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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성년식'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끝났다. 보통교육 12년의 결과를 하루에 보여주는 국가적 행사인 수능이 끝나고 수백만 명의 수험생과 가족들이 점수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10일에 있을 성적 통지를 기다리며 진학할 대학을 선택하고, 입시전략을 수립하느라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교육 12년의 노력을 하루에 끝나는 필기시험을 통해 보여주어야 하는 고통스러움을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겪어야 한다. 그래야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이 된다는 면에서 수학능력시험은 현대판 성년식이다.

원시 사회에서 등에 새끼줄 끼워서 늘어뜨리고, 여기에 통나무를 매달고 고함을 지르며 산과 들을 뛰어다녀 이겨낸 사람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던 고통의식과 수능이라는 대한민국의 교육의식이 결코 다르지 않다. 수능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수도권 소재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대한민국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반쯤 단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시시대의 성년식 이상으로 무서운 통과의례인 것이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수능 점수가 발표되고 나면 점수에 실망한 어느 수험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뉴스로 전해질 것이고, 자식을 둔 많은 학부모들은 남의 일 같지 않아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녀의 무사 귀가를 바라며 하루를 보내는 힘든 일상을 경험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험생 가족은 어찌 보면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의 유리판 위를 걷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년 치러지는 수능을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수능지옥과 입시지옥에서 벗어나게 할 제도가 진정 없는 것인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전문가들은 여러 대안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이 보통이다. 방향은 경쟁지향적인 교육풍토의 완화로 모아지지만, 거기에 이르는 답을 찾지 못한 채 다시 한 해를 보내고, 똑같은 고민과 논쟁은 안타깝게도 이듬해에 재현된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사람은 지금의 점수 위주의 극한 경쟁 제도가 공교육을 피폐시키고, 공동체 의식에 균열을 가져오고,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런데 똑같은 현상을 목격하면서도 더욱더 철저하게 오로지 점수로 줄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교육을 정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집권을 꿈꾸는 제1 야당의 대표라는 것이 끔찍하다. 요즘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다. 그가 쓴 <공정한 경쟁>(2019)이란 책에서 진단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와 그가 제시한 처방은 이렇다.

그는 현재 우리 교육이 "경쟁 둔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한다. 모두가 자유롭게, 어떤 규제도 없이, 무한 경쟁할 수 있는 정글이 되고, 정글 속의 법칙에 따라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강자의 독식을 방해하는 각종 규제가 존재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동물들이 사는 정글 속에서 지켜지고 있는 법칙은 힘의 원칙, 즉 힘이 있는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약육강식이다.

이 대표의 표현을 빌면 인간들이 사는 사회 속에서 지켜야 할 법칙은 오직 하나 시험 성적의 지배, 즉 시험 성적이 우수한 사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경험했고, 그가 흠모하는 미국은 이런 정글의 법칙, 즉 약육강식의 원리가 잘 보장된 사회이기에 우리도 따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약육강식의 원칙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탓에 공정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는 한탄이다. 그래서 미래가 불안하다는 주장이다.

능력주의가 만들 오만과 폭정

이는 물론 공부벌레 출신 이준석 대표의 무지가 만든 단순 명료하지만 무식한 주장이다. 그가 경험하였던 미국에서의 시간은 부시 행정부 하에서 보수 언론과 보수 지식인들의 활약으로 주정부 차원의 표준화된 학업성취도 시험에 대한 기대가 폭발했던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이 대표가 부러워하는 NCLB(낙오학생방지법, 2002년 시행)에 따라 모든 주에 일제고사를 의무화하였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는 성적조작 등 부작용만 만들어냈을 뿐 학업성취도 향상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교육적 평가 끝에 일제고사는 사실상 폐기되었다. 오바마 정부 하에서 폐기된 이후 트럼프 정부 하에서도 부활 움직임은 없었다. 미국 학교가 성적 경쟁을 하는 정글이 아니라 성적 조작을 하는 정글이 된 것에 대한 비판의 결과였다. 국가 권력이 앞장서서 추진했던 경쟁 기반 학업성취도 평가가 실패한 정책으로 정리되었다는 것을 이 대표는 경험하지 못하였고, 그런 실패의 역사를 이후에 지식으로도 접하지 못한 듯하다.

미국의 경우 공교육을 마비시키는 수준의 사교육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학의 서열화가 우리보다 심하지 않기 때문이고, 대학의 서열화가 심하지 않은 것은 학벌에 따는 임금격차나 사회적 가치 독점이 우리보다 심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오히려 학생들 사이의 교육열이나 교육경쟁을 둔화시켰기에 이를 되살리려는 것이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이 기울여 온 교육개혁의 공통 목표였다. 거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구분이나 차이가 없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교육개혁이다. 물론 최근 들어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로 인해 미국에서도 학벌주의 현상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와 비할 바는 아니다.

우리의 교육 상황은 미국과 정반대다. 우리는 극단적인 경쟁으로 인한 공교육 파멸과 사교육 과잉, 이로 인한 사회적 낭비의 심화와 공동체 의식의 약화, 지식 중심 교육의 지속으로 인한 미래사회 대처능력의 지체를 우려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교육 현장은 무자비한 경쟁만이 존재하는 정글이다. 사교육과의 경쟁에서 밀린 공교육은 사망 직전 상태이고, 수도권과의 경쟁에서 지방 교육은 소멸 중이며, 입시 경쟁에서 불리한 일반고교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주장하듯이 "철저하게 수능으로 줄 세우기를 해서 학생들을 뽑는" '이준석식 공정한 룰'을 만든다면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들은 학원식 수능 준비기관으로 탈바꿈하지 않는 한 존재 의미를 잃을 것이 명확하다. 순식간에 뇌사 상태에 진입할 것이다. 공교육이 기능을 잃은 사회에서는 교육특구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거나 엘리트 교육기관의 혜택을 받은 '머리만 엘리트인 소수'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엘리트주의자를 자처한 이준석 대표가 꿈꾸는 세상이지만 나는 찬성할 수 없다.

경쟁의 결과로 나타난 성적에 따라 사회적 위신과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은 자신의 성공을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만 바라보는 오만을 낳는다. 이런 오만이 성공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무시를 낳고, 이는 폭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명쾌하게 보여준 것은 이 대표의 모교 교수인 마이클 샌델이다.

학교에서 실패한 자들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던 트럼프의 오만함과 폭정을 분석한 결과였다. 그가 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엘리트주의적 오만이 우리를 공동운명체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경감시키고, 결국은 폭정을 야기한다는 얘기다. 우리의 성공 중 일부는 어쩌다 만난 우연이나 갑자기 주어진 행운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잊을 때 넘치는 것은 오만이고 부족한 것은 겸손이나 배려의 정신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교육은 결코 역량 있는 과학자나 비즈니스맨을 양성하는 것으로 그 기능을 다 하지는 않는다. 배려의 정신에 바탕을 둔 공동체 의식은 동서고금 교육받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가치이다. 정글에서는 필요 없는 가치이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꼭 필요한 가치이다. 약육강식의 원리가 극대화된 정글식 사회를 꿈꾸는 세력이 지배하는 미래의 대한민국에서 과연 학교는 온전할 수 있을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길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leegs@aks.ac.kr)


태그:#수학능력시험, #능력주의, #학력주의, #공교육, #정글식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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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인문학자이며 교육학 교수이다. 유투브채널 <커피히스토리>를 운영하고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2023),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2021),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2019),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2015), <20세기 한국교육사>(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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