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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40대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세상에는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일터에서 돌아왔을 때 편안히 쉬고, 배를 채우고, 깨끗한 옷을 걸치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노동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그들의 엄마나 아내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 책>을 보면 '아주 중요한 일'을 하러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나선 뒤, 여성들은 청소와 설거지, 세탁과 요리를 하며 이 세상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현실 속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주부들이 '나'를 뒷전으로 미뤄두고 일을 내려놓는다. 일하는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이 가족과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기를 잃어간다. 하지만 <돼지 책>의 피곳 부인처럼 자신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 여성들도 있다.

부산 광안리(남천동)에 그림책 책방 겸 복합문화공간을 창업한 강나영 대표(45)도 그 중 하나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마흔 이후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금, 오랜 세월 꿈을 키워 현실로 만든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 만남을 청했다. 

강 대표는 14세, 5세 아들과 딸을 키우는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꾸준히 자신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틈틈이 찾아오는 배움에 대한 갈증, 일에 대한 욕구를 채워나갔다.

그 경험을 살려 그림책과 다양한 배움 및 문화교류가 가능한 공간 '티티새와 나무'를 열었다. '티티새와 나무'는 나무와 새처럼 서로 도우며 풍요로운 숲 같은 공생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강 대표가 붙인 이름이다.

결혼과 출산... 15년 만에 만든 내 명함
 
서가 정리 중인 강나영 대표
▲ 티티새와 나무 서가 정리 중인 강나영 대표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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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하고 일을 그만 두셨다고 하셨죠? 언제부터 책방을 꿈꾸셨어요? 

"첫째 다섯 살 무렵 <숲 속 작은 책방> 북토크가 계기가 되었으니 꽤 오래 되었네요. 책방을 열면서 뿌듯하면서 울컥했어요. 일을 다시 시작한 게 거의 15년만이에요. 명함을 디자인 하면서 감회가 새로웠어요."

- 15년... 긴 시간이네요. 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답답하거나 힘들지 않으셨어요?

"직장과 거리도 멀고 임신도 되지 않아 결혼 3년 후 일을 그만 두었지요. 많이 기다린 아이고 어린 시절 일하는 엄마의 부재에 대한 목마름도 있어서 내 아이만큼은 직접 키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이만 키우다 보니까 제게 있던 일과 배움에 대한 욕구가 올라오더라고요. 답답했죠."

- 그런 답답함을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중간에 다시 일에 도전하시기도 했나요?

"아이 교육과 제 관심사의 교집합에서 새로운 걸 찾으면서 극복했던 것 같아요. 다시 2년제 대학 유아영어지도과에 진학했어요. 결혼 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재취업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또 배운 것을 우리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일을 시도할 때마다 임신과 유산이 반복되었어요. 첫째 3학년 되던 해, 일할 기회가 왔는데 둘째가 생겼어요. 또 잘못 될까 두려운 마음, 우울감이 찾아 와서 많이 힘들었어요. 겨우 마음을 다잡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그림책을 펼쳤는데 그 책이 저를 위로하는 거예요. 그때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이렇게 서점까지 열게 되었네요."

- 아무리 육아와 관련 있는 활동이라고 해도 가정주부의 배움은 '남편이 고생해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취미 생활한다'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그럼에도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을까요?

"주변에서 다들 취미라고 여겼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언젠가 나의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놓지 않고 아이들 교육과 관련해서 일관된 방향으로 제 관심사를 이어왔어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실질적으로 생계를 책임지셨거든요.

저도 어렸을 때 엄마가 바쁜데 취미 생활까지 하시는 모습을 보고 서운했던 걸로 기억해요. 제가 결혼해보니 일을 하면서 살림, 육아를 동시에 모두 잘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취미 생활이 '쉼'이자 '숨구멍'이었던 것도 알게 되었지요. 저도 제 미래를 꿈꾼 시간이 힘을 얻는 숨구멍이었거든요."

