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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번 회는 애 말고 '나이듦'에 대한 고민을 담습니다.[편집자말]
"앞머리 안 자르시게요?"
"네, 기를 거예요."
"왜요, 어려 보이고 좋은데."
"...... 그렇긴 한데요... 너무 불편해서요..."


나보다 더 아쉬워하는 미용실 원장님 때문에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끝내 앞머리를 다듬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동안에 목숨 거는 여자가 아닙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허세같이 느껴져 관두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도 동안으로 보이는 것보다 편한 게 더 좋다. 편한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런 날이 내게 오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그런 날이 벼락처럼 내게 왔다.

예쁜 것보다 편한 걸 찾는 나이
 
불혹, 이보다 더 마흔이라는 나이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있을까.
 불혹, 이보다 더 마흔이라는 나이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있을까.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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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마디로 외모에 공 좀 들이는 여자였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옷을 구입할 때도 편한 것보다는 스타일이 좋은 예쁜 옷을 샀는데, 요즘은 쇼핑 철학이 바뀌어, 질이 좋고 편한 옷 한 벌에 자주 손이 간다. 그마저도 좁은 수납공간을 넉넉하게 사용하고자 옷의 개수도 늘리지 않는 중이다.

편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말이 자칫 게을러졌다는 의미로 들릴까 봐 노파심에 말해두자면, 게으름은 아니다. 다만 옷을 사더라도 자주 입을 옷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꼭 필요한 것인지 불필요한 것은 아닌지 체크해 보는 센스가 생겼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실용적이다.

단지 쇼핑이나 외모를 가꾸는 데 있어서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생활습관은 전반적으로 생활을 좀 더 단순하게 만들어주었다. 부작용이 있다면 관계에 대한 기름기도 쫙 뺀 덕에 대인관계의 폭이 좁아졌다는 것 정도. 그렇지만 그것마저도 만족스러운 변화이다.

외부적인 요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외부 활동보다는 내부 활동에 치중해야 하는 시기였던지라,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가만 있자, 외부 활동이 줄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곧 내가 사람들의 시선에 줄곧 신경을 쓰고 살았다는 뜻이 되나.

어찌 됐든 자연스럽게 온 신경이 나 자신에게로 쏠리니 뜻하지 않은 소득이 생겼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느라 너덜너덜해진 영혼이 어느 순간 스르륵 소생한 느낌. 나는 내 영혼에 밥을 주듯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소박한 음식을 만들고 맛있게 먹었다.

언젠가부터 나이를 세지 않게 되었는데, 문득 나이를 세어보니 어느덧 마흔다섯이 되었다. 요즘은 백 세 시대이니 실제 나이에서 열다섯 살은 빼야 된다고 하던데, 매일 늘어나는 흰머리를 볼 때나 예전처럼 말이 재빠르게 나오지 않을 때는, 그런 나를 서른 살이라 생각한들 무엇이 다를까 싶다. 몸 나이만 젊어지는 그런 역주행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젊게 살자'는 구호보다 내 몸의 노화만큼 내 마음도 마흔다섯 살로 성장한 지금이 딱 좋다. 그래서 그런지 40대를 수식하는 많은 말들 중에 가장 흔한 말, '불혹'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극히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자 뜻 그대로 '유혹당하지 않는 나이'라니. 이보다 더 마흔이라는 나이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있을까.

유혹을 당하지 않는다는 건, 나름 줏대가 생겼다는 말이다. 나를 아무리 흔들어도 그냥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 예전에는 40대의 평범한 주부가 되는 게 참 슬플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평범한 사십 대가 되고 보니 나름 괜찮다.

인생의 조연이면 어때, 지금이 딱 좋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대체 조연이나 엑스트라나 배경은 누가 할까.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대체 조연이나 엑스트라나 배경은 누가 할까.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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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책을 읽을 시간도 많아지고, 할 줄 아는 요리도 많아지고, 게다가 꿈꾸던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출간 작가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만하면 충분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뭐 좀 평범하면 어떻고 주인공이 아니면 어떤가. 꼭 잘나야 성공한 인생도 아니고, 꼭 무엇인가를 이루어야만 행복한 것도 아닌데.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대체 조연이나 엑스트라나 배경은 누가 할까 생각해... 보다 보니... 흠, 어쩌면 그것이 내 몫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지금의 자유로움과 편안함은 삶에서 단지 방향을 조금 바꾸어 서보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 지금 이대로도 충분할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작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철학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에피쿠로스도 그렇게 말했었다.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한다면 인생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다 가지고 다 이루는 삶을 살았더라면 절대 가지지 못할 감정이라는 '여유'. 다 가진 사람이 여유로운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더 여유가 있다는 사실이 내가 깨달은 불혹이라는 나이의 매력이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신조어가 하나 있다. '모디슈머'라고 'modify(수정하다)'와 'consumer(소비자)'의 합성어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료를 혼합해 새롭게 제품 활용법을 창조하는 소비자를 뜻한다는데, 주로 음식을 나만의 개성으로 재창조할 때 쓰인다고 한다(주로 라면에 모디슈머들이 많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인생이라고 나만의 레시피가 없으란 법도 없지 않을까. 심지어 라면 하나도 내 식대로 끓여먹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인생 40년의 구력이라면 내 인생의 레시피 정도는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모디슈머로서 주인공으로 살든 서포터즈로 살든 편안하고 여유롭게 따뜻하게만 살자. 나의 인생 레시피는 그것으로 충분히 좋을 것 같다.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태그:#40대,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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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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