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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만나는 파리 풍경. 아이가 알렉상드 3세 다리를 보며 손으로 가르키고 있다.
▲ 파리 알렉상드 3세 다리 유치원에서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만나는 파리 풍경. 아이가 알렉상드 3세 다리를 보며 손으로 가르키고 있다.
ⓒ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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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현지 시각), 프랑스의 한 유치원 만 5세 반 아이들 29명은 선생님 2명과 자원 봉사자로 지원한 학부모 5명과 함께 파리 중심가인 파리 1구에 위치한 잔디 미술관(Le Musée en Herbe)으로 향했다.

프랑스 유치원에서는 그림 그리는 시간이 많다. 구스타프 클림트, 빈센트 반 고흐 같은 유명 화가 작품을 보여주며 설명한 뒤,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문화예술 강국답게 미술관 견학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는다. 현재 프랑스는 일일 확진자 5만명 이상이라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술관 견학 프로그램은 취소되지 않고, 일정대로 움직였다. 

필자는 자원 봉사자로 지원하여 미술관 견학에 동행했다. 오후 1시 반, 교문 앞에 모여서 함께 시청 버스를 타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유치원에서 파리 1구까지 가는 길에서 에펠탑, 알렉상드 3세 다리,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등을 만났다. 특히 에펠탑과 튈르리 공원 회전관람차를 만났을 때, 버스 안에 있던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속으로 '해외 관광객만 에펠탑에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현지 꼬마 아이들도 에펠탑에 열광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한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흥얼거리자 곁에 있던 다른 한 명이 따라 부르더니 세 명, 네 명으로 점점 확대되어 버스 안은 프랑스 동요 합창으로 가득했다. 

한국에서 관광 버스를 타던 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버스 안이 적막해지면 인솔자는 마이크를 꺼내 들어 "누가 먼저 노래하실래요?" 하며 노래 부르기를 권하곤 했다. 선생님이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한 두 명이 노래를 흥얼거리더니 모두가 신나게 한마음 한뜻으로 노래 부르는 아이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남 눈치 보지 않고 현재 내 기분에 충실한 아이들을 보면서 차가웠던 마음이 따뜻해졌다. 
 
잔디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보며, 큐레이터는 아이들에게 그림 속에 숨은 그림 찾기 퀴즈를 냈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찾은 곳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 그림 속에 숨은 그림을 찾았다며 손으로 가리키는 아이들 잔디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보며, 큐레이터는 아이들에게 그림 속에 숨은 그림 찾기 퀴즈를 냈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찾은 곳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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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정도 후, 미술관에 도착했고 선생님과 학부모는 교통 안전을 위해 가는 길에 아이들을 보호를 하며 걸었다. 1975년 개관한 잔디 미술관은 어린이를 위한 미술관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된 미술관이었다.

10월 21일부터 시작된 기획 전시로, 프랑스 거리 예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스피디 그라피토(Speedy Graphito)'의 '상상의 세계(Mondes Imaginaires)'가 전시 중이다. 특히, '만 3세에서 만 103세 어린이들을 위한 몰입형 전시(Exposition immersive pour les enfants de 3 à 103 ans)'라고 적힌 부제가 인상적이었다. 103세도 어린이처럼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고, 백세 시대인 만큼 103세도 미술관 참여가 가능한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 설치된 2개의 큰 원통에 각자 외투와 모자를 집어넣었다. 두 명씩 손을 잡고 입구에서 큐레이터의 안내 설명을 간략히 들은 후, 미술관으로 입장했다. 미술관은 원색으로 가득했다. 백설공주,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슈퍼 마리오 등 아이들에게 친숙한 캐릭터를 독특한 기법으로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상상의 세계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상상의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 들도록 빨간색, 파란색 망토를 각자의 몸에 둘렀다. 아이들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큐레이터 선생님의 작품 설명에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지루하지 않도록 퀴즈 형식으로 작품 설명을 이어나갔다. 

필자가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라빵뛰흐(Lapinture)였다. 토끼를 의미하는 라빵(Lapin)과 그림을 의미하는 빵뛰흐(Peinture)의 합성어인 이 작품은 작가가 30년 전 만든 것이다. 조각처럼 보이는 이것은 마치 수호신처럼 작가를 따라다니며 작품 활동 과정에서의 작가 자신을 항상 지켜준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니 눈을 크게 뜨고 잘 찾아보라고도 덧붙였다. 토끼와 그림의 합성어도 창의적이지고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토끼는 필자 아이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동물이기 때문에 작품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슈퍼 마리오 게임을 연상하는 작품 앞에서 아이들에게 망원경을 나눠주며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림 속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았다. 미술관 이름에 걸맞는 잔디밭으로 꾸며진 방으로 들어서자 잔디밭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상설 전시도 감상할 수 있었다. 

실제 바닥에는 인조 잔디가 깔려있고, 천장은 유리로 하늘을 볼 수 있게 해놓았다. 큐레이터는 그림 속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무엇이 느껴지는지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였다.

정답을 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도록 했다. 그림이라는 세계 안에서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산하기도 한다. 

1시간 정도 미술관 관람이 끝이 났고, 모두 버스에 올라탔다. 유치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신이 난 상태로 옆 친구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옆에 앉은 제나에게 오늘 어땠냐고 물었더니, "아주 재미있었어요. 도널드 덕이 너무 귀여워요"라고 말했다. 뒤에 앉은 사샤는 "슈퍼 마리오 게임 좋아해서 저는 슈퍼 마리오가 제일 좋았어요"라고 싱글벙글 큰 소리로 말했다. 

오후 4시 반, 파리의 하늘은 먹구름 가득한 회색빛이다. 회색 파리를 지나면서 바깥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흐리며, 곧 우르르 쾅쾅 비가 내릴 듯 하지만, 버스 안 아이들은 바깥 회색빛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알록달록한 원색이다. 상상의 세계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천진난만하고 자유롭기만 하다.

끝이 날 것만 같았던 코로나 19도 다시 기승을 부리고, 설상가상으로 오미크론이라는 변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국경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현실 세상은 바이러스와의 사투로 힘겹고, 좌절감을 느끼지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바이러스 세상을 알기보다는 아직은 상상의 세계에서 경계 없이 조금 더 자유롭게 날아다니면 좋겠다. 끝으로, 만 3세부터 만 103세까지 모든 이들이 경계 없이, 속박 없이 자유로워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유치원, #프랑스, #프랑스유치원, #미술관, #미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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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살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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