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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외롭다." 이 말을 달고 산다면, 당신은 정상적인 감각을 보유한 현대인이다. 너도 나도 외롭다. 우리는 지금 필연적 외로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대다수의 개인은 사회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심지어 나로부터 소외되어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외롭다. 간혹 외로움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지만, 믿지 않는다. 외로움이 장기간 만연해서 무뎌진 것은 아닌지.

업무 근력이 생기기도 전에, 화장실을 못 갈 정도로 바쁜 시기가 있었다. 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상사도 바빴기에 도움을 거절당했다. 원래 각자의 일은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것. 친절한 도움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처절하게 느꼈던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그 당시는 이 외로움을 잘못 이해하여 소개팅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소개팅을 하며 이 외로움은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이 아님을 이해했다. 이건 구조적 외로움이었다. 직장 내 필연적인 외로움을 인지하고 받아들인 후, 회사와 나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회사와의 거리두기가 쉬워졌다.

이 깨달음을 동기들에게 말했을 때, "그걸 지금 알았냐",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다행이었다. 나 혼자 '에일리언(alien)'이 아니었구나. 서로가 서로에게서 소외되어 각자 에일리언으로 살고 있구나. 외로우니까 직장인이구나.

현대인의 외로움

마르크스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그의 저서에는 통찰력이 있다. 현재 임금 노동자로 살고 있기에 그가 노동자를 이해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자 했던 노력들에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다.

자본주의가 절정에 이른,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시대적/구조적 외로움을 그의 소외 이론에서 이해해보았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 귀결로 네 가지 소외가 발생한다고 했다.

1)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2)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3) 유적(인간 種) 소외
4) 타인으로부터의 소외

첫 번째,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는 노동자 본인이 직접 만든 상품이 본인 소유가 아니라 회사의 재산이자 자본가의 소유인 데에서 오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임금 노동자의 길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 체계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간혹 성과에 대한 부당한 처우(지원팀은 애초에 영업 호조 실적에 대한 포상과 같은 보상에서 제외되는 것, 매출 호조에 대한 포상에 같이 노력한 낮은 직급을 제외하는 것 등)를 당면했을 때 이런 소외를 느낀다.

두 번째,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는 우리가 일을 지루하게 느끼는 것이다. 원래 '일'이란 것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활동이어야 하는데 효율성만을 중시하고, 노동자를 기계의 부품으로 여기는 시스템에서 노동자는 일에서 기쁨과 의미를 찾기 어렵다. 노동을 하는 동안 자기를 느끼지 못하고 일에서 해방되어야 비로소 독립된 자신을 되찾는다.

세 번째, 유적(類的) 소외는 인간이라는 종(種) 특성상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야 하는데 일이 단순히 생존수단으로 전락하여 생기는 소외이다. 생산성만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와 임금 노동제 안에서 노동의 의미가 왜곡되어 종의 특성, 즉 자아실현을 실현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네 번째, 타인으로부터의 소외는 구조적으로 생기는 경쟁, 대립 구조에서 생기는 인간다움으로부터의 소외이다. 타인에게서 얼마나 뺏어올 수 있을까, 타인을 어떻게 앞지를 수 있을까에 전념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산물이다.

1818년생인 마르크스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미리 알기라도 했던 걸까. 구조적 외로움을 완벽하게 벗어날 순 없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소외 속에서, 에일리언으로 가득한 세상(물론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는 외로움을 유발하는 소외와 완벽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배제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임금 노동자로서 일의 결과물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기에 베이킹이나 글쓰기 같은 창작활동을 통해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를 보완한다. 노동 소외와 유적 소외 측면에서는 일에서 재미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한다. 이처럼 우리는 시스템에서 계속 밀려나고 배제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타인과 연결되려고 애쓴다.

자본소외가 가중시킨 외로움

부동산이 폭등하고 비트코인이 떡상하고 주식이 따상했다는 주변인들의 소식이 매일같이 들린다. 그리고 이 흐름을 타지 못한 이들은 슬픈 신조어 "벼락 거지"로 칭해진다.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며 성실히 저축해왔는데, 남들이 소유한 부동산과 주식의 가치가 대폭 상승해버리자 상대적으로 가난 폭탄이 안겨진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가난이라니. 요즘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은 오답노트를 할 수 없다.
 
출처: 국가통계포털 KOSIS
▲ 순자산 지니계수 출처: 국가통계포털 KOSIS
ⓒ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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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데이터가 말하듯 코로나 시기에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구조조정과 자영업 붕괴로 많은 이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한편, 자산을 소유한 상위 계층은 유동성과 저금리로 인해 자산가격 상승을 맛보았다. 불평등한 정도를 의미하는 순자산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완전평등)는 2021년 0.603으로, 작년 0.602보다 올랐다. 이는 2013년 0.605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의도치 않게 자본으로부터 소외되었다. 거기에 부동산 값이 폭등하자 다수의 무주택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다는 현실에 마주한다. 지금까지 어렴풋 느껴왔던 자본소외를 뚜렷하게 실감하게 된 것이다. 기득권에 낄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좌절과 박탈감이 안그래도 외로운 현대인의 외로움을 가중시킨다.

인간소외, 노동소외, 자본소외..... 우리는 필연적 외로움의 시대를 살고 있다.

*더하는 생각.
 
"그런데, 공유경제는 어쩌다 '핫'해진 걸까요? 인구는 점점 늘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원하는 걸 모두 소유할 수 없는 현실의 영향이 큽니다. 모두 소유할 수 없으니, 함께 나눠쓰자는 취지이죠." 

-유현준 교수가 <CITY CHANGER 2018 밀레니얼의 도시> 강연에서 한 말

코로나 시기, 사업 모델에 따라 주춤한 공유경제 분야도 있지만, 일상을 둘러보면 더 다양한 형태의 공유경제가 비대면 요소, IT기술과 결합해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모빌리티에서부터 공간, 명품, 기계설비 그리고 저작권(뮤직카우)까지.

공유경제는 초기 개념인 "한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협업 소비를 기본으로 한 경제(지식백과)"에서 당장 필요 없는 물건, 설비, 서비스 등을 빌려주거나 여럿이 나눠서 소유한다는 의미까지 내포하게 되었다. 이처럼 공유경제가 우리 삶에 다양한 형태로 스며든 이유는 기술 혁신이라는 요소가 크지만, 유현준 교수가 말했듯이 나만의 것을 온전히 소유하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자본소외 실감)이 작용한 부분도 있다.

소유하지 못하면 없음(無)이기에 소유가 안 되면 사물과도 연결되지 못한다. 공유라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없기에 타자와의 연결을 전제한다. 결국 '자본으로부터의 소외'와 '타인으로부터의 소외'가 자연스럽게 연결을 함의하는 "공유"라는 대안을 찾게 한 것은 아닐지. 이 흐름과 연결고리가 억지스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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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그렇게 피터팬 내지는 돈키호테를 닮은 낭만주의자가 되었다.그러나 네버랜드는 없다. 출근하는 피터팬으로 살며 책임감 있는 어른과 낭만주의자의 균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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