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사진 : 정민구 기자)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사진 :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 유일의 장애인 고등교육을 위한 인권 시민단체인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를 설립한 김형수 사무총장은 지난 20여 년간 장애인 고등교육권 운동에 앞장서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올 6월 은평구 구산동으로 이사를 와 은평구민이 된 김 총장은 앞으로 지역에서 일상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김형수 총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장애인 인권운동의 '인싸'라고 들었다. 
"대학 때부터 남들이 안 하는 새로운 걸 좀 많이 했다. 1990년대 중반은 한창 여성운동, 페미니즘운동, 환경운동, 동성애운동 등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때였다. 그런 새로운 운동을 따라 기존의 장애인운동에서 보이지 않던 걸 새롭게 하니 사람들이 보기에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 같다."

학교 바꾸기 위해 도서관에 휠체어 매달아

- 기존에 하지 않던 새로운 거란 뭘 의미하는 건지?
"저의 존재 자체가 새로웠다(웃음). 저는 1995년에 생긴 장애인특별전형제도에 따라 대학에 입학했다. 제가 들어갈 때 22명의 장애학생이 입학하면서 학교에 장애인 대학생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학교 좀 바꿔보자, 장애인도 같이 수업받게 해 달라며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그 때 도서관에 못 들어가니 이걸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는 뭘까 고민하다 우리도 도서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중앙도서관에 휠체어를 매달았다. 이념적 논쟁도 아니고 우리에겐 당장 필요한 일이어서 효과적으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새로운 모습이 많이 나온 듯하다."

- 게르니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고 들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 제목이다. 동아리 이름을 뭐로 지을까 고민하는데 후배가 지나가면서 '게르니카는 어때?'라고 말했다. 보통 장애인 운동은 사랑, 봉사 뭐 이런 거 얘기하는데 우리는 그런 거보다 한번 들으면 안 잊어버리는 이름을 택했다."

- 게르니카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1996년 한총련 사태가 있었는데 그때 교문이 다 뜯겨져 나갔다. 우리가 학교에 경사로를 지어달라고 3년 동안 요구했는데 안 해줘서 '저 교문 다시 만드는데 1년은 걸리겠구나' 했는데 2주 만에 만들어지더라. 이건 뭐지? 하면서 많이 싸웠다.

학교에서 최초로 경사로가 만들어진 게 교수식당이었다. 장애인들은 식판 들기도 어려운데 학교에서 교수식당만 서빙을 해주는 곳이어서 여기부터 만들자고 나섰다. 그리고 우리도 휠체어 타고 기도하고 싶다고 요구해서 교회에 경사로가 생기고 도서관은 마지막에 생겼다. 

학교와 가장 많이 싸웠던 부분은 학교가 시설 설치에 돈이 많이 든다가 아니라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를 들어서다. 학교가 이쁘고 으리으리한데 거기에 경사로가 생기는 게 미관을 해친다고 하니 학교의 그런 논리를 깨기 위해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우리가 불쌍해서 입학시켜준 게 아니지 않나? 우리도 당당히 입학했고 등록금 내고 다녔다. 그때 학교에서 장학금 등으로 회유를 많이 했지만, 우리는 학교 장학금 받으면 이런 활동은 자유롭게 못한다, 끝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에게 장학금은 큰 거였는데 그거 받으면 입 닫아야 하니까. 그래서 다른 장애인친구한테 욕도 많이 먹었다. 우리는 장학금 대신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 치열한 고민과 활동으로 장애인 인권운동을 벌여나가다 보면 에피소드도 많았을 거 같다. 
"당시 학생운동은 통일운동, 노동운동이 주류였는데 갑자기 장애학생들이 나와서 수업받고 싶어요, 화장실 가고 싶어요 하니 좀 신선했던 거 같다. 그 때 선배들에게 노동해방이 되면 장애해방이 될  거야, 통일되면 장애해방이 될 거야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것도 좋지만 당장 나는 수업을 못 들어가는데, 화장실을 못 가는데 그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때 선배들이 우리가 계속 장애인 문제를 얘기하면서 계단에서 구르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기본적인 인권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각을 많이 했던 거 같다. 

