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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정비된 순천의 여순항쟁탑 전경.여순 사건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사적지 정비가 더욱 원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면의 안내판은 새로 설치된 것이다.
 새롭게 정비된 순천의 여순항쟁탑 전경.여순 사건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사적지 정비가 더욱 원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면의 안내판은 새로 설치된 것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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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11일), 통일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여순 사건 관련 사적지를 답사했다. 올해 통일교육을 마무리하는 행사다.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활동에 제약이 많았지만,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고 융통성 있게 계획을 수정하면서 나름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한다. 통일과 평화가 그들에게 더는 어색한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한다. 

남북 관계도 지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부터 시작된 훈풍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경색되어 있지만, 통일과 평화를 향한 도도한 물결은 더딜지라도 멈추게 할 순 없다. 새 교육과정에 따라 개정된 교과서는 통일교육에 있어서 천군만마다. 답사를 두고 교과서에 수록된 사진과 삽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라고 답하는 아이도 있다. 

새 교과서로 배운 아이들은 여순 사건에 대한 평가부터 사뭇 달리했다. 아직도 5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겐 '여순 반란 사건'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지만, '일베'가 아니고서야 10대 아이들을 비롯한 청년 세대에서 그렇게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부 현대사학자들과 여수와 순천의 시민단체에선 '여순 항쟁'으로 호명하기도 한다. 

여순 사건 사적지마다 걸린 보수 야당의 추모 현수막이 그동안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빨갱이' 운운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던 그들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으로 규정하며 무고한 여수와 순천 시민들을 집단 학살한 이승만 정권의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여수로 가기 전 '여순 항쟁탑'에 들르다

과거 여순 사건에 대한 그릇된 평가를 알 길 없는 아이들은 사적지마다 서린 희생자의 억울함과 유가족의 피눈물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이 말끔하게 정돈되어있는 데다 울긋불긋 현수막까지 내걸려 있어,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잡풀만 무성했던 몇 해 전의 을씨년스러움을 상상하기 힘들다.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다.

사건이 최초 일어난 여수로 가기 전, 잠깐 순천 팔마 경기장에 들렀다. 1948년 당시의 역사적 현장은 아니지만, 여순 사건 답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 순천 지역 최초로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어서다. 경기장 입구에서 실내 체육관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건물 뒤편 외진 곳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순천 시내 곳곳의 하고 많은 사적지들을 두고 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곳에 세워졌을까. 탑이 세워진 건 2006년이 되어서다. 그것도 중앙 정부의 주관은커녕 단 한 푼의 지원도 없이 시민단체의 노력과 시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마련된 것이다. 그 말인즉슨, 여순 사건은 일어난 지 60년이 다 되도록까지 호명하기를 꺼렸다는 뜻이다. 

세워질 당시엔 '여순 사건 위령탑'이었다. 위령, 곧 희생자들을 위로한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을 수 없었던 거다. 기존의 '반란'이라는 오명을 삭제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우리 사회의 지배 권력에 여전히 주눅이 든 시절이었다. 지금의 '여순 항쟁탑'으로 이름이 바뀐 건 불과 작년 봄의 일이다. 

아이들은 추모의 묵념 후 한목소리로 새로운 다짐을 건넸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순천 시내에 산재한 실제 사적지들을 일일이 찾아 답사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적지 정비와 홍보에 발 벗고 나선 상태다. 한편, 최근 국회에서 여순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어 내년 1월 21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이승만 정권의 야만성에 몸서리치다
 
'형제 묘' 앞에서 통일 동아리 단체 사진을 찍었다. 왼편 나무 말뚝에 적힌 '원혼비' 세 글자에 담긴 뜻을 두고 아이들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형제 묘" 앞에서 통일 동아리 단체 사진을 찍었다. 왼편 나무 말뚝에 적힌 "원혼비" 세 글자에 담긴 뜻을 두고 아이들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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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만성리 해변에 세운 위령탑과 인근 '형제 묘' 앞에서는 더욱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우선, 이곳을 가족과 함께, 또 학교 수학여행 때 여러 차례 왔었다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때마다 두 사적지 바로 앞을 지나는 레일바이크를 탔는데, 이곳이 여순 사건의 역사적 현장이라는 건 까맣게 몰랐다는 것이다.

