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연모>의 한 장면

KBS 2TV <연모>의 한 장면 ⓒ KBS

 
<연모>가 비극적 운명에서 해방된 등장인물들의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며 막을 내렸다. 14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연모> 최종회에서는 이휘(박은빈)-정지운(로운)-이현(남윤수) 등이 역모를 일으킨 한기재(윤제문)에 맞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한기재와 원산군(김택)은 손을 잡고 반란군을 일으켜 궁궐을 습격한다. 이휘는 후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후계자가 될 동생인 제현대군 이겸(차성제)을 어떻게든 궁밖으로 빼내려고 한다. 그러나 원산군이 병사들을 이끌고 길목에 나타난다. 원산군은 대비(이일화)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제현대군을 살해하고 대비를 강제로 억류한다. 이어 원산군은 이현마저도 죽이려고 하지만, 이휘가 보낸 김가온(최병찬)이 나타나 원산군에게 중상을 입히고 이현을 구해낸다.
 
이휘와 정지운은 반란군에 직접 맞서 고군분투하지만 중과부적으로 위기에 몰린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정석조(배수빈)가 나타나 이휘를 구해낸다. 정석조는 궁밖으로 나가는 길이 모두 막혔으니 일단 궁안으로 피신하라고 권하고, 이휘는 떠나기전 "살아남으라, 내 아직 그대를 용서하지 않았으니 살아남아서 벌을 받으라"는 말을 남기며 복잡한 애증을 드러낸다. 편전으로 후퇴한 이휘는 제현대군의 참혹한 시신을 보고 절규한다.
 
정석조는 속죄를 위하여 한기재를 제거하는 것을 자신이 마지막 '해야할 일'로 결심하고 있었다. 정석조는 한기재를 향하여 돌진하지만 반란군들에게 막혀 저지 당하고, 오히려 한기재가 직접 찌른 칼을 맞고 끝내 쓰러진다. 뒤늦게 달려온 정지운 앞에서 정석조는 "너를 보면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나를 닮지 않은 것이었다. 용서하지 말거라 이 아비를"라는 유언을 남기고 결국 아들의 품안에서 숨을 거둔다.

반란군에게 궁이 장악당하고 퇴로가 모두 막힌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휘는 마지막 결단을 내린다. 이휘는 피신하라는 측근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한기재를 만나 원산군에게 양위하겠다는 뜻을 밝히겠다고 선언한다.
 
정지운과 둘만 남은 이휘는 "걱정마라. 꼭 살 것이다"라고 약속하며 "혹시 그때 내가 했던 말 기억나냐. 갖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어봤었지. 생각해봤는데 하나 있다. 비녀가 가지고 싶다. 댕기말고 고운 비녀. 이 일이 끝나고 궐을 나가게 되면 꼭 사달라"고 부탁한다. 이휘는 "살고 싶다. 하여 꼭 살 것이다. 연모합니다. 그대를 만나고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연모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포옹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휘는 한기재 앞에 나타나 양위를 선언하며 더이상의 희생은 멈춰 달라고 제안한다. 이휘는 한기재와 독대하여 차를 마시며 그동안 서로 밝히지 못했던 그간의 속내를 고백한다. 한기재는 이휘 앞에 사약을 내민다. 한기재는 "애초에 탄생조차 하지 않았으니 죽음인들 두렵고 억울할 연유 또한 없을 것"이라며 이휘에게 냉랭하게 자결을 강요한다.

하지만 이휘는 담담하게 "이렇게 함께 죽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외조부님, 저와 함께 가시지요"라고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휘와 한기재가 마신 차에는 독이 들어있었고, 그것은 바로 한기재가 선왕 혜종(이필모)을 독살했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스스로의 목숨까지 걸고 한기재와 동귀어진을 노린 것.

한기재는 분노와 경악으로 이휘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지만 이미 독이 퍼져서 두 사람 모두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뒤늦게 김상궁(백현주)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달려온 정지운의 품안에서 이휘는 의식을 잃는다.

이휘는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 여인으로 돌아와 정지운과 혼례를 올리는 꿈을 꿨다. 행복감에 들떴던 이휘는 어느새 정지운이 사라져버리고 홀로 남게 되어 눈시울을 글썽였다. 다행히 극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이휘의 곁에는 정지운이 있었고 "이제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안심시키는 말에 이휘는 안도하며 비로소 그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한기재의 죽음으로 반란은 무산되고, 그의 시신을 바라보던 대비는 "궐밖으로 모셔라. 장례는 치르지말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며 차갑게 지시한다. 대비는 이휘를 만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 조용히 살아가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휘는 자신때문에 죄없는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받을 것을 걱정하여 대비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기꺼이 처벌을 받겠다고 결심한다.
 
공석이 된 왕위는 이현이 물려받게 된다. 이휘는 여인의 몸으로 성별을 속이고 왕위까지 오른 죄로 무릎을 꿇고 처벌을 기다린다. 대신 신영수(박원상)는 "남녀가 유별하다는 성리학 이념에 맞추어보면 이번 일은 용서받지 못할 중죄가 맞다. 하지만 선왕(이휘)께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자로 키워지고 왕위에 올랐다. 선왕은 역대 어느 선왕 이상으로 선정을 베풀기 위하여 노력을 다하셨다. 그런데도 어찌 교리와 이념의 잣대로만 벌할 수 있겠는가"라며 선처를 호소하고, 조정 대신들도 모두 동참한다.
 
