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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쇠예술단 이권희 단장 .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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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통로 '소리', 음악인들이 그리는 소리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져 세상으로 향한다.

지난 5일 광대 중 으뜸이란 뜻을 가진 대한민국 '뜬쇠예술단'의 공연을 봤다. 실내를 가득 메운 객석 사이로 미친 듯이 들썩이는 관객들의 어깻짓과 박수 그리고 환호. 무대 위 뜬쇠는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된 것도 잊은 채 예술혼을 불태웠고, 두 손이 벌겋게 달궈진 객석 위 그 많던 사람들은 영혼을 불태웠다.

그들이 어느 순간 하나가 되어 있음을 눈앞에서 보며 소름이 돋았다. 국악중심 전문예술단원들로 구성된 '뜬쇠예술단'의 폭풍 같은 공연은 그렇게 사람들 안에 들어와 그동안 쌓아두면 안 되는 모든 스트레스를 일순간 녹여서 배출시켜주는 희열을 선물했다.

5일, 36년 뜬쇠예술단이 걸어온 길을 담담히 들려주는 이권희 단장을 충남 서산의 <서산시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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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같은 열정으로 관객을 녹이는 뜬쇠예술단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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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다들 힘든 길을 걸어왔다. 벌써 2년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공연하시는 분들은 다들 그랬을 것 같다.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 단원들만 해도 일용직 근로자로 근근이 버틴 분들이 있다. 일거리가 없으니까 '이 일을 버려야 되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혼자라면 그래도 참을만 하지만 가정이 있으면 문제가 다르다. 낮에는 전단지 돌리고, 밤에는 대리운전하고. 단계적 일상회복에 접어들면서 얼마 전 팀원들과 만나 한잔하며 회포를 풀었다. 그래도 이제는 좀 웃음이 난다.

공연업계를 보면 나이 드신 분들이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실이다. 20~30대는 택배나 알바로 이미 돌아섰다. 그 친구들에게 돌아올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이쪽 계통으로는 다시 안 오려고 한다. 이해가 간다. 꼬박꼬박 돈이 나오니까 당연히 그 소리가 나올 만도 하지 않겠나.

코로나가 얼마나 무서운지 여태 힘들게 배워온 걸 밀어내고 있다. 중간층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전에는 그래도 공연과 레슨을 하면서 연명했는데 말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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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태극기를 휘날리는 뜬쇠예술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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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쇠예술단은 전국적으로 워낙 명성이 자자하니 팬레터도 상당할 텐데?
"초창기에는 많이 받아봤다. 문제는 관리가 안 됐다. 다른 팀들은 잘하는 것 같던데 우리 팀은 악기잽이들이라 그런지 팬 관리를 못 하겠더라. 처음에는 조금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우리는 그냥 음악적으로만 매진하자고 합의를 봤다(웃음).

그게 제대로 통했다. 단원도 4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8명으로 늘었고, 내면적으로도 이미 단단해졌다. 1995년 타악기 부분 최초로 KBS국악대상을 받았고, 2014년 황토현전국농악경연대회 국무총리상 수상을 비롯한 각종 공연을 연출·기획해 호평을 받았다. 오로지 외길을 걸었기에 정상급 예술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자랑 좀 하자면, 우리 예술단이 공연하면 관람객들이 자리가 꽉 찬다. 서서 보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고, 자리가 없어 돌아가시는 분들도 꽤 계신단 소리를 들었다. 무대에서 객석을 보면 가슴이 저릴 정도다. 그때는 우리가 악기인지 악기가 우리인지 모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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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뜬쇠예술단 단원들의 공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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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길로 들어서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어려서부터 워낙 많이 겪어봐서인지 여기서(서산)는 힘든 일이 별로 없다. 젊은 시절, 서울에서 활동할 때는 제대로 돈을 받지 못했다. 그때는 무지하게 뒤통수도 많이 맞고 살았다. 이것보다 더 큰 일들도 많았지만 지면에 일일이 열거하지는 못한다.

우리 뜬쇠예술단은 고 전덕수 선생님과 권칠성 단장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22년 전 충남 서산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내가 태어난 이곳 서산은 예로부터 국악이 발달한 고장이라 뜬쇠와 코드가 맞다. 뜬쇠예술단이 대한민국에 입지를 세우는데 큰 영향을 미친 곳이 바로 서산이다. 이게 다 뜬쇠를 아껴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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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쇠예술단 공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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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하는 인물이 많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딱 한 분을 꼽는다면?
"전 한국민속촌 농악단장 정인삼 선생님과 사물놀이 창시자 이광수 선생님, 우리지역의 예인,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안타까운 웅소성리 고 김상태 선생님을 존경한다. 웅소성리 호상제 장면을 보면서 작품성 있는 '호상놀이'로 만들어 보고자 뜻을 같이하고 연출을 맡았었다.

