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편집자말]
시작은 대학 3학년 때였다. 한 선배로부터 그룹과외 일을 넘겨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대여섯 분의 일본 노인분들께 하는 초급한국어 강의. 있어 보이는 알바감을 받아 어깨가 승천했다. 하면 되는 거지! 뭐 그리 어려울라고. 당시 갑자기 인생이 재밌어진 나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도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바로 내가 우주먼지, 아니 규정되지 않은 암흑물질 같은 존재임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토요일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벽을 보고 앉은 채로 해가 졌다. 내가 망친 순간들과 실망을 감추는 사람들의 표정이 끝없이 머릿속에 난입해, 벽에 머리를 박다 그대로 잠들었다.

자, 이제 좀 정신 차리고 들어볼까, 했을 때마다 학생의 긴 대답은 끝나 있었다. 와, 이거 어떡하지? 내가 한 질문인데 안 듣고 있었다고 할 수도 없고... 수시로 정신이 다른 차원을 유영하다 오는 당황스러움에 속으로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사람들 앞에 선 나는 그렇게 무능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완곡한 말로 그 반에서 잘렸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는 그게 끝이었어야 하는데 아니었다는 거.

10년 후에도 벽 보고 앉아 있게 될 줄이야

"졸업하면 뭐 해 먹고 살지"의 늪에서 허우적댈 때 한국어교원이라는 직업을 떠올리고 말았다.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여러 지역을 다니며 시도 쓸 수 있을 거고, 나는 아이디어 구상도 좋아하고... 또... 또... 이렇게 좋은 점들을 떠올려 보자 흑역사는 잊히고 금세 신이 났다.

이 일은 '천직'으로 임명됐다.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게 좀 걸리지만, 바로 그래서 천직인 거야. 그 점이 내 부족한 사회성을 발달시켜 주는 거지!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경험이 쌓이면서 더디지만 나아지는 것도 있긴 했다.

나는 좌중의 분위기를 읽는 감각이 없어서 어느 시점에서 어떤 여담을 할지까지 계획에 넣고 전체 내용을 달달 외웠는데, 5년쯤 지나고부터는 최소한 학생들이 재미없어하는 것들이나 유머와 휴식이 필요한 시점은 감을 잡게 됐다.

당황해도 평온한 척, 부끄러워도 당당한 척도 좀 하게 됐고, 작은 실수는 넉살로 눙칠 줄도 알게 됐다. 그래서 매번 자책하다 지쳐 '진짜 더는 못하겠다' 하다가도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편하게 일하는 사람이 어딨어? 배부른 소리겠지.'
'전보단 발전했잖아. 언젠간 좀 편해질 거야.'
'일단 10년만 채워보자. 그래도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런데 정말로 10년이 돼가면서 내가 정말 외계 종족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기본값은 이랬다. 한국어교원인데 한국어 낱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브레인 포그'(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느낌이 지속돼 생각과 표현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상태)를 헤치고 말을 정리하려 애쓰는데, 서른 명의 학생이 내 표정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수시로 수군거린다. 그 소리에 쉽게 주의가 흐트러지는 나는 또 말하던 맥락을 놓치거나 말을 더듬고 더 허둥지둥한다.

한 시간에 몇 번씩 방금 쓴 보드마커를 어디 뒀는지 몰라 헤매는 것, 준비물을 빠뜨려 강사실이나 집으로 달려가는 것도 여전했다. 시간 흐름에 둔감해서 앞부분에 시간을 쏟다 뒤늦게 수업을 몰아치는 것도, 내게만 중요한 정보를 자세히 제공하려 하는 버릇도. 그렇게 나를 팔짱 끼고 '관람'하는 학생들이 늘수록 마음도 엉망이 됐다. 여러분, 제가 오늘도 망쳤군요. 이번 학기도 '실수게이지'를 벌써 다 썼으니 어떻게 버틸까요? 

천적을 만나면 달아나야 해

그래도 내가 강사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이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교실에 확 웃음이 터지는 순간은 공기 중에 금가루가 뿌려진 듯 세상이 아름다웠다. 매번 어떤 활동으로 흥미를 끌어볼까 하며 부교재를 만들 때 신났다.

그 시도가 의미없는 집착일 때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내 수업 방식을 좋아하며 날 따르는 학생들을 만나면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정말 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보고 싶었다.
 
