 가지고 있지만 디지털시대, 상품의 유통망을 책임지는 나의 노력과 사람과 물건 사이에 펼쳐진 그물망이 훼손되지 않도록 중재 역할을 하는 것 또한 능력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올해 모은 기부금으로 쌀 200kg과 연탄 1200장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모교의 연탄기부로 기부금이 남아서 다가오는 연말과 새해 첫 설에 더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무료급식센터에서 점심 한끼를 위해 소용되는 쌀은 평균 40~50Kg(300 기준)정도여서 많이는 못해도 두 단체에 50kg씩 햅쌀을 기부했다. 또한 극히 사각지대에 있는 열 명에게는 10kg 쌀 한 포대씩 나눠드렸다.
 
청소년 활동현장에는 내가 꿈꾸는 세대 간 화합이 있어서 참 좋다
▲ 군산여고 3학년들과 학원가족들의 화이팅 청소년 활동현장에는 내가 꿈꾸는 세대 간 화합이 있어서 참 좋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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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사용되는 난방연료로 연탄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도심 한가운데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소외층들이 많다. 도심의 급격한 변화추이로 눈에 띄게 아파트가 들어선 곳과 기존의원주민들의 주거시설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특히 군산의 근대역사거리의 구 도심 중심에는 연탄 난방을 하는 집들이 많고 거주인들 역시 노인 세대가 대다수이다.

봉사활동이라고 예쁜 모습만 생각하고 나온 고등학생들은 바로 이웃의 거주환경을 보고 나름 깊이있는 생각도 주고 받았다. 이제는 예비 성인으로서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려는 의지 역시 남달라보였다.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연탄 봉사이지만 저 스스로 큰 의미를 부여하는 봉사입니다. 그저 신체적인 노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추운 겨울을 이겨낼 따뜻함을 주는 보람찬 일입니다. 백 장이 훌쩍 넘는 연탄을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동아리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들 열심히 연탄을 옮겼습니다." (중앙여고 봉예은학생)

부모님을 따라나온 초등학생들 역시 어른 같은 말로 나를 감동시켰다.

"사진으로만 보던 연탄을 만질 때는 차가웠는데 그 연탄이 방을 따뜻하게 해준다는게 신기했어요. 연탄에 구멍이 28개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연탄이 무거워서 조금 힘들었어요." (서해초 함지현 학생)

"연탄이 300개라고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릴 줄 알았는데 여러 사람이 같이 나르니까 빨리 끝났어요. 처음 해보는 거여서 긴장도 됐지만 재미있었구요, 다음에도 또 하고 싶어요." (서해초 함호현 학생)


이 가족은 삼남매와 부모님이 총 출동했는데, 평소에도 엄마의 봉사활동을 익히 본 친구들이라 어른들의 말을 잘 이해하고 연탄을 나르는 태도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연탄수혜자들의 집을 찾기도 어려울 때는 지역의 시의원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봉사활동 당일에도 참여해서 학생들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특히 연탄을 쌓는 마무리과정에 남자들의 힘과 정교함이 들어간 기술이야말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나에게는 큰 믿음이 되었다. 활동 후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나보다 더 먼저 나누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나는 나와 우리, 지역공동체의 힘을 느낀 하루였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내년2022년에도 이 활동은 지속되겠지. 같은 모습일지라도 다른 사연으로 뭉쳐진 올해 '연탄과 쌀의 나눔'. 변함없이 사랑을 보내준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큰 사랑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태그:#연탄기부 및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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