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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의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농민공익기여직불이다, 왜냐면'(http://omn.kr/1vj7j)과 <한국농정>에 실린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주민수당'(https://bit.ly/3GpQO0G)에 대한 반론입니다. 다른 의견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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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익형직불제, 쌀직불제의 실패를 되풀이하다  

농민기본소득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생각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에 별세한 김종철 선생은 2012년 <경향신문>에 연재하던 '김종철의 수하한화'(https://news.khan.kr/78Vr)에서 이미 "농민에게 기본소득을"이라 외쳤다. 김종철 선생은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고 공생의 순환경제를 실천하며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매월 정액을 일률적으로 평생 지급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였다. 농민기본소득이야말로 소농 중심의 '생태적 순환경제'를 이루는 첩경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한편 농민기본소득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안으로 부각되어 왔다. 2005년 참여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대비, 기존의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공공비축제로 전환하면서 벼농사 종사자의 소득 보전 수단으로 '쌀 직불제'를 고안했다. 그 이후 경영이양직불제 등 다양한 직불제가 등장했지만 가장 큰 규모는 여전히 쌀직불금이었다. 쌀직불금은 1ha당 고정 금액을 지급하는 쌀고정직불금과, 쌀 가격이 쌀 기준가격에 미달한 금액의 85%에서 고정직불금을 제외한 금액을 지불하던 쌀변동직불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의 작동원리는 다르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쌀 재배면적 혹은 쌀 생산량이 많을수록 직불금도 비례해서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농들과 농업법인들에게 직불금 대부분이 편중 지원되고 농촌 인구 절대 다수를 구성하는 소농의 소득안전망으로 전혀 기능하지 못하였다. 또한 생산량을 늘리면 직불금도 따라 늘어나니, 생태적 친환경 농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자연 약탈적 화학농법을 더 부추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부재지주의 직불금 수령 또한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2019년까지의 쌀 고정직불금
 2019년까지의 쌀 고정직불금
ⓒ 김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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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2020년 공익형직불제를 도입하였다. 공익형직불제는 0.1-05ha 소농에게 가구당 월 10만원 정액의 '소농직불금'을 도입하여 소농의 고정소득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하지만 공익형직불제는 쌀직불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여전히 '면적직불금'에 가장 많은 재원이 소요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면적 구간을 3개로 나누고 구간별로 단가가 조금씩 낮아지긴 하지만, 작물 생산면적에 비례하는 기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공익형직불제는 당초에 목표로 한 '하후상박'의 지급원칙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농민의 삶과 농촌의 현실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공익형직불제 기본형(소농직불금+면적직불금)
 공익형직불제 기본형(소농직불금+면적직불금)
ⓒ 김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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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형직불금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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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준으로 면적직불금은 전체 직불금의 74.6%를 차지하고 있다. 비영농 부재지주가 직불금을 수령하는 문제도 해결되지 못하였다. 2020년 9월 16일부터 12월 5일까지 농특위가 경기 화성(2곳)·안성(1곳)·여주(1곳), 경남 거창(2곳)의 6개 마을에서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비영농 부재지주의 농지가 전체 조사 면적의 30.5%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공익형직불제는 농민의 권리보장과 소농의 소득안정, 경자유전의 강화, 농촌의 생태적 전환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공익형직불제가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고 작물과 농지에 중심에 둔 결과이다. 그것도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애초에 공익형직불제 재원을 아무 조건 없이 실경작 농민 1인에게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 방식으로 지급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2. 공익기여직불은 공익형직불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농민공익기여직불이다, 왜냐면'(http://omn.kr/1vj7j)에서 박진도 교수는 농민수당과 공익형직불, 그리고 농민기본소득을 통합하여 '농민공익기여직불'로 일원화하자고 주장한다.

