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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치르는 교실 풍경은 '모 아니면 도'다.
 시험을 치르는 교실 풍경은 "모 아니면 도"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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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조용히 하세요."

생각의 발단은 기말고사 시험실에서 나온 한 아이의 이 외마디 외침으로부터였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앉아 있는 자리에서 감히 시험 감독관 선생님에게 대놓고 조용히 하라니! 아무리 신경이 곤두서 있을 시험 시간이라지만, 순간 버르장머리 없는 그와 얼굴을 붉힐 뻔했다. 

시험 시간 도중 문제에 오탈자가 있어 정정하려던 참이었다. 사전에 같은 교과 교사들이 나름 꼼꼼하게 교차 검토를 한다지만, 시험이 시작된 후에야 문제 오류 등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만약 시험이 종료된 후에 알게 되면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등 사후 처리가 무척 까다롭다. 

사실 학교나 출제한 교사에게 문제 오류는 시험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해당 교과 교사가 한 명뿐인 과목의 경우, 범주 상 인접 교과 교사가 시뮬레이션 삼아 미리 풀어보도록 하는 등 무진 애를 쓴다. 예컨대, 사회 시험을 윤리 교사가 풀어보는 식이다. 

시험 도중 출제 교사로부터 문제를 정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과정에서 사달이 났다. "모두 일어나 문제를 고치라"는 내 말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며 짐짓 화를 냈다. 반 친구들은 그다지 낯선 일도,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의 '과민 반응'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 시험 도중 얼마나 긴장이 되었으면 저럴까 하고 이해하고 넘기면 될 일이다. 수능은 말할 것도 없고, 한 학기에 두 번씩 치르는 중간, 기말고사와 과목별 수행평가조차 시험을 망쳤다고 울먹이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 터다. 

정작 안타까운 건, 그의 되바라진 행동에 대한 반 친구들의 반응이다. 일일이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시험 시간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깊은 잠에 빠져 버린 거다. 애초 시험지를 배포하기도 전에 답안지에 한 줄로 긋고 자는 경우도 여럿이다. 

"그냥 자게 내버려 두세요."
"쟤들은 깨워봤자 소용없어요."
"문제를 수정해도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몰라요."
"쟤들에겐 문항 수가 몇 개인가만 알려주면 돼요."


다들 교사를 향해 조용히 해달라고 항의한 아이보다 시험에 무관심한 친구들을 꾸짖는 모습이었다. 시험 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에겐 문제 수정이든 뭐든 시험에 대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거다. 자는 것도, 그로 인한 피해도 온전히 스스로 책임질 문제라고 말했다.

모든 과목의 수학화

우리나라 고등학생 중 절반 넘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생이 걸려 있다는 수능 시험장에서조차 2교시 수학 영역 시간에는 엎드려 자는 수험생이 태반이다. 이젠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학생)'의 수가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현실이 됐다. 

굳이 수능에 빗댈 것도 없다. 교사라면 모두 공감할 테지만, 한두 시간 교내 시험 감독만 해 봐도 알게 된다. 비단 수학과 영어 시험 시간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교실에 푹신한 쿠션과 무릎 담요를 챙겨오는 아이도 드물지 않다. 아예 시험 기간을 '짧은 방학'으로 여겨 즐거워한다.

시험을 치르는 교실 풍경은 '모 아니면 도'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시험 문제에 몰입한 아이들과 일찌감치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든 아이들로 확연히 나뉘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시험을 치르는 과목과 상관없이 잠자는 아이들의 수가 시나브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과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강 수치화시키면 이러하다. 문제를 푸는 아이들과 찍고 자는 아이들의 비율이 수학은 4:6, 영어는 6:4, 국어와 탐구 과목 등은 7:3 정도다. 안타까운 건, 모든 과목이 빠르게 '수학화'하며 더는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지금 학교 교육이 직면한 가장 위급한 문제는 무기력한 아이들이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어 잘하는 아이가 수학도 잘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노래도, 운동도 잘하는 현실은, 뒤집어 보면, 나머지 아이들은 모든 영역에서 무능하다는 뜻이다. 무능은 무기력의 결과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감염병처럼 전이되는 아이들의 무력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일인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성적표를 받은 후 확인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일인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성적표를 받은 후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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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가난을 임금이 구제 못 하듯, 아이들의 무기력은 교사도 어찌해볼 수 없다.'