이현은 이휘에게 팽형(미지근한 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부터 죽은 사람 취급받는 명예형)을 내린다. 앞서 정지운은 이미 대비와 이현을 먼저 만나 팽형의 벌을 제안했다. 정지운은 "이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래 전 돌아가셨으니 팽형의 벌을 내려 지금껏 살아온 행적을 지우고, 궁녀였던 소녀 담이는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이휘는 이담으로 본인의 신원과 성별을 회복했고 다시 정지운과 재회한다.
 
후일담이 그려졌다. 김가온은 이현을 지키는 내금위장이 되었고 방질금(장세현)의 동생인 방영지(이수민)와 호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중전 노하경(정채연)은 폐서인을 자처하여 궁궐밖으로 나와 자유로운 삶을 되찾는다. 김상궁과 홍내관(고규필)은 여전히 궁에 남아 이현을 가까이서 보필하고 있었다. 이현은 이담과 정지운의 소식을 그리워한다.

정지운은 이담과 혼인을 올리고 부부가 되어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함께 바닷가를 찾은 정지운은 이담이 갖고 싶다고 말했던 비녀를 선물했다. 두 사람은 입맞춤을 나누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담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아주 길고 무섭고 아름다운 꿈"이라고 고백하고, 정지운은 "앞으로는 무섭지 않고 아름다운 꿈만 꾸실 것이다. 제가 늘 곁에 있을 것이니까"라고 약속한다.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거니는 두 사람 앞에 이현과 김상궁-홍내관-김가온이 찾아와 모두가 행복하게 조우하는 모습을 끝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KBS 2TV <연모>의 한 장면

KBS 2TV <연모>의 한 장면 ⓒ KBS

 
<연모>는 쌍둥이로 태어나 여아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졌던 아이가 오라비 세손의 죽음으로 남장을 통해 세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궁중 로맨스를 표방했다. 이소영 작가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했으며 박은빈, 로운, 남윤수, 배윤경, 정채연 등 젊고 매력적인 청춘 스타 배우들의 호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는 방영내내 꾸준히 월화드라마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켰고(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마지막회는 12.1%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원작은 핵심 주인공들을 제외하면 실존 인물들도 다수 등장하고 어느 정도 실제 역사와 사건을 연상시키는 배경이었다면, 드라마는 남주인공의 설정을 비롯하여 많은 부분들이 오리지널로 각색되며 가상 역사물로서의 성격이 더 강화됐다. 남장여인이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국내 로맨스 사극에서 익숙한 편이지만, <연모>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남녀차별이 극심했던 가부장적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서 여인이 신분을 감추고 왕위에까지 오른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 이휘/이담은 권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쌍둥이 오빠와 엄마를 잃고 억지로 세자가 되어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기구한 운명에 좌절하지 않는 꿋꿋하고 주체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인물로 묘사됐다. 이휘는 남장여인이라는 설정을 넘어 실제로도 사건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오히려 남주인 정지운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내는 모습은, 로맨스 사극에서 '백마탄 왕자'과 '히로인'의 포지션이 뒤바뀐 구도다. 주인공 이휘 역의 박은빈은 사실 작은 체구와 여성스러운 외모 때문에 중성적인 매력이 요구되던 이휘의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오직 연기력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연모>는 가상 역사물이라는 특성을 활용하여 일반적인 사극에서 따라붙기 쉬운 고증과 현실성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는 한편, 자유로운 상상력과 현대적인 감성이라는 장점을 극대화시켰다. 사실 쌍둥이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왕의 핏줄이 죽음의 위기에 몰린다거나, 궁궐에서 여인이 신분을 감추고 수십년간 남자 노릇을 한다는 설정, 왕권을 노골적으로 농락하고 막나가는 권신들, 중국 사신을 구타하는 왕세자나, 이휘가 이담으로 신분을 회복하는 과정 등 <연모>가 아무리 퓨전 사극임을 고려해도 시대상에 대한 이해나 개연성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무리수 설정들이 많았다.
 
하지만 <연모>는 결국 비극적 운명에 맞서는 이휘와 정지운의 모습을 통하여 억압된 기성질서에 맞서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려낸 판타지물에 가깝다. 한기재-정석조-혜종 등으로 대표되는 어른들이 명분으로 포장된 기득권과 구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주변을 희생시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작은 행복과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함께 투쟁한다.
 
오히려 현대극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은유나 사회적 금기, 감정선까지도 판타지화된 세계관 내에서 자유롭게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은 최근 로맨스 사극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암행어사> <연모>의 연이은 성공으로 젊은 사극의 흥행 불패을 증명한 KBS는 20일부터 후속작으로 또다른 사극인 유승호, 혜리 주연의 <꽃 피면 달 생각하고>를 방송할 예정이다.
연모 박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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