그 당시 마을주민 등 150여 명과 뜬쇠예술단이 함께 출전하여 2014년 '제55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웅소성리 호상놀이는 선소리꾼이 메기고 상여꾼들이 받는 선후창의 형식으로 구성됐다. 선소리꾼은 죽은 망자의 입장에서 애절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반영하여 소리를 메기는데, 전반부는 읊어가는 것에 대한 회한과 청춘에 대한 바람이 드러나 있다.

중반부에는 병을 치료해보고자 하는 시도와 함께 쾌유의 실패가 나타나며, 죽고 난 이후에는 후회하지 말고 젊었을 때 덕을 닦을 것을 권유한다는 내용이다. 후반부에는 묘 터의 명당을 자랑하고 발복을 기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고 김상태 선생님께는 배울 것이 상당히 많았다. 2016년도에는 함께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각색하여 작품으로 만들어 올렸고, 2017년도에는 '서산의 사계' 서산볏가릿대 놀이로 정월 초하룻날부터 동짓날까지의 사계를 각색해서 음력 2월 초하룻날 볏가릿대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풍년을 기원하며 주민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작품도 만들었다.

특히 볏가릿대 놀이는 가무와 음곡으로 밤이 새도록 즐기는 놀이였는데, 판제와 가락이 세련되고 화려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도 앉은 굿을 쇼케이스식으로 만드는 등 4년 동안 정말 다양한 작품세계를 펼쳐나갔다.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정말 많은 것을 후대에 남겨줬을 텐데 너무 아쉽다. 한창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도중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다 하지 못했다. 참 아까운 분이시다.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우리 뜬쇠는 일심이 되어 열심히 노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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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쇠예술단 공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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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쇠예술단 공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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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출전 중에서도 유독 가슴 벅찬 출전이 있다면?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것과 전국대사습놀이 농악 부문에 출전하여 '서산 볏가릿대 농악'로 장원을 받았을 때가 가슴 벅찼다. 지역의 우수한 민속놀이를 대한민국에 널리 알려 서산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또 서산의 예술인들이 함께 모여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무엇보다 아주 뜻깊다.

사실 외부에서 예술인들을 불러오면 그날 왔다 가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우리 지역 예술인들은 이곳에 정주해있으니 언제든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다.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

그 당시 공연 때문에 지역의 예술인들을 찾아보니 의외로 많더라. 그분들과 지역에서 민속놀이를 살려보자는데 뜻을 같이했다. 양악팀과 연극팀 등이 모여 시도했다.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만나 협연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이질감이 숙제였다. 벗어나는 부분들은 편곡자를 모셔다가 매끄럽게 다듬었다.

소품도 외부에서 조달해오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 서산 지역의 미술협회와 목공소 도움을 받았다. 이런 일련의 것들이 하나가 돼서 가슴 벅찬 입상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협업으로 했던 당시의 작품들이 상당히 가슴 벅차다. 역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실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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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쇠예술단 공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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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금의 공연계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취미로 하는 분들과 직업으로 하는 분들을 분리했으면 좋겠다. 서산시만 하더라도 한자리에 붙여놓고 똑같은 형태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분리해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전문집단이 우리 지역에 맞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또 아마추어는 거기에 맞는 것을 만들고, 전문육성을 하여 우리 지역의 작품을 더 많이 출품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처럼 아마추어와 전문가 집단을 분리하여 서산시에서 끌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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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쇠예술단 이권희 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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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전통이란 틀은 깨면 안 된다. 전통은 담백한 맛이 나야 한다. 양면적인 면을 모두 가지려고 하면 화려하면서 기교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자꾸 스피드와 파괴력이 나오게 된다. 너무 화려한 게 들어오니까 전통이 자꾸 무너지더라. 이것이 이어진다면 전통은 자연스럽게 깨져버린다.

그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기본 틀은 하나로 가 주되, 전통은 전통대로 가고 우리 같은 단체들은 창작 및 전통을 겸해야 관객들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들이 먼저 외면해 버린다. 참 우습다. 우리나라는 보조금이 없으면 전통예술인들은 망하게 돼 있다. 순수예술만으로 버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금이라도 전통을 고수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느덧 올해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2년 연속 공연계에는 한파가 몰아닥쳤다. 부디 이 길을 걷는 분들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잘 버텨나가 주길 기원한다."​

2019년 가을, 서산해미읍성축제 폐막식에 대동놀이 중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뜬쇠예술단의 선두로 서산시 농악단이 달집 주위를 돌았다. 가을 단풍으로 물든 해미읍성에서 사물놀이패의 응집력이 실로 대단했다.

2022년 임인년 검은 호랑이띠 흑호해에는 또 어떤 소식들이 안방으로 건너올까. 뜬쇠의 가슴 벅찬 기별을 벌써부터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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