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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독립유공 서훈 문제는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부각돼 있다. 독립보훈을 맡고 있는 국가기관인 국가보훈처, 그 산하의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는 올해 11월 침략자 일본군과 싸운 항일투쟁의 총사령관인 전봉준과, 최고지도자였던 최시형의 서훈 심사에서 "활동내용의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이라는 이유를 들어 서훈 불가 판정을 내렸다. 필자는 지난 11월 국가보훈처의 결정을 반박하는 기사를 썼다(관련 기사 : '전봉준·최시형 독립유공자 서훈 불가' 판정을 논박한다). 

일본의 저명한 청일전쟁 연구의 대가인 일본 나라여자대학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명예교수는 2020년 "동학농민혁명은 동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의 선구, 세계 민족독립운동의 선구"가 된다고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대하고 민족의 독립을 지키려는 운동", 즉 '민족독립운동'이라는 주장이었다.
 
"Ⅱ. 동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의 선구가 된 동학농민혁명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은 소수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사를 좌지우지한 시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의 한편으로 그 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대하고 민족의 독립을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발전했습니다.

동학농민이 일본의 조선 침략에 반대하여 봉기한 것은 1894년이었습니다. 그 8년 후, 1902년에 영일동맹이 맺어집니다. 나는 동학농민혁명의 항일 봉기는 참으로 동아시아에 있어서 제국주의의 패권체제가 성립할 전야의 시기에 그 제국주의의 '패권'에 대한 '선구적인 이의 제기'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의 현재까지 계속되는 세계의 민족독립운동의 선구로 자리매길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세계사의 현단계와 동학 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생각한다', <2020년 나주동학농민혁명 한·일학술대회 자료집>, 나주시, 2020, 10, 28, 14∼15쪽.)
 
동학농민혁명이 '조선의 민족독립운동'이고, '동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의 선구'라는 주장은 그의 저서인 2007년의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에서 이미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동학농민군의 제2차 봉기는 근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직면한 민족적·대중적 항일 투쟁이었습니다.(중략) 외국 군대의 침입에 반대하고, 민족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일어나 대규모의 대중적인 민족운동은 1894년 일본군에 의한 왕궁 점령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동학농민군을 주력으로 한 항일투쟁이 그 시작입니다.

일본은 조선이나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로 점점 널리 침략해 감에 따라, 이후 각지에서 여러 가지 대중적인 항일운동에 직면합니다만 그 최초의 것이 바로 1894년 한국 동학농민군을 주력으로 한 투쟁이었습니다."(<현대 일본의 역사인식>, 고분켄(高文硏), 2007.; 박맹수 역,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 모시는사람들, 2014, 256∼257쪽.)
 
(2021, 11, 12)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
▲ ‘2021년 나주동학농민혁명 한·일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의 모습 (2021, 11, 12)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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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이 '조선의 민족독립운동'이라는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의 주장은 이미 한국의 동학농민혁명 전공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상식이다.

동학농민혁명 전공 역사학자들은 2021년 8월 5일에 발표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서훈 촉구 '성명서'에서 "2차 봉기 참여자가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음은 한국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에 의해 이미 입증되었다"라고 하면서 "동학농민혁명사 연구 성과를 비추어보면,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는 일은 정당성을 갖고 있다. 1894년 6월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을 주목해야 하며,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동학농민군이 전국적으로 봉기했으므로 국가보훈이라는 면에서 동학농민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정당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성명서'를 통해, 동학농민혁명 전공 역사학자들은 "독립보훈 업무를 맡고 있는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들이 '동학농민명예회복법'과 '독립유공자법', 그리고 연구 성과에 의거하여, 2차 동학농민혁명의 참여자의 서훈 심사가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는 결과로 매듭지어 지기를 바란다"라고 제대로 된 2차 동학농민혁명의 참여자의 서훈 심사를 촉구했다.

1998년 이래 지금까지 한국독립운동사 개설서 역할을 해온 <한국독립운동사 강의>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은 1894년 갑오의병과 2차 동학농민혁명에서 시작돼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전개되었다고 서술했고, 이 내용을 대학 강단에서 아래와 같이 가르쳐왔다.
 
"한국 독립운동은 일제의 침략에 대응한 한말 국권회복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일제 침략이 가시화되던 1894년 의병전쟁의 태동과 동학농민전쟁의 2차 봉기는 독립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장석흥, '제2장 한국 독립운동의 시기별 특성', <한국독립운동사 강의>, 한국근현대사학회 엮음, 한울아카데미, 1998, 57쪽.; 장석흥, 같은 글, <한국독립운동사 강의>(개정판), 한국근현대사학회, 한울, 2007, 58쪽.)
 
