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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민언련] [편집자말]
19세기 미국 삽화가·만화가 조셉 케플러가 그린 ‘의원들의 주인들’(The Bosses of the Senate, 1889년 1월 23일)
 19세기 미국 삽화가·만화가 조셉 케플러가 그린 ‘의원들의 주인들’(The Bosses of the Senate, 1889년 1월 23일)
ⓒ Joseph Ferdinand Kepp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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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미국은 분야별 거대산업이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위 삽화는 철강, 식품, 석유 등 분야별 산업을 독점한 조합들이 정당과 의회 배후에서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법을 주무르던 당시 부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크 트웨인은 이 시대를 미국 자본주의의 추악한 정경유착 시대로 비난하며 길드의 시대(The Gilded age, 조합의 시대)로 규정하기도 했다.

거대 자본과 정치 담합의 부패를 비판한 130년 전 삽화가 씁쓸하게도 현재 한국의 언론과 정치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도 유효해 보인다. 탐욕스러운 신사들의 자리에 언론 자본을 대입시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런데 의원들의 뒷자리에 거대언론 자본을 세워놓는 순간, 우리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겨난다. 원래 공포감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적인 기시감 때문에 발생하는 원초적인 심리적 반작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 언론학 연구와 비평도 한국 언론은 정파적임을 넘어서 특정 정당과 함께 움직이는 당파적 특성이 일반적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군산복합체는 정부의 군수 분야와 무기 산업이 서로의 이해와 이익을 공유하면서 정부 정책까지 결정하게 되는 정부-산업간 상호 의존의 상태를 의미한다. 군사 중심의 외교정책의 배경에는 군수산업이 있다는 비판의 근거다. 대통령 선거보도를 보면 언론과 특정 정당 간 상호의존 관계도 이와 유사한 체계적 이익의 담합 의혹이 든다.

뉴스 보도를 통해 언론이 누구를 적대할 것인지, 어떤 정책을 무력화할 것인지, 어떤 시민(사회)들을 배제할 것인지를 결정하면 해당 뉴스 생산사업자와 결탁하고 있는 정당은 선거캠프를 통해서, 후보자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이 인정하는 '프로보커터(provocateur, 도발적 옹호자)'를 통해 요란스럽게 정쟁화한다. 정언산(政·言産) 복합체로 불릴 만하다.
 
'인민을 위한' 언론의 문으로 교체해야


정치와 언론 간 권력 담합의 모습은 오로지 선거캠프 당직자 사이에서 진을 치고 이들과 교감하고 있는 기자들의 선거보도 관행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의 펜과 카메라와 마이크에 들어올 수 있는 문은 소위 캠프 '내부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 반면, 시민·학생·노동자들의 삶, 교육, 노동의 현장은 선거보도의 시선 바깥에 있으며 오히려 이곳은 언론이 오로지 갈등을 확인하고 강화하고자 할 때만 방문한다.

언론 자본과 결탁한 정당은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업자들의 이념적, 물질적 이익과 권력을 침해하는 모든 법 제도의 도입을 체계적으로 차단한다. 부동산, 언론, 교육, 노동 등의 전면적 개혁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에 부응하듯 언론 자본은 그들과 결탁한 정당과 정치세력에 반대되는 또는 잠재적으로 위협되는 인물, 가치, 주장, 정책, 법안에 대해 언제든지 뉴스로 저지할 태세를 갖추고 있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는다. 여론의 주인들(The bosses of public opinion), 이는 한국 언로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 아니라 실제 사실일지도 모른다.

앞서 예로 든 삽화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의사당 위층 좌측에 작은 문이 하나 있다. 인민의 출입구(People's Entrance)다. 그러나 삽화에서 이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다. 그 작은 문마저 닫아 버린 것이다. 의사당 입구에 있는 탐욕스러운 독점자본이 들어오는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언론의 문이 언론 자본에게만 열려 있는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제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이 문을 열 준비를 해야 한다. 언론 자본의 문을 고치고 인민의, 인민을 위한 언론의 문으로 교체해야 한다. 미국 의회가 19세기 길드의 시대(The gilded age)를 반독점법을 통해 용기 있게 종결시키고 진보의 시대(Progressive age)를 연 것도 다름이 아닌 일련의 반독점법이다.

미디어와 언론개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정언산복합체의 여론독과점 종식은 새로운 진보의 시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언론개혁의 목표이고, 그것이 언론의 진보적 자유의 시작일 것이다.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 보다 원천적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언론자유를 위한 김중배 뉴스타파 함께재단 이사장의 30년 전 이 선언은 특별히 언론 자본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일갈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채영길(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입니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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