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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높이 쌓여 있다. 지인은 이 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은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아니 이런 감사한 일이 있나.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책을 뒤적였다. 그 많은 책 중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를 고른 이유는 뒷표지의 노란 문구 때문이었다.

"의료, 복지, 노동 현장에 자리한 거대한 장벽. 들리지 않는 외침을 전하는 수화 통역사의 세계."

수화 통역사의 세계는 내가 모르는 세계다. 농인으로 사는 소수자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얼마나 불공정한지 알지 못한다. 우물 안 개구리인 나는 내가 모르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보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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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코다(CODA,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란 청인 자녀) 출신의 수화 통역사인 아라이 나오토가 주인공이다. 법정 수화 통역사인 아라이가 만난 농인들의 현실을 네 가지 에피소드로 엮었다.

몇 페이지를 넘기지도 않았는데 멈칫하는 순간을 만났다. 아라이가 폭행으로 입건된 청각장애인 통역을 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보는 장면이다. 아라이는 '피의자가 피해자를 때리기 직전에 손을 휘두르자 컵이 바닥에 떨어져서 쨍그랑하고 깨졌다.'라는 서류 속 문장을 지적한다.

피의자는 '쨍그랑'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고 말리러 온 점원이 말을 걸었지만 그 말을 무시한 게 아니라 듣지 못해 상대방이 세게 어깨를 잡은 것만 느꼈을 거라고 설명한다. 아. 그랬겠구나. 난 뒤늦게 이해한다.

청각은 열린 감각이다. 눈을 감으면 시각이 차단된다. 무언가 내 몸에 닿지 않으면 촉각을 느낄 일이 없고 입안에 무언가를 넣지 않으면 미각도 느낄 수 없다. 후각도 코를 막지 않으면 느낄 수 있어 비교적 열린 감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청각에 비해 처리할 정보량이 많지 않다.

청각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지 새삼 느낀다. 게다가 위험을 알려주는 건 보통 청각적 정보다. 빵빵 클랙슨 소리, 따르릉따르릉 자전거 소리, 소방경보음, 소방차나 응급차 소리.

완전히 청각이 차단된 경험이 없는 나는 농인의 상황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스쿠버 할 때 물속에서 소리가 차단되었던 경험을 떠올렸지만 잠시 청각이 차단된 것과 매일 고요 속에서 사는 그들의 상황을 어디 비하겠는가. 편협한 내 경험은 뒤로하고 책 속 농인들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설프게 한 이해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아라이는 산부인과를 방문한 농인 부부를 통역한다. 난 농인도 필담으로 다 의사소통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음을 처음 알았다.
 
"예를 들면 '좌약'을 <앉다>, <약>이라고 통역해서 잘 못 이해한 농인이 약을 '앉아서 먹으려 한 일'은 통역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이다. 이런 일들을 청인이 들으면 설마 좌약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농인의 이해 부족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사람'과 '들리는 사람' 사이에 예전부터 자리하고 있는 정보의 격차를 유념하지 않으면 자칫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지도 모른다." - p47
 
각각의 에피소드가 다 농인이 처한 여러 상황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지만, 난 세 번째 에피소드가 계속 떠올랐다. 그 이야기 속에는 청인, 농인 상관없이 모두 수화를 하는 마을이 있다.

대부분이 어부인 그들은 시끄러운 엔진소리나 상대방이 멀리 있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우에도 대화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만의 독자적인 수화가 생겼다. 장애와 상관없이 즐겁게 어울려 사는 그 어촌 마을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인지 머릿속 영상이 참 애틋하고 슬프다.

이 책은 연작 소설의 마지막 편이다. 1편은 <데프 보이스- 법정의 수화 통역사>, 2편은 <용의 귀를 너에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난 3편부터 읽었지만 독립된 에피소드로 진행되어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서둘러 1편과 2편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청각장애는 전체 장애 중 13% 정도로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장애라고 한다. 전국 청각장애 인구는 32만명이나 된다. 내가 전부라고 착각하는 세상은 사실은 일부일 뿐이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상황에 따라 강자로 약자로 다른 역할로 살아간다.

소수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다수자의 입장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져야 할 당연한 예의이고 태도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태도를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은이), 최은지 (옮긴이), 황금가지(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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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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