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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우리반 아이들에게 <해리엇>의 10장 '마지막 인사'를 읽어준 날이었다. 생명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해리엇이 친구들 한 명 한 명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해리엇은 울음을 그치지 않는 친구에게 죽는다는 것은 꼭 슬픈 일만은 아니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내내 목이 멨다.

매일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은 후 주제를 정해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써보는 활동을 한다. 보통은 그날 읽은 책 내용과 관련하여 주제를 정하는데 이날은 죽음에 관한 내용이어서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다. 교실 안에서 '죽음'을 다루어도 될까?
 
교실 안에서 아이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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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생존을 위해 매일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좀처럼 줄지 않는 코로나 확진자, 사망자 수를 보며 마음을 졸인다. 죽음이 다른 어느 때보다 일상과 맞닿아 있는 삶이다.

또한 나는 올해 마흔이 되면서 주위 사람들의 부고를 부쩍 많이 들었다. 부고 소식이 잦아진 것을 보며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고 애도해야 할지 잘 몰라 헤맸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죽음을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국 우리 모두가 겪게 될 죽음이었다. 서울대에서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는 우리가 죽음을 배움으로써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주변을 돌이켜볼 수 있는 품격을 가질 수 있다고 강의의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교실에서 이야기 한 죽음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만약 해리엇처럼 하루 뒤에 죽게 된다면 너희는 무엇을 가장 하고 싶니?"

아이들은 책 속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그런지 크게 낯설어하지 않고 죽음의 상황을 상상했다. 죽음은 너무 무서워서 생각하기도 싫다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진지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가족들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말할 거예요."
"온 힘을 다해 놀 거예요."
"마지막이 될 꿈을 꿀 거예요."


아이들이 쓴 글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는 '가족'이었다.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는데 주로 산책하기, 맛있는 음식 먹기 등과 같은 작고 평범한 것들이 많았다.

또한 아이들은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했다. 점차 사춘기에 접어들며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들에 대한 불만이나 섭섭함을 평소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곧잘 털어놓곤 하던 아이들이었다. 이런 아이들이 마지막 날을 떠올리며 느낀 감정이 다름 아닌 '고마움'이라는 사실이 기특하고 뭉클했다.

실컷 놀고 싶다고 쓴 아이도 많았다. 바쁜 일정 속에 사는 요즘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고자 하는 욕구가 쌓여 있어 그것을 해소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는 것 같았다. 아이 중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꿀 것이라고 쓴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당장 내일 죽게 되어도 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 글을 읽으며 내가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가치는 무엇이고, 인간다움을 지키며 죽는 모습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을 읽고 주제 글쓰기를 할 때는 나도 아이들과 같이 써보며 생각을 나눈다. 내가 쓴 글도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일 죽게 된다면, 나는 아이와 나란히 누워 함께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것이다. 숲으로 산책을 가고, 공원에서 공놀이도 할 것이다. 밤에는 베란다에서 망원경으로 달과 목성을 찾아보고, 아이가 잠이 들면 그동안 아이가 썼던 글과 그림을 꺼내 밤새도록 보고 싶다."

나는 이 글을 쓰며 내 삶에서 소중한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도 모른 채 그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멈추어 돌아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늘 당장 이것들을 해야겠다고. 죽음을 잠시 상상해본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달라질 수 있었다.

죽음이 곁에 있다는 걸 알면
 
그림책 '나는 죽음이에요'의 한 장면.
 그림책 "나는 죽음이에요"의 한 장면.
ⓒ 마루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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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이후 죽음을 다룬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 <쨍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나는 죽음이에요> 등을 읽고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다. 다소 어려운 주제를 다룰 때는 그림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았다. 그림책은 아름다운 그림과 문학적인 글로 죽음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전해주었고, 아이들은 그동안 덮어두었던 죽음에 대한 자기 생각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죽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 천국으로 갈까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죽음은 우리와 늘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잖아요."
"만약 제가 죽으면 사람들이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속에 늘 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건 너무 무서워요."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죽음에 관한 생각이나 태도도 아이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했다. 나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도덕적인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내 솔직한 생각과 경험을 말해주었다.

"선생님도 죽음이 무섭고 두렵단다. 올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많이 슬프고 힘들었어. 그래도 죽음을 회피하지 않으려고 해. 죽음을 생각해야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어."

아이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 나눈 시간은 죽음이란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지도,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완전히 풀어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죽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주하고, 각자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함께 터놓고 이야기해본 것만으로 공감과 위로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죽음이 있기에 지금 현재가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알고 나다운 삶, 행복한 삶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해리엇 -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 이야기

한윤섭 (지은이), 서영아 (그림), 문학동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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