레일바이크 철길 옆에 사적지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설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제주 4.3 사건과 묶여 시험에 종종 출제되는 내용이라 고등학생 정도면 관심을 보일 거라고 확신했다. 여순 사건 당시 이 옛 철길을 따라 '반란군'이 순천을 향해 떠났으니, 레일바이크에 역사적 의미를 담아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아이들은 '형제 묘'에서 이승만 정권의 야만성에 몸서리를 쳤다. 육해공군을 총동원해 사건을 진압한 뒤 부역자를 색출한다며 학살한 시신 125구에 장작을 쌓고 기름을 끼얹어 불태운 현장이다. 아이들은 미소 냉전과 극단적인 좌우 대립을 핑계 삼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왜 '형제 묘'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모두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위령탑의 뒷면에 새겨진 말 줄임표 '…'도 색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당시 집단학살을 자행한 이승만 정권과 수십 년 동안 진상 규명 요구를 억누른 역대 정권에 대한 분노를 그렇게 표현한 거라 해석했다. 일종의 '침묵의 저항'이라는 거다. 지금껏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다는 점을 에둘러 강조하기 위해 비워두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125명을 부역자로 몰아 학살한 현장

만성리를 벗어나 시내 한복판에 있는 여수 중앙초등학교로 향했다. 여순 사건 당시 종산초등학교로, '형제 묘'에 묻힌 125명을 부역자로 몰아 학살한 현장이다. 아이들은 텅 빈 운동장에 서서 친일 청산에 실패한 우리 현대사를 성찰했다. 교문 옆 표지판에 새겨진 이름 석 자를 서로 되뇌며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김종원. '백두산 호랑이'로 불릴 만큼 악명 높았던 친일 군인 출신으로, 이곳 운동장에서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일본도로 부역자의 목을 내리쳤다. 그의 야만적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6.25 전쟁 당시 일어난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 규명을 방해하기 위해 현장에 가던 합동조사단에 총을 쏘도록 명령했다.

아이들은 악질 친일파가 반공 투사이자 애국자로 둔갑한 극명한 사례라고 말했다. 여순 사건이 진압된 뒤 '반란군'이 산으로 숨어들고 부역자가 학살되는 과정에서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면서, 6.25 전쟁의 시점을 1950년으로 삼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아이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여순 사건 때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을 인터넷에서 찾아 들려주기도 했다. 

여수 서초등학교를 경유해, 시 외곽 최초 봉기가 일어난 14연대 터를 찾았다. 서초등학교는 주민들을 운동장에 집결시킨 뒤 부역자를 색출하는 장면을 담은 교과서 속 사진의 배경이 된 곳이다. 여순 사건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현재 야구부를 위한 연습용 그물이 둘러쳐져 당시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교문 옆 안내판에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남아있을 뿐이다.

겨울 바다의 칼바람이 부는 14연대 터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번 답사를 갈무리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반란군'의 결정은 정당했다고 명토 박았다. 이승만 정권에 맞선 그들의 저항은 여수와 순천, 제주 등지에서 엄청난 민간인 학살로 귀결됐지만, 그것은 오롯이 정권의 책임이며 그들의 결행 의도를 폄훼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반란군'이 내건 명분은 '제주도 출동 거부'와 '친일파 처단', 그리고 '단독 정부 수립 반대'와 '조국 통일'이었다. 이들 중 이승만 정권이 수용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한 아이는 '반란군'의 주장을 180도 뒤집으면, 이승만 정권의 획책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14연대 내 좌익 계열이 도모한 항명이자 반란이라는 단순한 규정만으로, 역사의 진실을 가릴 순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늘 엉뚱할지언정 생각지도 못한 배움을 얻는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뜻은 아니다. 가르친 교과서 속 지식이 다른 회로를 타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되살아난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교육이다. 교사로서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서로를 고양한다는 '교학상장'의 교훈을 깨닫는 건 덤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여수 만성리 해안에 자리한 여순 사건 위령비의 모습. 여수 지역 학생들이 그린 조약돌 위 동백꽃이 여순 사건의 진상 규명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뭉클한 풍경이다.
 여수 만성리 해안에 자리한 여순 사건 위령비의 모습. 여수 지역 학생들이 그린 조약돌 위 동백꽃이 여순 사건의 진상 규명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뭉클한 풍경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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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통일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통일과 평화를 목이 터져라 부르댔지만,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는 암울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전히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열에 일곱은 공감하지 않고, 통일 비용 등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는 각박한 대답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부단한 통일교육에도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 하면 연상되는 단어를 꼽으라면, 김일성과 김정은 등 사람 이름을 빼면 가난과 핵무기, 옥수수죽, 강제 노동 등이 맨 앞자리다. 편견으로 점철된 북한의 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책 읽기와 답사 등을 통해 분단의 원인과 영향에 관해 공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긴 까닭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다수가 지속적인 통일교육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비록 가랑비에 옷 젖는 수준일지언정 통일과 평화,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시나브로 높아지고 있다. 통일교육의 방법이 시대와 세대의 정서에 맞게 변화하고 학교 현장의 관심이 더해진다면, 적어도 "우리가 북한을 왜 도와주어야 하느냐"는 매몰찬 질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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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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