그때 우리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건 동성애 운동이었다. 학교에서 동성애 문제를 두고 중앙도서관 앞에 게이형들이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였다. 우리도 장애인 문제로 농성하고 싶다고 찾아가니 '장애인 문제랑 동성애 문제랑 별 차이 없고 단어만 바꾸면 된다, 우리 철수하니까 그대로 사용하라'는 말하고 우리가 농성할 수 있게 도와줬다.

왜 우리 문제에 관심 갖지? 저들은 차별과 혐오를 받으면서도 다른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네, 비장애인들이 우리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는 모습을 보며 각성이 많이 됐다. 

또 다른 일화는 제가 다닌 문과대학에서도 '과방을 달라, 동아리방을 달라'며 공간투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당시 학생회장이 찾아와서 어떤 게 힘든지 물어보길래 경사로가 없다,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얘기했다. 학생회장 누나가 그다음 날부터 장애학생을 위한 경사로를 만들어 달라며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갑자기 왜? 나도 굳이 저렇게까지 싸우지는 않는데 왜 그럴까 하며 충격에 빠졌다. 

우리의 존재도 운동계에 충격이었고 당시 운동하는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반성을 하고 행동을 했다. 장애인 친구들도 관심을 안 갖는데 비장애인 친구들이 관심을 갖고 우리보다 더 열심히 싸우네, 왜 저럴까 하는 고민이 뭉글뭉글 시작되고 게르니카가 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이어졌다."

- 치열한 장애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뭐라고 보는지?
"1990년 중반 운동계에 장애인 운동이 뭐지? 고등교육 운동, 대학 엘리트 물을 먹은 장애인들이 어떻게 활동해야 하지? 치열한 고민이 있었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중간허리 즉 젊은 세대를 공급해주고 재생산했다.

대학 내에서는 장애인특별전형 이후에 장애인 접근권 문제라던가 교권 문제를 얘기했다. 어쨌든 우리를 중심으로 전국의 대학생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다른 시설들이나 장애인 이동권이나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지금은 젊은 친구들이 운동에 관심을 많이 안 가지는데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재밌는 세미나, 캠프를 하고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시대에 맞춰 새로운 걸 만들었던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그때 활동했던 분들이 지금은 색깔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지만 다들 장애운동계에서 활동하며 큰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게 제일 큰 보람이다."

- 굉장히 발랄한 운동을 했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다. 개량화되었다, 너희 정체가 뭐냐, 회색분자냐. 근데 대학 들어왔는데, 휠체어 탔는데, 수업도 못 들어가는데 그럼 어떻게 할 거냐 고민이 많았다."

"건강한 시민운동 위해 자본으로부터 독립"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사진 : 정민구 기자)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사진 :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관련사진보기

 
- 졸업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대학 들어오면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얼마나 싸웠나. 근데 이걸 외면하고 그대로 시민, 어른의 세계로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민단체를 만들어보기로 하고 장애인 접근권 운동을 하는 전문적인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대학생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때 일본 사례를 보게 되었는데 일본은 의외로 장애학생들 차별이 심해서 학교를 골라서 가야하고 이를 위해 초6부터 준비하는데 일본에는 그걸 함께 준비해주는 단체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후배들을 지원해주는 단체를 하나 만들기로 하고 제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거대한 사무국은 두지 않고 플래시몹이나 네트워크 중심의 활동을 하자, 순수하게 NPO(비영리민간단체)활동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봤다. 국가지원금 일체 안 받고 회비로만 운영하는 NPO, 활동하고 상근자는 저 하나지만 함께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떤 친구가 어느 대학을 가고 싶은데 정보가 없으면 기존에 대학에 간 선배들과 네트워킹시켜주고 은평구 구산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싸워야 하면 우리 언제 뭐 할 거니까 모이자 이렇게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의장을 만들고 국장을 만들고 사무국을 세우면 그 유지비가 더 든다."

- 시민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을 거 같다. 
"많은 활동가가 정치권에 들어가서 이상하게 변하는 것도 봤고 심지어 시민단체 활동했던 큰 어른들이 몰락하는 것도 봤다. 그래서 이건 권력의 속성인가? 권력을 안 가지면 시민운동이 건강해지나? 이런 판단을 하고 권력을 안 갖고 탐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권력하고 거리를 좀 둬야겠다. 재밌고 건강하고 알차게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가난하게 살긴 한다(웃음)."

