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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정도가 아니라 이건 완전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거예요. 언제라도 그만둔다는 각오로 일했어요."

서울의 아파트 경비 노동자였던 조계완(74·가명)씨의 이야기다. 그는 3개월 단위로 계약을 이어가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다 결국, 지난 7월 계약만료를 이유로 옷을 벗었다. 말이 계약만료이지 그는 '해고성 계약만료'에 가깝다고 말했다.

고 최희석 경비원의 죽음으로 경비 노동자의 근무는 개선되어 왔지만, '쉬운 해고'의 구조는 여전하다. 약 3개월 단위로 단기근로계약을 하는 일명 '쪼개기 계약'은 경비 노동자 사이에 만연하다. 이는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입주민들에게 비인격적 대우를 받아도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게 한다.

이들에 대한 노동인권 침해에는 '단기근로계약'의 그늘이 자리 잡고 있다.
  
고용불안으로 인한 갑질
 
2020년 5월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 문제로 주민과 갈등을 빚은 고인은 전날 오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억울하다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2020년 5월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 문제로 주민과 갈등을 빚은 고인은 전날 오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억울하다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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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만료로 해고될 경우 법으로 따질 겨를이 없어요. 시일도 오래 걸리고 될까말까잖아요. 시간만 낭비되는 거죠. 차라리 그냥 그만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8년간 경비업무를 해온 조씨는 국민연금과 모아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많게는 220만 원까지 월급을 받았지만, 해고를 당한 뒤 현재는 월 150만 원대 경비업무를 알아보는 신세다. 그는 '파리목숨'인 채 눈치를 보다 부당한 일을 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형광등을 갈아 달라는 민원이 들어와요. 명백히 관리실 업무죠. 하지만 관리실 직원이 처음부터 움직이는 경우가 없어요. 그럼 또 다시 민원이 들어와요. 관리실에 다시 연락하기엔 눈치가 보이죠. 게다가 제때 형광등을 갈아주지 않았다는 민원이 오기라도 하면 피해를 받아요. 하는 수 없이 형광등을 갈게 되죠."

12년간 경비업무를 한 임인택(67·가명)씨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1개월 초단기계약도 감수한 임씨는 연차수당, 퇴직금은 고사하고 주휴수당과 식대도 실질적으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고용불안에 시달려 부당한 업무지시에도 나설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제때 민원을 해결하지 않으면 시말서를 쓰게 해요. 심지어는 사직서를 쓰는 경우도 있죠. 불안에 시달리니 쉬는 시간에도 즉각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잠을 자는 휴게시간에 엘리베이터 내 토(토사물)를 치워 달라는 민원을 받기도 하고, 죽은 새 사체를 치워 달라는 요구를 식사시간에 받을 수도 있죠. 시말서를 쓰지 않으려면 곧바로 움직일 수밖에요.

식사는 주로 도시락을 챙겨오거나 초소에서 요리해 먹습니다. 밥을 해 먹는 경우, 관리자가 왜 아깝게 전기요금을 펑펑 쓰냐고 핀잔을 줘요. 2교대로 8시간 근무하면 대략 한 달 식대가 15만 원입니다. 식대를 챙겨 주지도 않아요. 명목상 월급에 포함되지만 실질적으로 받는 수당은 없어요."
 

단기근로계약 실태

3개월 계약 근무는 경비업계에 허다하며 어딜 가나 비슷하다.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19. 11)에 따르면 1년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비원은 63.7%, 3개월 계약 21.7%, 6개월 계약이 8.7%로 나타났다. 경비노동자 3명 중 1명은 6개월 이하의 근로계약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3개월 이하의 초단기근로계약은 부산시 71.8% 강북구는 62.7%, 경기중부는 40.5%에 달했다. 강북구는 1개월 단위 '초초단기' 계약도 25.1%나 차지했다.(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지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와 정책방안' 2021.11,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와 '경기중부 아파트 노동자 실태조사').
  
경비원 고용구조
 경비원 고용구조
ⓒ 서대문구 근로자복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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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고용으로 인해 용역회사 바뀌며 고용승계가 되지 않는 현상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경비 노동자의 '위탁관리회사 직고용'은 7.7%, '경비용역회사 고용'이 85.8%로 즉 경비 노동자의 93.5%가 간접고용으로 계약이 된다('서울시 경비노동자 실태보고서' 2019.11).

위탁관리, 용역회사가 변경되는 경우 고용승계 현황을 살펴보면 일부 계약해지 55.6%, 대다수 계약해지 15.3%, 전원 계약해지 6.2%로 나타났다. 경비 노동자의 77.2%가 용역계약이 갱신되는 시점마다 계약해지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경비 노동자들이 용역회사나 입주민 눈치를 보면서 고용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권남표 서대문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노무사는 "실제로 단기계약으로 많은 상담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1년, 아울러 3개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이어 "단기계약이 지속해서 반복될 경우 계약만료는 부당한 행위가 될 수 있다. 갱신기대권을 주장해 법률적 대안을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태그:#경비원, #단기근로, #초단기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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