시험 시간이든 수업 때든 반쯤 눈이 풀려 있는 아이들을 보며 교사마다 내뱉는 푸념이다. 흔히 교사의 자질 부족과 부실한 수업을 탓하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학교에 내로라하는 '1타 강사'를 모셔와 특강을 열어도 잠든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할 순 없다.

날로 심각해지는 아이들의 무력감은 감염병처럼 교사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아이들 태반이 엎드려 자는데도 괘념치 않고 묵묵히 진도를 나가는 이들이 많다. 깨운다고 해도 채 5분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기 일쑤라, 깨울 시간에 차라리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게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 역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알파벳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아이에게 무슨 영어 독해며, 인수분해도 모르는 아이에게 무슨 미적분이냐며 하소연하는 그들을 힐난하기는 어렵다. 역사 시간에 '납북'의 뜻을 몰라 '남북'의 오타 아니냐고 물을 지경인데 더 말해서 무엇 할까.

결국 무기력한 아이들은 대부분의 수업에서 배제된다. 언뜻 수업권이 침해받는 모양새이지만, 그들 중에 누구 하나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되레 깨우지 않는 걸 고마워한다. 그렇게 3년을 보낸 아이들에게 수업은 늘 지루하고 공부는 고통스럽고 재미없는 일로 기억될 뿐이다.

대입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종료령이 울리고 곤히 잠든 아이들을 깨웠다. 다들 마스크를 낀 상태였지만, 책상 위에 놓인 OMR 답안지에 입김이 서려 눅눅해져 있었다. 습기 먹은 답안지를 카드 리더기가 제대로 읽어낼지 모르겠다. 다음 시험이 수학이라 쉬는 시간에 잠깐 쉬었다가 다시 자게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2022학년도 수능 성적이 발표되는 날이었다. 기말고사가 한창인 고1과 고2 교실과는 달리, 고3 교실은 희비가 교차하며 오전 내내 왁자지껄했다.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그곳의 풍경 또한 '모 아니면 도'였다. 오로지 상위권 아이들의 성적만 모두의 관심사였다.

'불수능'이 외려 표준점수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아이와 합격한 여러 대학 중 어느 곳을 선택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 아이, 그리고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못 맞춰 재수해야겠다는 아이까지 상위권 아이들이 교실 분위기를 압도한다. 나머지 대다수는 철저히 주눅이 든 모습이다.

학교와 교사가 신경 써 관리하는 아이들도 그들이다. 수시와 정시 사이 대입 전형을 두고 갑론을박 시끄러웠지만, 학교마다 명문대 진학률에 애면글면하는 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를 빛내지 못하는' 대다수 중하위권 아이들은 수능 이후에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쯤 되면, 대입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싶다. 언론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수능 만점자 인터뷰 기사를 쏟아내고, 사교육 발 명문대의 예상 등급 컷을 싣고 있다. 숫자로 치면 전체 수험생의 5%도 안 되는 최상위권만의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한 명의 엘리트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어느 재벌 회장의 일갈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회다.

내년 대통령 선거의 화두가 된 '공정 논쟁'도, 대입과 학교 현실에 대입해보면, 결국 상위권과 하위권을 확연히 구분해 하위권이 상위권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말이 좋아 '공정 논쟁'이지 이든 저든 소수 상위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갈등일 뿐이다. 대다수의 하위권은 부화뇌동할 권리만 있을 뿐 논쟁에 끼어들 자리는 없다.

다수의 잃어버린 존재감을 찾아서

요컨대, 학교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곳이라면, '버려진 다수'인 중하위권 아이들을 교육의 중심으로 삼는 게 옳다. 소수의 상위권이 학교의 운영을 좌우하는 '철인정치'를 끝내야 한다. 다수의 잃어버린 존재감을 되찾도록 엘리트주의에 경도된 교육관을 이제 수정할 때도 됐다. 

여기서 글을 마치려니 뒤통수가 따갑다. 분명 대안을 제시하라는 댓글이 달릴 게 뻔해서다. 등교해 종일 엎드려 자는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을 허락하자. 그들이라고 학교에서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왜 없겠는가. 당장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를 쳐주자.

그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기꺼이 판을 깔아주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라면 차분히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반드시 배워야 할 소양이라면 강제적으로라도 이수하도록 한목소리로 설득하자. 그들 스스로 입을 연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이는 무기력을 치료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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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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