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전조등 불빛이 가득한 안개 낀 대낮이다. 상영시간을 맞추느라 얼결에 예상 밖 영화를 마주한다. <로그 인 벨지움>이다. 벨지움은 벨기에다. 배우 유태오가 감독 유태오가 되는 계기와 실황이 영화의 콘텐츠다. 유태오가 누구지? 영 낯설다. 팬데믹 탓에 갑작스레 벨기에의 낯선 호텔에 고립된 배우 유태오는 멜랑콜리아(melancholia)에 부대끼다 영상 오디션 제의를 받는다.

유태오는 스스로 상대역을 미리 연기해 태블릿PC로 녹화한다. 영화는 그 녹화된 영상에 맞춰 자기 대사를 연기하는 유태오를 보여 준다. 그러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내딛는다. 대본에 없는 말을 뜬금없이 건네는 상대역 유태오에게 속내를 드러내며 대화하는 유태오를 연출한다. 상대역 유태오가 알 수 없는 시공의 목소리로 변환되는 지점에서 오프라인 다큐에 온라인 다큐가 더해진다.

감독 유태오는 '외로움이 진짜 나를 만나게 한다'는 항간의 경험치를 "약하거나 외로울 때, 두려울 때, 네 안의 누군가가 널 지켜줄 거야"라는 나름의 팬데믹 버전으로 변주한다. 유태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시각화하는 연출을 통해서다. 배우로서 자각하는 고통과 갈망을 감독이 되어 다스리는 자전적 스토리텔링으로 완성하면서. 난감함을 북돋움으로 제압한, 자가 백신 다큐 요법이다.

그렇게 온통 사적인 내밀함을 말거리로 한 뉴 노멀 콘텐츠에서 유태오가 상대 유태오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데 너는 어디에 있는 누구냐고. 상대가 묻는다. 너는 어디가 좋으냐고. 유태오는 현재가 제일 좋다고 한다. 과거는 상처 때문에, 미래는 걱정 때문에 밀치면서. 영화는 그런 유태오를 요리하며 살맛을 돋우는 캐릭터로 선보인다. 식재료가 부족한 호텔에서도, 귀국해 지인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요리한 음식으로 생기를 이어가는.

영화는 한국말로 말 거는 상대 유태오를 통해 유태오가 영어와 독일어 못지않게 한국어를 하는 독일 태생 순종 한국인임을 자연스레 암시한다. 팬데믹 국면에서 힘든 대다수 사람들을 의식해 신인남우상을 받고 성공 가도로 들어선 게 '특권을 누리는 것 아닐까' 조심하는 마음새도 비추면서. 유태오가 상대 유태오에게 한 마지막 물음, "우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간접적으로 들려준 셈이다.

또한 영화는 타인들의 견해에 귀 기울이는 유태오를 비춘다. <로그 인 벨지움>도 그 과정에서 수정되고 보강되었음을 밝히면서. 각본, 연출, 촬영, 음악, 편집 등 다방면에 직접 뛰어들면서도 고집부리지 않는 거다. 나와 다른 무엇을 선택한다는 건 변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거다. 영화에서 유태오는 자유가 무엇이냐는 상대 유태오의 물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거"라 대답한다. 감독 유태오는 자유를 향해 내딛고 있는 유태오에 다름 아니다.

<로그 인 벨지움>은 지금 여기에 충실하되 자유로워지려는 배우 유태오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https://brunch.co.kr/@newcritic21/83) 
로그 인 벨지움 유태오 팬데믹 멜랑콜리아 뉴 노멀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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