중요한 건 장애든 아니든 모든 사람에겐 인권이 있다
 
세상을바꾸는 시간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형수 총장 (유튜브 화면 갈무리)
 세상을바꾸는 시간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형수 총장 (유튜브 화면 갈무리)
ⓒ 은평시민신문

관련사진보기

 
- 세상을 바꾸는 시간(세바시) 강의에서 교장 선생님하고 밥 먹었다는 얘기, 돈까스 먹고 싶은데 교장 선생님이 자꾸 두릅나물만 가져오신다고 얘기한 게 재밌었다. 
"관계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장애인이어서 뭐가 힘드냐고 물어본다. 모든 대학생이 편하게 학교 다니는 거보다 취업 잘되는 거 바란다. 장애인 대학생들이 뭐가 힘드냐고 물으면 우리도 취업이 힘들다, 연애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장애든 아니든 모든 사람은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추구하는 것도 인권인데 우리는 장애 자체가 힘든 거라고 선정을 하고 문제에 대해서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나는 친구들하고 같이 학교 가고 싶고 손잡고 커피숍 가고 싶어서 편의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거지 단지 내가 편하고 싶어서 만들어 달라고 한 게 아니다. 

초등학교 갈 때 하도 입학 거부를 많이 당해서 학교에 전화해서 물어봤다. 장애인도 괜찮나요? 그때 전화 받은 선생님이 왜 그런 걸 물어요? 학교는 학생을 골라서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말 한마디면 된다. 계단에서 구르든 다치든 학교가 나를 학생으로 봐주는구나 이게 중요한 거다."

- 장애인을 만나면 뭘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인권은 그런 게 아니다. 존중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나와 같은 걸 누릴 수 있는 사람이구나. 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구나 인정하는 거다. 학교에서 넘어지든 다치든 누구랑 밥 먹고 싶을까? 친구랑 밥 먹고 싶다. 그것만 열리면 교육권 문제는 다 풀린다. 그런데 자꾸 경사로, 시설을 만들어주는 것만 생각하면 복잡해진다. 

중요한 거는 장애는 불행한 것, 나쁜 것이라는 의미를 재생산하는 거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재밌고 즐거운 거를 자꾸 얘기해주려고 한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보면 재미있어. 신경 쓸 건 많지만. 이런 메시지를 자꾸 주고 싶은 거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장애아들과 함께 공부하는 게 필요한 거다. 장애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차별받았고 불행했다는 게 경험적으로 남아있고 생물학적으로 봐도 아 난 저렇게 되기 싫다는 오랜 생물학적인 본능도 작동하고 있다. 특히 중증장애인을 만나면 더 그렇다. 

그 생물학적 본능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쌓여온 차별의 경험과 불행의 경험과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이기려면 뭐가 필요할까? 많이 만나보고 좋은 장애도 경험해야 한다. 장애도 불행한 게 아니라 좋은 점도 있구나 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가 그 경험을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됐다. 

지역주민들이 장애아를 보면 우리 힘 모아서 잘 키워보자, 내가 잘 도와줄게 할까? 아니면 아이고 우짜노 할까? 우리가 지향할 거는 우리 힘 모아서 잘 키워보자 할 때까지, 그 대사를 말할 때까지 노력하는 거다. 물론 힘들다. 그러려면 많은 에너지가 쌓여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좋은 에너지를 쌓기 시작한 역사가 짧다.

1990년대 후반부터 특수학급에서 장애인친구들 만나고 있고 장애인 교사를 만나고 있고 또는 지역주민으로 만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조금씩 그 에너지가 쌓여가고 있다. 

또 중요한 건 중도에 장애를 입은 분들이나 질병에 의해 장애를 입은 분들에게 장애가 좋더라, 이런 식의 말은 조심해야 한다. 비장애인으로 살아봤기에 비장애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도 강하고 장애를 언제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연습과 고민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그래도 인간관계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상처받았으면 풀면 되지. 그거 상처라고 얘기해줘야 알지. 이런 편안한 것들이 필요하다."