마음치유 상담가 신기율 씨는 인간관계와 일에도 천적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과 동시에 의사소통하는 일은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천적이었다.
▲ 천적 관계 마음치유 상담가 신기율 씨는 인간관계와 일에도 천적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과 동시에 의사소통하는 일은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천적이었다.
ⓒ 게티이미지뱅크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나에게 강사 일은 천직이 아니라 '천적'이었다. 좋은 직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잘 맞는 일이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이 일은 애쓰는 만큼 몸과 마음을 해치고 나를 닳아 없어지게 했다. 밥 먹을 때도, 잠자리에서도, 출퇴근길에도 지난 수업에 대한 자괴감과 다음 수업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의사소통에서는 집중력, 주의억제력, 이해력, 판단력, 작업기억력, 순발력, 구성력, 상상력 등을 적절히 이용하며 중심을 잡아나가야 한다.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다수의 청자를 두고 강의할 때는 그만큼 동시에 생각할 것도 많았다. 언어 이해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맥락에서 보편적인 말을 해야 하기에, 나만의 '갑툭튀' 맥락으로 말하는 습관을 계속 제어해야 하는 점도 문제였다.

나는 항상 우울하고 불안했지만 학생들이 원하는 건 '쾌활한 외국어 선생님'이었다. 수업 때마다 교실로 향하는 길이 끝나기 전에 바닥에 껌처럼 눌러 붙은 기분을 뜯어낸 다음 서브를 넣어 풍선처럼 띄웠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웃는 연습을 하며 '나는 몹시 즐겁다'를 세뇌하고, 발성 연습으로 목소리 톤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내 음침함이 간파당할까 봐 소심하게 떨었다. 이런 내가 많은 사람에게 정서적 영향을 주는 교사로서 서 있다니. 부끄럽기만 했다.

'천적에는 맞서 싸울 게 아니라 달아나야 한다.' 자주 듣던 유튜브 채널 '신기율의 마음찻집'에서 마음치유 상담가 신기율씨의 말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내가 지속할 수 있는 일의 성격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글 쓰며 살기에 제일 좋을 줄 알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글 쓸 여유는 평생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그냥 글을 쓰자. 많은 알바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내게는 그거 하나뿐이었다.

'나 사용설명서'를 써나가는 일
 
집요했던 고민은 내가 가진 특성을 자세히 파악하도록 도와주었다.
▲ 나 사용설명서 집요했던 고민은 내가 가진 특성을 자세히 파악하도록 도와주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사회를 겪어나간다는 건, 남보다는 자신에 대해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 강점과 약점, 좋아하지만 잘할 수 없는 것과 비교적 쉽게 발전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는 과정이다. 나는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새로운 나를 억지로 빚어내려 애썼는데, 결국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방향은 '나다운 나'를 발견하고 꺼내는 길이었다.

ADHD에 대해 일찍 알았다면 그 길이 훨씬 수월했을 거다. 통제되지 않는 증상을 겪는 ADHD인에게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대인능력이 중요하거나 직무 범위에 변화가 많고 유연한 대처 능력이 필요한 직종에 취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건 ADHD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다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능력들이 '불균형'하다는 점이다. 풍부한 '영감'은 최대 강점이고, 자기주도적·독립적으로 작업하는 일에는 뛰어난 편이다. 발상이 독특해서 남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개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몰입 효과로 단시간에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직종이 중요한 건 아닐 거다. 모든 분야에 창의성은 필요하고, 각자가 선택한 자리에는 이유가 있으니. 안 되는 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틈새의 강점'을 살리는 작은 시도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조금은 숨쉬기 편할지도 모른다.

힘들 때마다 블로그에 비밀글로 내가 관찰한 그날의 나를 기록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바람을 적었다. 처음에는 이러이러한 점을 고치자는 말을 반복하다가 언젠가부터 이렇게 적고 있었다. '있는 걸 억누르고 없는 걸 만들려 하기보다 가진 걸 살려 쓰며 살고 싶다' 그 생각을 스스로 믿어주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하지만 ADHD라는 병을 모른 채 나를 분석한 시간이 헛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머릿속에 '나 사용설명서'를 구체적으로 써 나가면서, 자신을 지독히도 미워하고 가여워하던 마음에 조금씩은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무작정 나를 사랑하는 건 잘되지 않았지만,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 내 다양한 면모를 생각해 보면 결국 보통의 인간일 뿐인 나를 감싸줄 수 있었다.

"더 나은 나가 된다는 건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결국 '정말 나다운 나'가 된다는 거예요." 김혜령 상담사의 말처럼, 더 낫게 살아보려 애쓰는 우리는 아직 꺼내주지 못한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중일 거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게재할 수 있습니다.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