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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이겨내고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과 다시 급증하는 감염자, 사망자 수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지금보다 더 오랫동안 마스크를 쓰게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드는 요즘이다.

코로나19 특별방역대책 후속 조치가 발표된 그 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뉴스를 바라보다 마음만이라도 평정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에 TV를 껐다. 그리고 코로나가 없던 시절을 그린 노래, 책, 영화를 찾아봤다. 대단한 건 없었지만 코로나가 없었기에 대단했던 '보통의 날'을 감상해보자.
 
그때는 알지 못 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은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가수 이적이 2020년에 발표한 '당연한 것들'이라는 가사 중 일부다. 거리를 걷고 친구를 만나고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그런 당연한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마치 형벌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사람의 온도가 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이 노래는 이적의 담담한 목소리로 들어도 좋지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아역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로 들어보길 추천한다. 사람의 눈시울이 얼마나 뜨거워질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적 노래 당연한 것들의 가사. 사진은 jtbc 화면 캡쳐
 이적 노래 당연한 것들의 가사. 사진은 jtbc 화면 캡쳐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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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감동을 이어줄 영화가 한 편 있다. <춘희막이>로 데뷔해 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박혁지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행복의 속도>다. 제목에서 이미 뭔가를 감지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가 담는 행복의 속도는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느린 속도다.
  
영화 행복의 속도 포스터
 영화 행복의 속도 포스터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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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해발 1,500m의 일본 국립공원 오제에서 70~100kg의 짐을 지고 걸어서 산장까지 운반하는 두 사람(일본에서는 이들을 봇카라고 부른다)의 일상을 그린다.

오제의 압도적인 광경에서 영화는 시작해 상영 내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작은 동식물을 보여주는데, 그것만으로도 심신이 마음껏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한편 그 속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의 봇카 이가라시와 이시타카가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짐을 어깨에 메고,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순례자의 모습처럼 보인다. 물론 그들에게 이런 노동이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밥벌이 수단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아닐 수 있다.
  
영화 행복의 속도 스틸컷
 영화 행복의 속도 스틸컷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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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들이 봇카로서 일하지 않을 때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사진기를 들고 틈틈이 풍경 사진을 담고, 다른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 어린 목소리를 부모들에게 듣는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기묘하게도 특별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일상일 뿐인데... '그 보통의 것을 누리는 게 왜 이리도 어렵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마지막 작품은 일러스트레이터 반지수의 그림 에세이 <보통의 것이 좋아>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화풍과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반지수 작가가 작정하고 그려낸 '보통의 날들'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동네 뒷골목, 상점, 어디선가 본 듯한 공원, 한 번쯤 가봤음직한 동네 시장 그리고 그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뒹굴고 있는 고양이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잡아냈다.
 
반지수 <보통의 것이 좋아> 160p
 반지수 <보통의 것이 좋아> 160p
ⓒ 반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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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 같은 장면은 내가 살았던 곳에서 30분 정도 걸었을 때 발견한 풍경이다. 넓은 아파트 단지가 나오더니, 갑자기 작은 천이 나왔다.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모여 운동을 하고 있었고, 빨간 지붕의 오래된 집과 나무가 천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어떤 골목 안에는 오목조목한 카페 두어 개와 귀여운 술집도 있었다. 남산이나 낙산공원, 성북동, 동대문구 도서관을 다닐 때의 느낌이 나서 너무 반갑게 느껴졌다. 그래, 나는 이렇게 서울 구석을 걸어 다니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오늘도 공짜 여행을 했다.
 
행복은 실체는 언제나 보통에 있다. 나만의 보폭으로 나만의 속도로 일상을 걸으며 작고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코로나 덕분에 알게 된 유일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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