- 장애는 체험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기고글을 읽었다. 어떤 문제의식인지?
"장애인 체험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잘 세팅하는 게 중요하다. 체험이 주는 교육적 효과는 분명히 있다. 장애인 체험을 해서 장애인들이 차별받는구나 개선해 나가야겠다고 하면 좋은데 잘못 체험하면 '저를 비장애인으로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가 될 수 있다.

장애인 체험 설계가 잘 되려면 정말로 차별을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는 차별 현장체험을 하던지, 시간을 늘리던지, 생활연장 체험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휠체어 타고 통장 만들어오기, 쇼핑몰 가서 친구들하고 맛있는 햄버거 사 먹고 오기를 체험 과제로 내주면 어떨까? 그러면 여기 경사로가 없어요, 뭐가 없어요 하며 진짜 실감할 수 있을 거다. 

장애인 체험을 통해 목발을 짚으려면 저렇게 숙련되어야 하구나, 아 저분은 목발의 달인이네하며 경험치를 인정해주게 되고 장애인 체험하면서 장애인 친구하고 연애해 봐도 되겠네, 고용해 봐도 되겠네 이런 걸로 가면 좋은 거 아닐까 한다." 

- 세바시 강의에서 이야기한 후크선장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후크선장이 한 번도 장애인이라고 생각 안 해봤다. 
"그게 문학의 힘이고 콘텐츠의 힘이다. 다스베이더도 장애라고 생각 안 한다. 근데 중증중복장애다. 호흡기 장애, 언어 장애에 팔다리도 없지만 포스가 있다. 왜 미국은 그런 콘텐츠를 만들까? 장애인 캐릭터를 꼭 등장시킨다. 여성영화 찍을 때는 여성들이 수동적으로 그리지 마라 주인공으로 만들어 달라 계속 얘기한다.

미국은 그쪽으로 가고 있는 거다. 장애인도 똑같이 그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씨알도 안 먹히고 있다. 이제 방구대장 뿡뿡이에 장애인 캐릭터 조금 나오고 뽀로로에 장애인 크롱이 등장하고 있다." 

"좋은 동네아저씨가 되고 싶다"

- 은평은 서울에서 장애인 인구가 많은 지역인데 걸 낙인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장애인이 많다는 걸 행정전문가들은 일종의 낙인으로 받아들인다. 은평에 은평천사원이 있고 서울재활병원이 있는 게 우리의 자원이 아니라 개발을 막는 낙인이라고 인식하는 분들이 많다.

그걸 우리 시민사회가 어떻게 좋은 것으로 바꿔낼 것인지 하는 게 과제고 앞으로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이제 정치권이나 행정에서도 장애 인구를 무시할 수 없다. 장애인 연금을 받고 소비를 한다.

지금은 장애인 복지가 행정서비스지만 한 5년 뒤면 또 바뀔 수 있다. 서울재활병원은 앞으로 장애인 분들을 끌어당기고 은평구의 아주 비싼 자산이 될 거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쓰는 소비가 얼마나 될까? 은평대영학교의 부모님들이 쇼핑하는 비용이 얼마일까? 장애인 인프라가 소비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될 거고 그게 인지되는 순간 은평구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

- 올해 은평 주민이 되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저희 정체성으로 대학생, 장애인 전체 교육권 이런 운동을 했다면 이제는 지역사회 중심의 풀뿌리 운동을 하고 싶다. 우리 동네, 우리 학교, 우리 관내 풀뿌리 운동에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우리 동네 커피숍은, 은평 한옥마을은 어떤가, 북한산에 무장애 탐방로를 만들었는데 괜찮을지 살펴보려고 한다. 

아이들이 뛰어와서 '아저씨, 이 전동휠체어 얼마에요?' 물어본다. 얼마라고 말하면 '태워줄 수 있어요?' 한다. 그러면 '타'라고 말해준다. 이렇게 아이들 태워주면서 지역의 좋은 동네아저씨가 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김형수, #장애인, #장애인인권운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은평시민신문은 은평의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풀뿌리 지역언론입니다. 시민의 알권리와 지역의 정론지라는 본연의 언론사명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로 진실을 추구하며 참다운 지방자치와 풀뿌리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