첫째 이유는 모두 "농어민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직접지불제도"로서 "크게 보면 그 목적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 실현과 농민 소득보전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제도를 세 가지나 시행하는 것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둘째 이유는 "농민의 공익적 가치 창출에 대한 보상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 농업과 농촌이 공익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고 본다.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못하고 있고 "생산주의 농정으로 인한 환경 및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며 "농촌공동체"가 죽어있지 않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따라서 "공익적 기능 증진에 기여하는 농민"에게만 "보상"을 하는 것이 맞고, 그것이 그가 말하는 '농민공익기여직불'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공익형직불제와 농민기본소득과 농민수당은 농민에 대한 '현금 지급'이란 점만 같을 뿐 기본 철학과 틀이 다르다. 일단 농민수당은 지역 농민들의 적극적인 조례추진 운동으로 도입된 지자체의 고유 사업이다. 지방 자립과 지방분권 농정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농민수당을 농민공익기여직불로 흡수한다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 농민수당은 지역의 특색을 살리면서 기후위기 대응의 차원에서 친환경적 시대 소명을 가진 지역별 수당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공익형직불제는 국가사업이고 농민기본소득도 그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공익형직불제는 '경지면적' 중심이고 농민기본소득은 '경작농민' 중심이다. 공익형직불제는 '소수 대농' 중심이고 농민기본소득은 '다수 중소농'을 포함한 모든 농민 중심이다. 즉 공익형직불제는 농지 면적이 많을수록 더 공익에 기여했다고 보지만, 농민기본소득은 농민의 농업 활동 자체를 공익으로 본다. 공익형직불제는 '보상'이고 농민기본소득은 '권리'이다. 공익형직불제는 가구별 지급이고 농민기본소득은 개인별 지급이다. 공익형직불제는 상당수의 비영농 부재지주가 타 가지만 농민기본소득은 '농민기본소득위원회'를 구성하여 실경작자에게만 전달되도록 할 것이다. 공익형직불제는 농업 정책에 머물지만, 농민기본소득은 전 국민의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박진도 교수는 현금 지급이란 이유 하나로 쉽게 합쳐 버린다. 첫째 농민기본소득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둘째 공익형직불제의 실패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농민공익기여직불은 농민기본소득처럼 모든 농민이 같은 금액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익적 가치 창출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공익적 기여도"는 어떻게 측정하고 누가 판별할 수 있을까? 지속적인 관찰, 감독, 조사는 어떻게, 누가 할 수 있을까? 공익기여직불 주장은 '참여소득'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매우 공동체적이고 공익적으로 들리지만 실상은 다르다. 공익 기여를 정확히 판정하려고 하면 엄청난 행정비용이 들고, 거꾸로 행정비용을 줄이려면 '간편한 판정 기준'을 동원하게 된다.

그는 후자를 선택해 "농사를 많이 짓는 농민은 식량공급기능이 크므로 기본형 공익기여직불금을 많이 받을 것이고, 소농이라 하더라도 지역사회 유지와 환경보전이나 생물다양성 증진에 기여하거나 경관 및 전통문화 보존 등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선택형 공익기여직불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대농과 소농이 각각의 영역에서 비슷하게 공익기여직불금을 받을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공익형직불제의 실패를 뼈아프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농사를 많이 짓는 농민"이 주로 받았던 면적직불금이 1조 7607억 원, 친환경직불금은 고작 244억 원, 경관 보전은 겨우 99억 원이 지급된 위의 표를 다시 본다면, 이 두 영역을 나란히 배치하는 기술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식량공급기능"을 대표적인 공익 기여라고 보기 때문에 공익기여직불 제도 하에서도 대농이 이 직불금의 대부분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 그도 그 점을 인정한다. "규모가 큰 농가와 젊은 농민이 공익기여도가 클 테니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농민공익기여직불을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아까는 소농을 슬쩍 대농 옆에 세우더니 이제는 젊은 농민을 대농 옆에 세운다. 식량공급이라는 '엄청난 공익 기여'를 하는 대농만큼의 공익 기여를, 젊은 농민이 인정받는 방법이 무엇인가? 공익기여직불의 구상 속에는 그것이 없다. 결국 공익기여직불은 많은 농사를 지으면 공익적이고 애국적이라는 농지 면적 중심적, 대농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공익형직불제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다.

박진도 교수는 생산주의 농정의 폐해를 잘 알고 있다.(https://bit.ly/31yAwn6) <한국농정>에 실린 이 글에서 그는 농업과 농촌에서 '성장과 소득의 괴리'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고 농촌 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급격한 이농과 고령화로 농촌 공동화가 진행되고 지방소멸이 우려되고 있으며, 환경 및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으며, 생산주의 농정은 경쟁력 강화를 표방했으나 곡물자급률은 점점 낮아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소수의 대농 중심의 농정의 결과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므로 '소농을 살리는 길'이 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단추라는 점을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고 있다. 농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농을 살려야 농촌 공동화와 소멸을 막을 수 있으며, 소농 중심의 순환경제를 수립해야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으며, 소농 중심의 지원책을 만들어야 도시의 청년들이 농촌으로 이주할 수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모든 농민 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월 정액을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이다. 농민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이란 얘기가 아니다. 거대한 전환의 시작이라는 얘기다.

[다음 기사]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의 난점 (http://omn.kr/1wcyl)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교육홍보위원장입니다.


태그:#농민기본소득, #농민공익기여직불, #농산어촌주민수당, #농촌주민수당, #개벽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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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대표.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교육홍보위원장. YouTube 김찬휘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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