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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는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마의 레시피는 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흔 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다.[기자말]
루시드폴의 노래 '고등어'를 좋아한다. 잔잔한 선율에 얹은 소박한 노랫말. 그 노래를 들으면 시큰해진다. '몇 만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밥상'을 지켜온 고등어.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았더니 한 귀퉁이에 소금에 절인 고등어가 있더라는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도 좋아한다. 어린 시절에 그 노래를 들었을 때는 하필 많고 많은 생선 중에 왜 하필 고등어였을까, 생각했다.

엄마는 고등어구이보다는 조림으로 많이 만들어주셨다. 특히 가을 겨울 저녁밥상에 고등어는 새빨간 국물을 뒤집어쓰고 적당히 조려져 올라왔다. 대개 무나 김치와 함께 조림의 시간을 거친 고등어였다. 살점을 젓가락으로 뜯으면 빨간 국물 속에 하얗고 통통한 속살이 거짓말처럼 드러났고 우리는 감탄하며 그 푸짐한 속살의 향연을 즐겼다.

살을 조금밖에 내주지 않는 깍쟁이 같은 조기나 가시와 밀당을 하며 먹어야 하는 갈치 속살과는 차원이 다른 푸짐함이었다. 큰 아이가 두 살 때였던가. 한창 젖살이 올라 통통한 아이 다리를 보고 엄마는 '가을고등어처럼 통통하다'며 흐뭇해 하기도 했다.

겨울 저녁밥상에 어울리는 고등어 무조림
 
고등어 무조림 과정
 고등어 무조림 과정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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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무조림은 저녁밥상에 어울린다. 온가족까지는 아니어도 대다수의 가족 구성원이 하루일과를 마치고 함께 둘러앉은 저녁밥상. 아침의 고등어 무조림은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급하다. 고등어 무조림은 뭉근하게 제법 오래 졸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준비로 늘 바빴던 엄마에게 고등어 무조림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은 아침 메뉴로서 적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고등어 무조림을 저녁 음식으로 기억하나 보다.

고등어는 껄끄러운 비늘을 제거해야 하는 작업은 없으나, 대부분의 등 푸른 생선이 그렇듯 비린내 제거가 관건이다. 고등어를 우유에 담가보기도 하고, 소주를 넣어보기도 하고, 밀가루로 씻어보기도 하는 등 방법은 여럿 있다. 내가 비린내에 예민하지 않은 까닭인지 모르겠으나, 비린내를 제거하는 게 그리 큰일인가 싶었다.

나의 엄마는 최근 또 하나의 방법을 연구했다. 소금과 식초, 소주를 섞은 물에 마지막으로 고등어를 씻는 것이란다. 실효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다만, 비린내 제거를 향한 연구를 거듭할 뿐이다.

"그렇게까지 비린내를 없애야 되는 거야? 생선이 비린내가 안 나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하긴 그렇다만……."


등 푸른 생선의 자존심은 구겨졌지만... 

나는 단순히 '먹는' 입장에서 비린내만 생각했다. 따뜻하게 데워먹으면 비린내는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 하지만 나는 그 음식을 자주 '만드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다. 고등어 무조림을 자주 만들어야 했던 엄마는 비린내가 몸에 배는 것이 신경 쓰였을 수도 있으리라는 건 나만의 추측이다. 그것도 이제 와서.

고등어와 무는 새빨간 고추양념에 서서히 스민다. 배어든다. 조급해 할 일은 아니다. 자글자글 끓는 소리가 급하게 잦아들고, 매콤한 음식냄새가 가족들의 인내심을 무너뜨릴 무렵이면 이제 겨우 맛이 밴 고등어 무조림이 상에 올라왔다. 고등어의 자존심, 자개를 연상시키는 오묘한 푸른 무늬는 이미 고추장 범벅이 되었다. 등 푸른 생선의 자존심은 구겨졌지만 맛 하나는 기가 막히다.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 엄마의 고등어 무조림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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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숨 돌릴 새도 없이 부엌에 서서 고등어 무조림을 졸이던 엄마는 얼마나 고단했을 것인가. 식구들을 한바탕 먹인 뒤, 다음날 아침 식사와 도시락 식재료 준비까지 마친 뒤 집안 청소와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마치고 엄마는 혼곤한 밤을 맞았으리라. 어느 때는 밤늦게 귀가하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그냥 잠이 든 적도 있었겠지.

엄마의 몸과 머리칼에서는 씻어도 가시지 않은 고등어의 비린내와 고추장 양념이 숨결처럼 스미었을 것이다. 그것이 벗겨나갈 때쯤 엄마는 다시 고등어 무조림을 만드셨다. 그러나 그 냄새를 누가 역하다 할 것인가. 삶의 비린내란 그저 다만 안쓰럽고 울컥한 것이거늘. 그래서 루시드 폴은 '고등어' 마지막에 그렇게 노래했나 보다.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정선환 여사의 고등어 무조림]  
1. 고등어는 손질을 한 뒤 소금과 식초, 소주를 넣은 물에 마지막으로 헹군다.
2. 멸치와 홍합, 다시마, 양파, 무를 넣고 육수를 끓인다(무는 10분 후에 건져내고 10여분간 더 끓인다).
3. 꺼낸 무는 조선간장과 고춧가루에 버무려 놓는다. 그렇지 않으면 무에서 쓴맛이 난다.
4. 양념장을 만든다. 고춧가루 (6큰술, 진간장 4큰술, 조선간장 1큰술, 고추장 2큰술, 된장 1큰술, 마늘, 생강청(생강을 채썰어서 소주에 재어놓은 것)을 섞는다.
5. 육수의 건더기를 건져낸 뒤 무와 고등어, 양념장을 넣고 끓인다.
6. 불 세기를 조절해가면서 약 20분여간 조린다.
7. 고등어와 무에 양념이 배어들었다 싶으면, 파 등 고명을 올린다.

태그:#엄마요리탐구생활, #엄마레시피, #고등어무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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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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