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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 됩니다.[기자말]
가을의 시작
- 김성혜

매미 음파가 구원의 향을 퍼뜨리고 있었고
후각은 점점 마비되는데 혀의 깊은 곳에서는 단맛이 났고
덫에 걸린 청춘은 추하게 늙어가고 있었고
노인의 지팡이가 영원의 길에서 빠져나와 오늘을 찾고 있었고
여름의 사경 속에서 이따금 이마가 식어서 몸서리를 쳤고
충혈된 눈이 깊은 계절의 끝자락까지 핏줄을 터트렸고
벌겋게 달아오른 나를 자주 안아주었고
나는 자꾸만 눈이 감기고 기대어 침몰하고 싶었고

낱말을 잃어버린 얼굴로 나무를 베자 옹이가 투명하게 태어났다

가을은 단풍으로 오지 않는다

- <시인은 못 돼도 2021>, 반달서림, 2021, 16쪽


작년과 올해의 가을은 코로나를 동반했습니다. 지난가을을 생각하면 단풍을 먼저 떠올려야 하지만, 올해는 끔찍하게도 코로나가 먼저 떠오릅니다. 올해 시 낭독회에서 다수의 독자분을 만나고 싶었지만, 평일 새벽 6시 스마트폰 앱 <카카오음>과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뵈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올해 큰 기쁨이 있다면 '생태인문서점' <반달서림>에서에서 진행하는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 창작회>의 시우(詩友)분들을 만난 것일 것입니다. 오늘 소개한 김성혜 시인은 <우이시 창작회>의 시우(詩友)분 중 한 분입니다. 어떤 시인보다도 더 시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시 모임에서는 '가을 방학'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립니다.
 
시인은 못 돼도 2021
 시인은 못 돼도 2021
ⓒ 반달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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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시일까요? 시를 읽지 않은 시대라고 하는데요, 왜 시를 배우려고 하는 것일까요. 개인마다 다른 사정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통된 마음 하나를 찾는다면, '위로'가 아닐까요. 시를 읽고 쓰시는 분들, 시에서는 다른 매체에서나 취미에서 찾을 수 없었던 위로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시는 어떤 위로를 전달하는 것일까요. 

맨 처음의 위로는 타인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진정한 위로는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 건네는 위로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대부분 무심코 듣지만, 어느 순간, 그 무심코의 말이 가슴에 와 '콕' 박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 시가 그랬습니다. 화자는 얘기합니다. '가을은 단풍으로 오지 않는다'라고요. 

우리는 가을의 대명사로 '단풍'을 생각합니다. '단풍'과 '가을'을 같은 단어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이 두 단어를 분리하려고 합니다. 가을은 단풍으로 오지 않는다고 선언하죠. 처음에는 의아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가을과 단풍이 꼭 같은 의미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가을은 단풍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오는 것일까요?  
꼭 단풍으로만 와야 하는 것일까요?


가을이 단풍으로 오지 않으면, 다른 무엇으로 오는 것일까요. 겨울이 눈으로 오지 않으면 무엇으로 오는 것일까요. 봄이 꽃으로 오지 않으면 무엇으로 오는 것일까요.

삶 속에서 눈에 띄는 것, 주인공이 되면 좋겠지만 주인공은 오직 한 명뿐입니다. 누구든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주인공은 이미 정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절망은 옹이가 되고 여름의 사경 속에서 이마가 식어서 몸서리를 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실망하여 눈이 감기고 침몰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아니요, 그것은 세상의 기준일 뿐입니다. 

가을은 단풍으로만 오나요. 아니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단풍은 '겉모습'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당신, 단풍이 아니라고 해서 실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처럼 짧은 문장 하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속 깊은 의미,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고 위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고 생각한 우물에서 긁어낸 맑은 샘물과도 같은 한 문장, 이 문장 한 줄이 메마른 대지에 물고를 열어 씨앗을 틔우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하는 오늘, 시의 씨앗이 살아있는 까닭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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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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