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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기차로 수학여행을 왔던 이들이라면 꼭 경주역 역전에서 단체사진을 찍곤 했다.
 기차로 수학여행을 왔던 이들이라면 꼭 경주역 역전에서 단체사진을 찍곤 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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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경주와 '산업도시' 울산, 두 곳의 시내 복판을 훑고 부산, 대구, 그리고 서울까지 오가던 철길이 백 년의 세월 끝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중앙선 영천역에서 아화, 건천을 거쳐 경주까지 가는 42.3km의 중앙선 철길, 그리고 경주에서 불국사를 거쳐 울산 호계와 태화강까지 가는 39.7km 동해선 철길이 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설레는 여행의 시작이 되었을 이백리길 철도였다. 수학여행을 가는 길 학교 학생들이 모두 타는 임시 완행열차를 타고 갔던 경주역의 모습, '공업도시' 울산에서 보기 드물게 오일장이 서던 호계역전의 모습까지 27일을 마지막으로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28일을 기해 열차의 속도가 10분에서 20분가량 빨라지고, 울산에는 광역전철이 개통하는 대신 단선 철도가 꼬불꼬불 경북 남부를 오가는 풍경은 사라진다. 지난 12월 14일 경주와 울산, 두 도시의 철길을 더 늦기 전에 다녀왔다. 

경주역에 서니 왁자지껄 수학여행 모습 생각나네

한옥 건물로 된 경주역은 경주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놀기 위해 대구에 가고 부산에 갈 때, 어르신들이 하루 두 번 있는 중앙선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에 갈 때면 이 역을 이용하곤 한다. 대구로 가는 소요시간도 한 시간 정도로 버스에 밀리지 않다 보니 동대구로 가는 열차가 올 때면 많은 이들이 타고 내린다.

사실 외지인들은 경주역을 주로 '수학여행'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거진 사라진 풍경이 되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역에는 이따금씩 경주역으로 가는 임시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하곤 했다. 경부선을 세차게 달리다 대구를 넘어서면 대구선으로, 다시 중앙선으로 합류해 구불구불 경주까지 가는 '수학여행' 열차 말이다. 

지금이야 한 학교 전체가 움직이는 수학여행 대신, 반별로 경로를 짜는 그룹 체험활동이 대세가 됐다. 그마저도 경주로 갈 때 KTX 열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어나 이런 기다란 '수학여행 열차'가 경주역에 서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그래도 경주역은 수학여행 시절 추억을 안은 모습 그대로 경주 도심의 복판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경주역 육교에서 바라본 경주역 승강장의 모습. 열 칸이 넘는 열차도 세울 수 있을 법한 큼지막한 승강장이 눈에 띈다.
 경주역 육교에서 바라본 경주역 승강장의 모습. 열 칸이 넘는 열차도 세울 수 있을 법한 큼지막한 승강장이 눈에 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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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많았던 80년대와 90년대에는 한 학년 학생들을 모조리 태운 수학여행 열차가 최소한 열 칸, 어쩌면 그 이상의 객차를 끌고 왔을 테다. 그래서인지 경주역의 승강장은 다른 주요 기차역들 못잖게 길고 널찍하다. 당장 다른 지방역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있는 승강장 맨 끝자락 역명판이 저 멀리에 눈에 들어온다.

물론 지금은 서너 량짜리 디젤동차가, 그리고 많아야 대여섯 칸의 객차를 단 무궁화호 열차가 경주역의 손님이지만, 대구에서 포항으로 가는 무궁화호가 구태여 방향을 돌릴 정도로 운전 취급상 중요한 역이기도 하다. 대구로, 울산으로 가는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많은 손님이 열차에 오르고, 내리는 삶의 현장이 된다.

