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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서울 코엑스 앞에서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지지 연설을 했던 노재승 대표.
 지난 3월 28일 서울 코엑스 앞에서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지지 연설을 했던 노재승 대표.
ⓒ 오세훈TV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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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으로부터 결코 자유롭기 힘든 국민의힘이다. 윤석열 대선후보의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한 인사의 과거 발언이 뜨거운 이슈가 됐다. 9일 자진사퇴 발표를 한 노재승씨 이야기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오세훈 후보에 대한 지원 연설로 주목을 받은 노재승 공동위원장은 지난 5월 18일 소셜미디어에 '5.18민주화운동은 폭동이라 볼 수 있는 면도 있다'는 취지의 <미니다큐: 5.18 정신>을 공유했다. 그는 5.18 추모를 '5.18 성역화'로 규정하고, 이 때문에 토론의 길이 막혔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6일 페이스북을 통해 해명에 나섰다. 노씨는 "5.18의 정신을 특별법으로 얼룩지게 하고 민주화운동에 대해 발상이나 의견조차 내지 못하도록 포괄적으로 막아버리는 그런 행태를 비판할 뿐"이라고 밝혔다.

해명 아닌 해명

해명을 한다곤 했지만, 해명이 될 수 없는 발언이다. 5.18특별법으로 인해 5.18 정신이 얼룩지고 의견 표출의 기회가 막히고 있다고 말했다. 발상이나 의견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발언에 담긴 것은 금년 1월 5일부터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특별법)' 제8조에 들어간 '5.18 역사왜곡 처벌 규정'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라고 볼 수 있다. '5.18 역사왜곡 처벌법'으로도 불리는 이 조항은 신문·잡지·방송·출판물·정보통신망·전시물·공연물·토론회·간담회·기자회견·집회·가두연설 등을 통해 5.18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원칙상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조항을 담은 특별법이 5.18 문제 해결에 미흡하다는 말은 가능해도, 이 때문에 5.18 정신이 훼손되고 의견 표출의 기회가 막힌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 이런 불평은 5.18을 폄훼하려는 극우세력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현판으로 만들어서 광주의 5.18 광장에 걸어두고 그분들의 업적에 대해서도 후손이 대대로 알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건의도 내놓았다. 5.18 유공자 검증을 내세우며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극우세력의 주장에 동조하는 건의를 내놓은 것이다. 해명이라 할 수 없는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문제가 노재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영입한 국민의힘 자체의 문제라는 점은 윤석열 후보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당 대표는 아니지만 국민의힘을 사실상 대표하는 윤석열은 전두환 발언에 대해 명확한 사과를 내놓지 않았다. 노재승 과거 발언 논란에서도 국민의힘은 명확한 입장 표명보다는 여론 추이를 살펴본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는 결국 당사자의 자진사퇴로 마무리됐다.

과거사를 왜곡하는 문제에 대해 명료한 조치를 내놓지 않는 것은 이 당이 처한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과 5.18에 대한 수구적 입장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기 힘든 국민의힘의 처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처벌 규정에도 근절되지 않는 이유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충북ㆍ충남도민회 주최 '국가균형발전 완성 결의대회'에 참석,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충북ㆍ충남도민회 주최 "국가균형발전 완성 결의대회"에 참석,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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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특별법이 시행되고 있으므로 예전처럼 함부로 5.18을 모독하기는 힘들게 됐지만, 그렇다고 5.18에 대한 왜곡이 근절됐다고 볼 수도 없다. 윤석열과 노재승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5.18에 대한 왜곡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신설 법조문을 더 적극 홍보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데에 기인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형벌 규정은 집단이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 형법에 담긴 규정들은 물론이고 위의 특별법 제8조에 들어간 형벌 규정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형법 제114조 범죄단체조직죄는 "범죄를 목적으로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을 처벌 대상으로 한다. 범죄단체나 범죄집단 자체를 처벌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속한 개인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5.18 역사왜곡 처벌 규정을 신설해도 보수·극우 진영이 근본적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은, 5.18을 모독하는 개인들을 처벌하는 것으로써는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힘들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 차원의 처벌로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것은 이것이 보수·극우 세력의 정치적 욕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5.18은 민주화를 향한 진보적인 궐기였다. 여기에 내재된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의 구도는 보수·극우세력에게 불리한 측면도 많지만 유리한 측면도 적지 않다. 5.18을 모독하는 방법으로 반민주나 보수를 결집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재승처럼 그런 방법으로 반민주·보수 세력의 관심을 끌 수도 있으므로, 5.18 모독은 정치적 도구나 수단으로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다.

5.18은 한국 민중을 대리한 광주시민들의 궐기였다. 보수·극우의 입장에서는 이를 이용해 '호남 대 비호남'의 지역대결 구도를 부추길 수도 있다. 제도권 정치가 지역대결 구도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에, 호남 배제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5.18을 이용할 여지가 여전히 많다고 볼 수 있다.

1987년 6월항쟁과 1988년 제13대 총선으로 일대 위기에 빠진 전두환·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당) 정권을 건져준 것이 1990년 3당 합당이다. 경북이 핵심 기반인 민정당은 충청도가 핵심 기반인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경남이 핵심 기반인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을 만들었다. 이에 힘입어 보수·극우는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으로 간판을 바꿔가며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다.

보수 정당이 3당 합당 덕분에 되살아났다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이들이 호남 고립화를 발판으로 기사회생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전라도가 핵심 기반인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을 고립시키는 3당 합당 뒤에 공안정국을 만들어 대중과 노동자의 도전을 억압하고 기득권을 온존시켰다.

호남 배제를 통해 살아난 이들이 5.18 모독을 통해 호남 대 비호남 구도를 연장하고자 하는 것은 앞뒤가 잘 맞는 일이다. 5.18 모독은 반민주·보수·비호남을 결집시켜 권력을 연장하려는 보수·극우의 욕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5·18 모독으로 이득 얻는 정치세력을 퇴출시켜야
 
지난해 2월 13일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광주 시민들을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만원씨가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 법정 입장을 위해 몸 수색을 받고 있다.
 지난해 2월 13일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광주 시민들을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만원씨가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 법정 입장을 위해 몸 수색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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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북한 개입설' 유포에도 그런 욕망이 어느 정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북한 개입설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은 '종북 대 반공' 구도를 5.18에 얹어 놓으려는 정치적 욕망과 무관치 않다. 허무맹랑한 북한 개입설을 실제로 믿어서라기보다는, 5.18을 '빨갱이'와 연관 짓고 싶어 하는 욕망이 그런 호응을 낳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이나 민중항쟁들 중에서 5.18만큼 보수·극우세력에 역이용되기 쉬운 쟁점도 드물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 개입설만 얹어 놓으면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호남 대 비호남'에 더해 '종북 대 반공' 구조까지 5.18과 결합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5.18을 모독하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각종 지지 세력의 통합이 수월해지게 된다.

5.18특별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수·극우가 5.18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것은 5.18 폄훼를 기반으로 세력 확장을 꿈꾸는 정치세력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노재승 사태는 그런 집단적 열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5.18특별법만으로는 5.18에 대한 모독을 근절할 수 없다. 5.18을 모독하는 개인들을 일일이 처벌하는 것으로는 이 문제의 해결에 도달할 수 없다. 5.18 모독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정치세력을 퇴출시키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태그:#노재승, #5.18 모독, #5.18 역사왜곡 처벌법, #5.18 특별법,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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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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