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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굴러다니는 물건들을 처리하기 위해 당근마켓 어플을 설치했다. 회원가입을 하고 업로드된 판매글을 보니 정말 없는 게 없었다. "이걸 산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조차 이미 판매가 완료되었고 김장김치를 나눔 하는 글에는 채팅이 폭주하고 있었다.

중고마켓의 특성상 같은 제품인데도 상태와 가격은 제각각이었다. 제품설명과 상세사진만 잘 찍는다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 경품으로 받게 된 주방 다용도 가위를 나의 당근마켓 첫 판매 상품으로 정하고 글을 작성했다.

새 제품이었지만 인터넷 최저가가 1만5000원인 것을 감안해 판매가격을 6000원으로 정했다. 올린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구매의사를 밝히는 당근메시지가 도착했다.

구매자가 판매자 근처로 오는 것이 당근마켓의 룰이기에 근처 치안센터 앞에서 만나자고 제안을 하며 지도를 함께 보냈다. 그러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알쏭달쏭했던 그 메시지
 
미안해요 제가 할머니라 그런걸 못해요 꼭 사고 싶은데 아깝네요.
 미안해요 제가 할머니라 그런걸 못해요 꼭 사고 싶은데 아깝네요.
ⓒ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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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해요제가할머니라그런걸뭇해요꼬사고시은대아깜네요"
(미안해요 제가 할머니라 그런 걸 못해요 꼭 사고 싶은데 아깝네요.)

띄어쓰기 하나 없이 작성된 메시지를 보며 잠깐 고민했지만 내가 몇 분 더 걸어가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약속 장소를 근처 지하철역 2번 출구로 변경하여 메시지를 보냈고, 이윽고 답이 왔다.

"아이고그래주시면고막지요"
(아이고 그래주시면 고맙지요.)

그저 약속 장소를 근처 지하철역으로 바꿨을 뿐인데 감사의 인사를 전해오는 구매자의 모습을 조심스레 상상하며 판매할 가위를 쇼핑백에 넣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지하철역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혹시' 하고 다가갔더니 '역시' 였다.

"혹시 당근마켓 거래로 나오셨나요?"
"네네, 오늘 가위 사기로 한 사람입니다. 제가 가야 하는데 죄송해요."


적어도 나보다 서른살은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깍듯하게 존댓말로 나를 맞아주었다. 쇼핑백에서 꺼낸 가위를 확인하고는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지갑에서 1만 원짜리 하나를 건넸다. 가위 가격은 6000원, 잔돈을 맞춰와 달라고 미리 메시지를 보냈기에 거스름돈 4000원은 준비하지 못했다.

"죄송한데 제가 잔돈이 없어요. 가위는 6000원인데... 어쩌죠?"

어쩔줄 몰라하는 내게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디 가서 만원으로 이런 가위 못 사요. 나 때문에 일부러 여기까지 나왔는데 그냥 받아요."

가위 가격이 6000원인데 지하철역에 나왔다는 이유로 4000원을 준다니 너무 과하다 싶었다.

1만 원을 돌려드리고 계좌로 입금받겠다고 해도 할머니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떠나려는 할머니를 붙잡아 여분으로 들고 다니던 KF94 마스크를 드렸다. 가위도 싸게 샀는데 마스크까지 얻었다며 오히려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지하철역으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다시 도착한 메시지에 어떤 뜻인지 해석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가요 진짜 갖다주셔서 받아왔지 아니면 못 찾아서 못 얻었지요. 감사해요
 제가요 진짜 갖다주셔서 받아왔지 아니면 못 찾아서 못 얻었지요. 감사해요
ⓒ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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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찌짜가다주션서반아완지아니면못차아서못언더지요감사해요" 
(제가요 진짜 갖다주셔서 받아왔지 아니면 못 찾아서 못 얻었지요. 감사해요)

그저 돈을 받고 물건을 판 것뿐인데 이렇게 과분한 인사를 받아도 되는 걸까? 메시지 해독에 성공하자 뭔가 모를 뭉클함이 피어올랐다.

훈훈썰과 진상썰 사이 

나의 첫 당근마켓은 훈훈함을 남기며 대성공이었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다. 포털 검색창에 "당근마켓썰", "당근마켓 진상"을 검색하면 중고거래를 하며 겪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고민해서 책정한 가격을 다짜고짜 깎는다거나 약속을 두세 번 바꾸는가 하면 심지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좋은 뜻으로 무료로 나눔을 했으나 이를 되파는 일명 '되팔이'가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중고거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판매자는 구매자에게 상품의 상태나 하자를 정확하게 고지할 의무가 있고, 구매자는 터무니없는 가격 제시를 지양하고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중고거래의 선순환이 이루어져 판매자는 소소한 수익을 얻고 구매자는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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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짧은 글을 쓰며 생각을 전하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잔잔한 울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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