어쩌면 '일상을 벗어난 여행'의 영역은 멀리 서울에서, 부산에서 KTX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신경주역으로, 그리고 매일매일 이어지는 일상의 영역은 대구와 부산, 포항을 오가는 무궁화호가 오가는 지금의 경주역이 나눠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28일이면 경주역의 기능도 모두 신경주역으로 옮겨지며 그런 '분담'도 사라질 테다.

불국토로, 그리고 양동으로 가는 첫 관문
 
100년 가까이 불국사로의 관문 역할을 해왔던 불국사역의 모습.
 100년 가까이 불국사로의 관문 역할을 해왔던 불국사역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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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을 출발해 울산으로 향하는 무궁화호는 경주 곳곳의 유적지를 순례하듯 흐른다. 한쪽 창에 쪽샘지구를, 반대 창에 인왕동 고분군의 생경한 모습을 품고 지나는 열차는 관광객이 늘 오가는 월지 귀퉁이를 스쳐 가고, 신문왕릉도 빗겨 간다. 열차가 서지 않는 동방역을 지나 마주하는 열차의 첫 번째 정차역은 불국사역이다.

불국사와 4km 남짓 떨어진 곳에 역이 위치해 정작 걸어서 불국사로 가기는 어려운 '불국사역'이지만, 역 주변은 불국사를 찾는 관광객에 맞춘 '역전 상권'으로 차 있다. 관광호텔 같은 숙박업소는 물론 식당들도 즐비하다. 불국사 입구를 거쳐 보문단지까지 올라가는 버스도 수시로 오간다.

불국사역을 도착한 열차에서 내리자 생각보다 적지 않은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넓지는 않지만 한 열차에서 내리는 승객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승강장에는 따뜻한 겨울 햇살이 그대로 내리쬔다. 불국토를 구현하기 위해 신라인들이 지었다는 불국사의 백운교 앞 햇빛을 꼭 닮은 햇살이다.

열차가 떠나고 뒤돌아 마주한 불국사역 건물은 1936년 지어진 기와집이다. 매표소도, 대합실도, 승강장도 스무 걸음 남짓이면 모두 닿을 수 있는 자그마한 건물이지만, 그런 자그마한 역의 운치가 있다. 며칠 뒤면 불국사역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오랜 역 건물의 역사를 바탕으로 열차가 멎은 이후에도 역 건물만큼은 보존된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무궁화호 열차가 지금은 열차가 서지 않는 양자동역을 빠르게 지나고 있다.
 무궁화호 열차가 지금은 열차가 서지 않는 양자동역을 빠르게 지나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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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역을 뒤로하고 포항으로 가는 열차에 오르면 많은 역을 스치듯 지나간다. 여행을 시작했던 경주역을 멈췄다 떠난 열차는 안강을 거쳐 포항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 다다르니 지붕과 벤치가 역의 전부인 양자동역을 통과한다. 지금은 모든 열차가 멈추지 않는 역이지만, 한때 양동마을의 입구 노릇을 했던 역이다.

실제로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양동마을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간다. 하지만 양동마을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전인 2007년에 이미 열차가 멈추지 않게 되었던 탓에 열차를 타고 내릴 수는 없다. 선로도 한 가닥에 불과해 열차가 마주 오는 열차를 비켜주기 위해 멈출 일도 없다. 

역의 유일한 시설물인 승강장 위에는 약한 비 정도만을 막을 것 같은 비탈진 슬레이트 지붕이 얹어져 있고, 벤치 몇 개만이 놓여있다. 벤치에 앉아 잠시 다리를 식히니 바람 소리 아래로 선로가 우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이내 열차가 경적을 한 번 울리며 쏜살같이 역을 지난다. 14년 전에는 양자동역에 섰을 무궁화호 열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역을 떠난다.

양자동역도 오는 28일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양자동역에서 나오는 길에 양동마을을 들르니 2010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안내가 눈에 띈다. 양동마을이 조금만 일찍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면, 양자동역도 불국사역처럼 14년은 더 열차를 받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된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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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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