즉 1894년 갑오의병과 동학농민전쟁의 2차 봉기에서 한국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안병욱 교수(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는 '1894년 농민전쟁의 역사적 위치'(1997)라는 논문에서 "1894년의 농민전쟁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 반침략과 반외세 투쟁의 선구라는 의미를 갖는다.(중략) 1894년 농민항쟁은 반일 의병항쟁의 선구라는 역사적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것"('1894년 농민전쟁의 역사적 위치', <1894년 농민전쟁 연구>5, 역사비평사, 1997, 83∼84쪽)이라고 주장했다. 2차 동학농민혁명이 반일 의병항쟁의 선구라는 것이다.

박찬승 교수도 2004년 '동학농민전쟁기 일본군·조선군의 동학도(東學徒) 학살'이라는 논문에서 "1894년 제2차 동학농민전쟁의 성격은 철저히 반일, 반침략전쟁으로 보아야 하며, 다음해 있었던 유생 중심의 항일의병의 선구적인 성격을 띤다"('동학농민전쟁기 일본군·조선군의 동학도(東學徒) 학살', <역사와 현실>54, 한국역사연구회, 2004, 34쪽)고 주장했다. 반일, 반침략전쟁은 항일 독립운동과 같은 말이다. 2차 동학농민혁명이 항일의병인 을미의병(1895)의 선구라는 것이다.

을미의병과 2차 동학농민혁명은 똑같은 항일무장투쟁이었다. 을미의병 참여자 120명은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반면 전봉준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지금까지 단 한명도 서훈되지 않았다. 공정과 형평에 반한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서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역사학자는 모순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1공적심사위원회에 '동학혁명분과'를 만들어 이 문제를 논의하면 된다. 의병분과(1분과)에서 의병 전공 심사위원들이 의병참여자를 심사해서 서훈을 하였듯이, 제1공적심사위원회에 '동학혁명분과'를 만들어서 동학농민혁명 전공 심사위원들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심사해서 서훈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동학농민혁명 전공자는 공적 심사위원에 단 한명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게 말이 되는가. 제1공적심사위원회에 분과 하나를 더 만들면 된다. 이것이 공평한 것이다.

또 하나의 해결 방안은 동학농민혁명 전공자, 1심과 2심의 공적 심사위원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이 서훈문제를 만장일치로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들은 연석회의를 열어 을미의병 서훈을 회수하던지,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서훈하던지 양단간에 결단해야 한다. 국가보훈처와 공적심사위원회는 연석회의를 열어 모순을 해결해야 할 책무가 있다. 연석회의에서 합의해서, 이 서훈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
 
(나주시, 2021, 11, 12.)
▲ <2021년 나주동학농민혁명 한·일학술대회 자료집> (나주시, 2021, 11, 12.)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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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2021년에 다시 한번 동학농민혁명은 "동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의 선두가 된다"라고 하면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고 민족의 독립을 지키는 운동"이라고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동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의 선두가 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그 역사를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일본제국'에 이어지는 사람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무시하라고 해도 그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고 민족의 독립을 지키는 운동의 역사는 불멸합니다."(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현대 일본의 한국·조선 인식- 근대 일본의 전쟁의 기억 -', <2021년 나주동학농민혁명 한·일학술대회 자료집>, 나주시, 2021, 11, 12, 35쪽.)
 
이렇게 일본의 역사학자도 2차 동학농민혁명을 '민족독립운동'으로 그 역사적 위상을 평가하였다. 국가보훈처의 공적심사위원들은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전봉준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독립유공 서훈 조치를 단행하기를 바란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누구?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는 1929년 일본 오사카부에서 출생했고, 1953년에 교토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63년부터 1993년까지 나라여자대학에서 강사, 조교수, 교수로 근무하였다. 1960년대 초반부터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사 연구 등 역사적 사실 규명에 진력했다.

1960년대부터 청일전쟁을 출발점으로 한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침략사 해명에 집중했다. 정년퇴직 이후에도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동학농민혁명 및 청일전쟁에 관한 역사적 진실 규명에 매진함으로써 '일본의 양심'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저서로 <근대일본과 조선>(1969), <신정 겐겐로쿠(蹇蹇錄)>(1983), <근대일본의 조선인식>(1993), <역사의 위조를 바로잡다: 전사에서 치워진 일본군의 조선왕궁점령>(고분켄(高文硏), 1997.; 박맹수 역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푸른역사, 2002.)로 출간), <역사가의 사명>(2000), <이것만은 알아두자: 일본과 한국의 역사>(2002),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고분켄(高文硏), 2007.; 박맹수 역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모시는사람들, 2014)으로 출간),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2009); 박현옥 역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모시는사람들, 2014)으로 출간), <동학농민전쟁과 일본-또하나의 일청전쟁>(나카츠카 아키라·이노우에 가쓰오·박맹수 공저, 고분켄(高文硏), 2013.; 한혜인 역 <동학농민전쟁과 일본-또하나의 청일전쟁>(모시는사람들, 2014)으로 출간) 등이 있다.(<현대 일본의 역사인식>, 300∼301쪽.)

덧붙이는 글 | 다른 매체에 송고한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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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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