- 당장 성과도 없는 배움을 계속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이들에 대한 애정,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관련된 책들을 꾸준히 읽고 강의를 듣고 남편과 생각을 공유했어요. 제 자신과 꾸려가고 싶은 미래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하나씩 배워 왔네요."

- 남편이 대표님의 활동을 많이 이해해 주었나요?

"야근이 잦아서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거나 한 적은 없지만 오랜 시간 엄마와 아내라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한 만큼 남편도 제게 늘 귀를 기울여 주었고 큰 힘이 되었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이 아니다보니 책방을 하고 싶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는데 '그간 잘해 왔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 보라' 말해주어서 큰 고민 없이 시작할 수 있었어요."

당장의 결과보다는... 자신만의 속도와 기준으로
 
최근 오픈한 그림책 서점 겸 문화복합공간 티티새와 나무
▲ 티티새와 나무 최근 오픈한 그림책 서점 겸 문화복합공간 티티새와 나무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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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이 말하는 옳은 것, 주어진 것 말고 제가 좋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배웠던 것이 결국 지금의 일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스스로 주체가 되어 상상한 것들을 마음껏 실현해 볼 수 있는 놀이가 저에게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주부들이 자신의 꿈을 찾는데 가장 중요하게 따져볼 게 뭘까요?

"조화와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기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둘째 때는 체력적으로도 상황적으로도 힘들어서 도움을 요청하고 짧게나마 제 시간을 만들었어요. 그렇게라도 나만의 숨구멍을 확보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일이 당장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요."

- 아직 둘째는 어려서 손이 많이 갈 때 아닌가요?

"맞아요. 지금은 책방이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서 큰 무리는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 일이 더 늘어나면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지요. 여태껏 해왔듯 아이들을 우선으로 하되 일과 균형을 맞추고 싶어요.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딸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좋겠어요."

- 앞으로 어떻게 책방을 꾸려나가실 계획인가요?

"오픈 후 가장 먼저 어머니의 천연염색 작품을 한데 모아 전시회를 열어드렸고 작품 중 일부를 판매하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었고 어머니도 기뻐하셨지요. 그 전시를 본 고객이 대관 여부를 물어보시더라고요. 사진이나 그림, 북클럽 등 일반인들의 취미 활동과 관련된 전시나 공간 대여의 수요가 있어서 공간도 제공하고 판매도 해 보려고 해요. 또 그동안 제가 배웠던 선생님들과의 인연을 매개로 취미나 일을 찾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다양한 배움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작은책방지원사업과 연계해 강연이나 그림책 테라피 프로그램도 진행하려고요."

-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 중인 저 같은 엄마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는 자주 딴생각을 해요. 그런 생각들이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주고, 흔들림없이 나를 지키고, 꿈꾸는 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도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어린 시절 나는 어땠나?'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을 던져보세요. 우리 세대가 부모님 말씀, 학교 성적 맞춰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해 온 편이잖아요.

하지만 내 안의 소리를 따라 작은 시작이라도 하게 되면 삶의 질이 달라지더라고요. 이 작은 시작이 언젠가 특별한 것으로 자라날 수 있는 씨앗이 될 거라 생각해요.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는 꿈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당장 결과가 안 보여도 조급해 하지 마시고 자신만의 속도와 기준으로 천천히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배웅하고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은 나의 꿈을 생각했다. 결혼 후 18년간 육아와 살림 사이에서 일관되게 뿌려온 그녀만의 씨앗이 책방이라는 아름다운 나무가 되었듯, 나도 이제 막 품기 시작한 내 씨앗에 꾸준히 물을 주고 볕을 쬐어주기로 했다.

엄마와 아내, 직장인의 역할 속에서 표류하지 않고 조급해 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 방향성에 집중하며 매일 새벽 꾸준히 한 문장을 써 나가기로 마음 먹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s://m.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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