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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가 되면 인사팀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다 들었는지 확인하는 메일이 온다. 5대 법정 의무교육 중 하나인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남녀고용평등법 제13조에 근거해 연 1회 꼭 이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다 수강한 사람이 대다수지만 아직 완강하지 않은 분들은 부랴부랴 강의 사이트에 들어간다. 그리고 대개는 온라인 강의를 켜 두고 쌓인 업무를 처리한다. 업무가 바빠서이기도 하지만 은연중에 '성희롱 하면 안 되는 거 다 알지'라는 안일한 마음에 강의를 흘려듣는 거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 궁금하다. 지금 직장 내 분위기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될 수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회사에서 외모를 평가받는 여성 
 
성희롱을 검색하면...
 성희롱을 검색하면...
ⓒ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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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비해 '직장에서 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전에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오늘날 문제시 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과 MZ세대의 직장 유입에 따른 높아진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과 민감함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다 안다고 넘기는 우리의 안일한 태도 때문에 그 수준에 이르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아직도!) 변태 같은 사람이 있다며 말해주었다. 과장님 이야기였다. 그가 자주 "쟤가 OO 사번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 그렇지 않냐?"라고 동조를 구하거나, 신입 직원들 외모 순위를 매겨 "1번 온다", "4번 지나간다" 등으로 부르기도 해 이를 듣는 친구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토로했다.

사회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기대치를 넘어서는 이런 에피소드를 들으면 화가 난다. '나 역시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외모 순위로 불렸겠구나'라는 불쾌함까지 밀려왔다. 당사자가 들으면, 혹은 알게 된다면 어떤 심정일까.

친구는 이러한 문제를 윗선에서 인지하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때문에 과장이란 사람이 아직도 여전히 당당하게 그런 발언을 하는 게 싫고, 여자 동기들 스스로 그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하는 게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네이버에 '성희롱'을 검색하면 "이런 경우도 성희롱인가요?", "이것도 성희롱에 해당하나요?" 등의 질문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즉,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성희롱의 범주가 넓어지고 명확한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하며 칭찬과 성희롱의 경계에서 불편러가 되었던 적이 여러 번이다. "지난주보다 오늘이 덜 부어서 더 예쁘네", "너는 머리 묶은 게 더 예쁘다"와 같은 나노 단위의 외모 평가들.

칭찬인데 왜 기분이 나쁘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나의 외모가 회사에서 평가 대상인 것이 불편하다. 그리고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음으로써 나도 모르게 그런 분위기에 갇히는 느낌을 받는다. 소위 말하는 가스 라이팅. 이번 분위기에서는 계속 스스로를 검열하고 위축되는 효과가 있다.

물론 나도 "예쁘다"라는 감탄사를 남용하긴 하지만, 회사 같은 공적인 장소에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쓰진 않는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는 쓸 때도 있지만 회사 사람에게는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사물이나 비인격적인 대상에게만 쓰려고 노력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도 거슬린다. 같은 여자 동료가 외모 평가 대상에 올려지는 게, 여자라는 속성으로 같이 묶여 평가대에 올려지는 기분이다. 그럴 때면 속으로 '따님이 사회에 나가 외모로 평가 당하고 대상화 되는 걸 원하시나요?'라고 따져 묻고 싶다.

서로를 위해 기꺼이 프로불편러가 되어야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마다 성인지 감수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세대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나이가 많으신 분, 직급이 높으신 분 중에 이런 성희롱성 발언을 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아무래도 이와 관련하여 회사에서 교육을 하기도 하고, 회사 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은 언행을 조심하는 편이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시는 분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이런 무례하고 불쾌한 발언들을 자주 한다. 업무적으로 일 떠넘기기 등은 메신저로 상황 증거가 포착되지만, 이런 순간순간의 나오는 발언들은 항시 녹음을 하지 않으니 수집하기가 어렵다. 이러니 회사에서 매년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도 별로 개선되는 게 없다. 그래서 나는 프로불편러가 되어 계속 불편함을 표한다.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니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성별 문제로 보이는 많은 사회 문제, 젠더 문제가 사실상 권력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성희롱 당하는 남자 사원의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드물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성희롱은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개 직장에서 발생하는 성적인 문제는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사회에 분배된 권력 구조상 여자가 성희롱당하는 경우가 더 많을 뿐이다. 권력의 문제다. 여자만이 아닌, 남자도 그리고 누구라도 약자의 위치에 있을 때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 편, 여자 편이 아닌, 잘못된 행동에 대해 잘못됐다고 함께 말해주는 사회, 권력자의 잘못에 동조하지 않고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서로를 위해 기꺼이 프로불편러가 되어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믿습니다. 본인의 브런치에 실은 글로 다른 분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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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그렇게 피터팬 내지는 돈키호테를 닮은 낭만주의자가 되었다.그러나 네버랜드는 없다. 출근하는 피터팬으로 살며 책임감 있는 어른과 낭만주의자의 균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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