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얘들아! 나 합격했어!"

며칠 전 회사 면접을 본 친구의 메시지가 단체 대화방을 울렸다.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나 역시 화려한 이모티콘과 함께 축하를 전했다. 고맙다는 친구의 답장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는 대나무숲이 필요했다. 불편한 이 마음을 흘려보내고 싶었다.

나의 대나무숲은 연희동에 있다. 바로 편지가게 글월이다. '글월'이란 순우리말로 편지의 높임말이다. 이름처럼 편지와 관련된 것들을 판매한다. 편지지를 비롯해 편지와 관련된 책까지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한다. 내게 글월이 대나무숲인 이유는 바로 '펜팔 서비스'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모르는 사람이 쓴 편지를 받는 서비스로 가격은 8천 원이다.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엔 익명의 힘이 필요했다. 편지지를 골라 한 쪽에 마련된 공간에 자리만 잡으면 된다. 연필과 지우개도 마련됐으니 흰 종이에 녹여낼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편지지는 장수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
 
글월 우편함
 글월 우편함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친구가 재취업에 성공했어요. 분명 축하할 일인데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했어요. 친구와 전 비슷한 시기에 퇴사했죠. 먼저 소식을 전한 친구가 부러워 축하보단 질투 가득한 마음이 먼저 불쑥 튀어나오더라고요.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지금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겠어요."
- 편지 중

"합격했다"는 말에 건넨 나의 축하는 진심이 아니었다. '나'를 알지만 '나'를 모르는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낯선 이에게 털어놓았다. 내 마음이 가벼워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이 시커먼 마음을 조금이나마 합리화시킬 수 있다면 나의 얼굴도, 목소리도 전혀 모르는 이가 필요했다.

편지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받는 이를 위한 편지, 또 다른 하나는 보내는 이 곧 나를 위한 편지다. 난 굳이 굳이 나를 위한 편지를 전한다. 이기적인 겁쟁이가 된 순간이다. 어쩌면 내 민낯을 볼 누군가에게 "괜찮아요. 만약 제가 당신이었어도 그랬을 거예요"라는 위안을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펜팔서비스 봉투
 펜팔서비스 봉투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편지를 마치고나면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표식을 우표에 그린다. 봉투 앞면에는 DATE/TIME/WEATHER 스탬프와 형용사 스탬프를 찍는다. 스탬프에도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형용사에 체크한다. 표식과 형용사는 펜팔 서비스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의 편지를 받을 누군가가 읽고, 답장을 쓰고 싶을 경우, 표식을 통해 보낸 이를 찾기 때문이다.

편지를 카운터에 접수하고, 펜팔함에서 한 통의 편지를 선택했다. 보내는 이는 모른다. 체크된 형용사만으로 상대를 상상하며 고르는 재미가 있다. 내가 받은 편지는 나를 위한 편지 즉, 누군가를 위해 쓴 편지를 받았다. 좋은 곳에 가면 혹시 여기에도 당신이 있을까 종종 떠올리겠다는 말과 함께 마무리 된, 나의 안녕을 바라는 편지였다. 나를 위한 편지를 부치고, 나를 위한 편지를 받았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만, 친구들에겐 차마 털어놓지 못할 때 또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을 때, 글월의 펜팔 서비스를 이용해보자. 흰 종이에 새겨진 마음들은 분명 당신에게 따뜻한 용기와 사랑을 전할 것이다. 나는 편지를 쓸 때 가장 솔직해진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