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80대 엄마와 산 지 4년, 서로 늙어감을 이해하게 된 엄마와 딸의 이야기. 그리고 비혼인 50대 여성의 노년 준비를 씁니다.[기자말]
"복날인데 뭐라도 사드려야지."

지난 여름 복날, 엄마는 나에게 순댓국을 주문해달라 하셨다. 경비아저씨들을 위해 엄마가 내는 한턱이다. 옛날 사람인 엄마는 음식 나눠 먹는 걸 좋아하신다.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엄마의 음식 솜씨로 말할 것 같으면 잔칫집에 불려다닐 정도였다. 특히 가장 맛있었던 건 김치.

젊을 땐 김치도 잘 담가서 이웃들에게 나눠주시곤 했는데 일흔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많이 줄었다. 그래도 엄마가 음식 나눔을 빼먹지 않는 곳이 바로 아파트 경비실이다. 추석이나 설날 명절 그리고 몸보신이 필요한 날, 엄마는 꼭 식사를 준비하셨다.

집에서 한 음식을 상에 차려서 내다 드리곤 했는데, 배달 담당이던 난 솔직히 매년 치르는 이 일들이 조금 성가셨다. 나의 궁시렁거림에도 이어지던 음식 대접이 배달음식으로 바뀐 건 몇 년 전부터다. 명절을 집에서 보내지 않고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기회가 줄어들기도 했고, 2~3년 전 여름 내가 너무 덥다고 하소연을 해서 타협안을 제시한 게 배달이었다.

나이 들어도 쓸모 있고 싶은 엄마
 
엄마표 동치미는 그야말로 옛날 맛. 시원하고 새콤달콤해서 한번 먹어본 사람은 꼭 다시 먹고 싶어 한다.
 엄마표 동치미는 그야말로 옛날 맛. 시원하고 새콤달콤해서 한번 먹어본 사람은 꼭 다시 먹고 싶어 한다.
ⓒ 고정미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올해 복날 메뉴는 순댓국이었다. 아저씨들께 한 그릇씩 대접한 엄마는 자신 앞으로 배달 온 순댓국은 한 그릇 다 드시지도 못하고 낮잠을 주무셨다. 자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또 마음이 일렁거렸다. 저렇게 사람들 좋아하고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 엄마가 이제 만날 수 있는 친구도 별로 없고,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니 그 마음이 어떠실까.

지금은 김치도 사서 먹는다. 끼니를 밀키트로 해결하기도 하고, 집 근처에 있는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서 먹는 날도 많다. 다 맛이 좋기도 하고, 매끼를 해서 먹는 게 이제는 버거워진 탓이다. 그래도 엄마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는 게 동치미다.

엄마표 동치미는 그야말로 옛날 맛. 시원하고 새콤달콤해서 한번 먹어본 사람은 꼭 다시 먹고 싶어 한다. 아래층 사는 아주머니는 남편이 너무 좋아한다면서 동치미 담글 무를 사오며 부탁하기도 했다. 근처에 사는 친한 언니에게도 한번 줬더니 엄마 생각 나는 맛이라고 하면서 고마워했다. 그 말을 엄마에게 전해주자 엄마는 그 칭찬이 좋았던지 동치미를 담그면 그 언니 것을 챙기곤 한다.

엄마의 맛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나도 뿌듯하다. 그러나 엄마가 동치미 담그는 걸 옆에서 보면 그리 달갑지 않다. 무를 써는 것조차 위태로워 보여서 내가 도와드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 말라고 해도 엄마는 내 눈치를 보며 동치미를 담그곤 한다. 그렇게 동치미를 담그고 나면 살짝 앓으시는데도 말이다.

힘에 부치는데도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게 엄마에게는 사는 재미, 또 엄마가 아직은 쓸모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받는 기쁨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내가 더 강력하게 그만하시라고 말리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누군가에게 한 끼를 대접하는 데서 느끼는 엄마의 뿌듯함을 내가 자식이라고 함부로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내 존재를 인정받는 땅이 점점 줄어드는 것 아닐까.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녀인 오빠와 나, 그리고 엄마의 이웃, 친구들에게 엄마는 다정하고 사랑 많은 존재이지만, 점점 그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게 자신의 땅을 잃어가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면서도 엄마는 여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한다. 나는 엄마와 성격도 다르고, 그럴만한 오지랖이 없어서 엄마처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엄마를 보면서 산다는 건, 내 땅을 잘 지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무언가를 주고 받으며 상호작용할 수 있는 그런 땅 말이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할 수 있길

나이를 먹을수록 늙어가고 점점 아픈 곳이 늘어나는 몸 상태에 영 신경이 쓰인다. 그렇다고 내 몸 상태에 연연해하면서 소극적이 되긴 싫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팔십이 넘은 엄마를 보면, 또 오십이 넘은 현재 내 삶의 반경과 관계의 폭이 점점 줄어드는 걸 보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체감한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 갈 수 있는 곳,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만난다. 제한적이지만 엄마는 오늘도 엄마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고 계신다. 엄마를 보며 '내 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다. 인생에서 필요한 것을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얼마 전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대문 바깥쪽 문고리에 검은 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들여다 보니 생선 세 마리였다. 엄마에게 뭐냐고 물으니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주실 거란다. 친화력 좋은 엄마가 어느새 청소하시는 분과 친해져서 종종 생선이나 홍삼, 과일 같은 것을 나누고 계셨던 모양이다.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엄마의 땅'이 있어서 감사하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