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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SNS 발언으로 논란이 된 노재승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8일 YTN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과거 SNS 발언으로 논란이 된 노재승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8일 YTN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 YTN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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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승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8일 YTN에 출연해 "김구는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 사람 죽인 인간"이라며 백범 김구 선생(아래 김구)을 비하한 과거 SNS 댓글을 작성한 이유에 대해 "광복절 기념식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단 한 사람이라면 저는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분을 제외하고 김구 선생을 추앙하는 것이 너무 못마땅해서 너무 격분해서 뒤틀린 감정으로 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 위원장은 "그 사건(치하포 사건)에 대한 역사적 사료가 조선인 행세를 하는 일본인 장교를 죽인 거다, 또는 제가 아까 썼던 그 내용의 사료가 공존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부분으로 볼 수 있고 부정적인 부분으로도 볼 수 있는 사건에 대해서 이승만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작태에 분노한 내가 (감정이) 뒤틀려서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노 위원장은 치하포 사건에 대해 두 가지의 다른 사료가 존재하고 본인은 그 중 부정적인 사료에 기반해 댓글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치하포 사건에 대한 사료는 정말로 김구가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 사람을 죽인 것으로 묘사했을까?

<백범일지>에도 공초문에도 살해 동기는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먼저 치하포 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김구가 1896년 3월 9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한 주막에서 쓰치다 조스케라는 일본인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후 김구는 6월 말 해주부에서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치하포 사건에 대한 기록은 노 위원장이 언급한 대로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백범일지>이고 다른 하나는 김구가 체포 후 심문하며 진술한 조선 측의 공초문이다.

먼저 <백범일지>를 살펴보자. <백범일지>에서 김구는 칼을 찬 일본인이 상인 행세를 하며 조선말을 쓰는 걸로 보아하니 미우라 고로(을미사변 주도자)이거나 공범일 것,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칼을 찬 왜놈은 우리 민족의 독버섯이라는 심정으로 쓰치다를 살해했다고 기술했다. 국모의 원수를 갚겠다는 차원에서 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공초문은 어떨까. 공초문은 1차, 2차, 3차로 나뉜다. 이중 명확한 살해 동기는 3차에 기술돼 있다. 3차 공초문에서 김구는 살해 동기에 대해 "무슨 불협한 마음이 있어서 이토록 인명을 상하였는가"라고 묻자 "국민 된 몸으로써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원한을 품었기 때문"이라 진술했다.     

국밥이 늦게 나왔다고 사람을 죽였다? 전체 맥락 보지 않은 왜곡
 
김구의 1차 공초문의 전체 맥락을 보면 살해 동기가 국밥이 늦게 나와서가 아니라 일본인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김구의 1차 공초문의 전체 맥락을 보면 살해 동기가 국밥이 늦게 나와서가 아니라 일본인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 독립운동사자료집 11 : 의열투쟁사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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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백범일지>나 공초문이나 모두 김구가 쓰치다를 살해한 까닭은 국모의 복수로 일치한다. 그렇다면 노 위원장이 언급한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는 어디서 나온 발언일까?  
   
1차 공초문에서 김구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이튿날 밝은 새벽에 조반을 마치고 길을 떠나려 하였는데, 점막(주막)의 법도가 나그네에게 밥상을 줄 때 노소를 분별하여 그 차례를 마땅히 지켜야 하는데도 손님 중에 단발을 하고 칼을 찬 수상한 사람이 밥상을 먼저 요구하자 여점원이 그 사람에게 먼저 밥상을 주므로 마음으로 심히 분개하였다."
 
노 위원장이 확실한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아마 1차 공초문에 나온 이 내용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김구는 해당 진술 후 곧바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근본을 알아본즉 일본인이므로 불공대천지수(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라고 생각이 되자 가슴의 피가 뛰었다. 그때 그 일본인이 한눈을 팔고 있는 틈을 타서 발길로 차 거꾸러뜨리고 손으로 때려죽여서 얼음이 언 강에 버렸다."
 
위 사료를 과연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 사람 죽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아무리 읽어봐도 밥상을 늦게 받은 것보다 해당 인물이 일본인이라는 점에 살해 동기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읽힌다.

피살 일본인 신분 논란 있지만... 그렇다고 살해동기 바뀌진 않아

물론 살해당한 쓰치다의 신분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백범일지>에서는 소지품 조사 결과 일본군 중위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쓰치다는 매약상, 즉 상인이었다.

김구 연구의 권위자이자 '백범 김구 선생 시해 진상규명 위원회'에서 전문자문위원을 맡았던 도진순 창원대 교수 역시 자신의 논문에서 쓰치다가 '당시 일본과 조선에서 활동하던 상업단체인 계림장업단의 단원'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말로 김구가 살해 직후 쓰치다가 일본군 중위임을 알았다면 왜 공초 과정에서 그 점을 밝히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쓰치다의 신분이 상인이라고 해서 김구의 살해 동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이후 조선인들의 반일 감정은 극심했다. 치하포 사건이 일어난 1896년 5월 30일 일본 공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아국인민 피해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에 의해 살해당한 일본인이 43명이었다. 해당 보고에는 살해당한 일본인의 목록에 쓰치다 역시 포함돼 있다. 국모시해로 분노가 극에 달한 조선인이 일본인을 살해하는 일이 횡행했고 치하포 사건도 그중 하나였던 것뿐이다.

부정적 평가는 가능하지만 정확한 사료에 입각해야  

치하포 사건을 가리켜 '김구가 일본군 중위를 살해해 국모의 복수를 한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위와 같은 사료를 바탕으로 비판할 수는 있다. 필자도 그러한 평가에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은 어디까지나 정확한 사료에 입각해야 한다. 노 위원장은 사료를 멋대로 해석한 뒤 김구의 살해 동기를 '국밥이 늦게 나왔기 때문'으로 왜곡하고 비하했다. 그래놓고는 당당히 해당 내용의 사료가 공존하고 있다고 해명한 것이다.

노 위원장은  YTN 인터뷰에서 "오늘 말씀드린 내용 중에서 해명이 불가능한 내용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노 위원장의 단언은 틀렸다. 당장 사료 해석부터를 잘못한 사안을 두고 무얼 더 해명할 수 있겠는가.
   
노 위원장은 YTN 출연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5.18, 김구 선생과 같은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중해야 유가족들과 관련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을 수 있겠다는 감정을 느꼈다"며 "저의 발언과 입장으로 인해 상처받으셨을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말씀을 드린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하지만 사과의 방향이 틀렸다. 노 위원장의 잘못은 김구라는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인물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해서가 아니다. 제아무리 독립운동가를 향한 부정적인 평가라도 그것이 이치에 맞고 정확한 사료에 입각한다면야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노 위원장은 애초에 사료 자체를 왜곡하지 않았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부터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하는 것임을 노 위원장이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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